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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성미술 이야기: 이집트로 피신하는 성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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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7-04 ㅣ No.39

[성미술 이야기] 이집트로 피신하는 성가정

 

 

- '이집트로 피신하는 성가정’, 아담 엘스하이머, 31x41㎝, 1609년, 고전회화관, 뮌헨.

 

요셉이 가족을 이끌고 피신하는 주제는 미술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의지할 곳 없는 낯선 땅에 몸을 붙이기 위해 밤을 도와 길을 떠나는 가난한 가족의 피난 행색이 대수로울 것은 없겠지만, 이집트로 가는 길에 이국적인 풍경을 그림의 배경으로 깔고 동화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에 적당했기 때문이었다. 프랑크푸르트의 화가 엘스하이머는 이집트 피신 장면을 달밤의 풍경과 연결시키기 좋아했다.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발명한 이후에 나온 그림이라서 보름달에 분화구가 보이는 것이 이채롭다.

 

 

- ‘이집트로 피신하는 성가정’, 조토, 200x185㎝, 1302~1305년, 스크로베니 예배소, 파도바.

 

화가 조토는 「미술의 굳은 혀를 풀어준 화가」라는 평가를 받은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의 거장이다. 그가 그린 「이집트로 피신하는 성가정」은 단촐하기 이를 데 없다. 가파른 산악을 지나는 좁은 오솔길을 나귀는 잘도 걷는다. 마리아와 아기가 나귀를 탄 것은 형편이 닿지 않았기도 했지만, 나귀가 평화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한편, 로마의 백인대장이 타는 말은 전쟁과 무력을 의미했다. 맨 앞에 선 요셉은 길을 살피면서 뒤를 돌아본다. 혹시 헤로데의 병사들이 뒤쫓아오지나 않을까 근심스런 표정이다.

 

 

“나귀를 타고 가는 평화로운 행렬”

 

아기 예수의 탄생에 대해서는 신비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진다.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기를 가지게 된 일도 그렇지만 동방박사들이 먼 곳에서 별을 보고 베들레헴까지 찾아온 일도 신기하기만 하다.

 

동방박사들의 베들레헴 방문에 대해서는 마태오가 복음서에 흥미진진하게 전말을 기록하고 있다. 이들은 준비한 선물을 바치고 아기 예수를 경배한 다음, 옛 종교를 버리고 새로운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의 방문은 엉뚱한 결과를 가지고 온다. 길을 묻느라 헤로데 왕을 찾았던 것이 불씨가 되었다. 헤로데는 겉으로 짐짓 태연한 척 했지만, 유다의 새로운 왕이 출현했다는 말을 듣고 놀라 베들레헴과 그 일대를 뒤져서 두 살 어림의 아기들을 모조리 참살하고 만 것이다.

 

아기 예수는 요행히 비극의 칼날을 피한다. 천사가 미리 나타나서 아버지 요셉에게 이집트로 피신해 있으라고 일러둔 덕분이었다. 요셉은 지체없이 천사의 말을 따른다.

 

『그 밤으로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갔다』(마태오 2,14).

 

헤로데의 군사가 들이닥치기 직전이었다.

 

성가정이 이집트로 피신하는 사건은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적지 않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가령 서기 2세기의 그리스 철학자 켈수스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동방박사의 꿈에, 그리고 요셉의 꿈에 천사가 나타나서 닥쳐올 위험을 일러주었다는데, 왜 천사들이 직접 아기 예수를 보호해주지는 못했을까?』

 

켈수스는 헤로데의 못된 결정 때문이기는 하지만, 아기 예수가 아니었다면 천진한 어린 아기들의 대학살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그런 의문을 품었던 것 같다.

 

성가정의 이집트 피신에 대해서는 야고보 외경과 위 마태오 경전, 그리고 아라비아 경전 등에서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피신행렬의 모습은 어땠을까? 그날 밤 피신 장면을 직접 목격한 사람은 없었지만, 아기와 어머니를 나귀에 태우고 홀가분하게 떠났다는 야고보 외경의 기록부터 수십 마리의 가축들을 몰고 사자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황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갔다는 위 마태오 경전의 기록까지 다양했다.

 

만약 위 마태오 경전의 기록이 옳다면 성가정은 마치 표범 무리가 끄는 꽃수레를 타고 꽹가리를 울리면서 트라키아에서 테베로 입성하는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의 개선행진을 방불케 했을 것이다. 그러나 밤에 이웃의 이목을 피해 몰래 도망치면서 그렇게 요란을 떨었을까? 화가들은 대개 복잡한 디오니소스 식의 행렬보다 단순한 야반도주 형식의 구성을 선호했다.

 

이집트 헤르모폴리스까지 가는 길은 험난하기 짝이 없었다. 인적 없는 사막과 광야를 가로질러서 앞을 알 수 없는 밀림과 따가운 햇살에 시달려야 했다. 여정 중간에도 곤란한 처지에 빠지기 일쑤였다. 어느 날인가 난데없이 동굴에 숨어살던 악룡이 떼지어 출몰해서 일행을 놀라게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아기 예수를 뵙고는 고분고분하게 머리를 숙이더니 인사를 차리더라는 것이다.

 

또 하루는 종려나무 아래를 지날 때였다. 때마침 탐스럽게 익은 열매가 달려 있었는데, 갈증을 이기지 못한 마리아가 마른 침을 삼키자 아기 예수가 종려나무에게 부탁해서 허리를 구부리게 했다고 한다. 달콤한 열매가 일행의 갈증을 씻어주었음은 물론이다. 아기 예수는 기특한 종려나무에게 상을 주기로 마음먹고 천사를 불러 나뭇가지 하나를 에덴 동산에 옮겨 심게 하는데, 훗날 그리스도교 순교자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때 바로 그 종려나무의 가지를 하나씩 손에 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하필 성가정의 피신장소가 이집트였을까? 이 문제를 두고는 교황 레오 대제(재위 440~461년)는 일찍이 이스라엘이 요셉의 보호 아래 이집트 땅 고센 지방에 터를 잡고 살았던 사실(창세기 47, 27)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이집트를 히브리 민족의 안전한 피신처로 꼽았다. 또 이집트에 피신했던 성가정을 다시 불러냄으로써 호세아의 오랜 예언이 실현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내 아들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 너무 사랑스러워, 나는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호세아 11,1).

 

성가정이 이집트에 도착하자 또 한 차례 이변이 일어났다. 도시의 성전에서 신상들이 일제히 거꾸러진 것이다. 365일 동안의 기도를 위해서 세워두었던 365기의 신상들이 제풀에 넘어진 것은 신상에 달라붙어 있던 악마가 달아났기 때문이었다. 총독 아프로디시우스가 군대를 이끌고 달려왔으나 아무런 손쓸 도리가 없었다고 한다. 우상 파괴의 기적은 이사야가 미리 예언했던 그대로였다.

 

『보아라…이집트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벌벌 떨고, 이집트 사람들의 간장은 녹아 내린다』 (이사야 19,1).

 

[가톨릭신문, 2003년 10월 26일, 노성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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