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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성모님을 위해 완전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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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9-20 ㅣ No.245

[레지오의 영성] 성모님을 위해 완전함을(Perfection for Mary)

 

 

레지오의 한 가지 특징은 레지오 활동이 성모님 모성의 통로라는 것입니다. 성모님은 우리를 목적으로 삼으십니다. 우리는 성모님께 순종하고, 성모님은 우리가 당신의 아드님을 닮도록 도와주십니다. 성모님은 당신의 모성을 세상 사람들에게로 넓히시는데 우리를 도구로 활용하십니다. 성모님은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면서 세상으로 나아가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성모님께 드려서 성모님께서 충분히 활동하시도록 도와드려야 합니다.


완전함을 추구해야 한다(We Must Seek Perfection)

레지오 교본을 보면, 우리의 활동은 빼어나야(excellence) 한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그 말 대신에 완전해야(perfection) 한다고 쓰고 싶습니다.

완전함이라는 단어는 두려운 표현입니다. 그러나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완전함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죄를 짓고 있는 것이라고 단언하였습니다. 성인이 완전함을 획득achieve하라 하지 않고 추구aim하라 한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노력하는attempt 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사실 레지오에게는 이러한 노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레지오의 생명이 바로 이 노력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완전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완전함이란 두려움을 주는 말입니다. 그 단어는, 우리가 우리의 본성을 부수고, 큰 고통을 감수하면서 쉬지 않고 노력하여 새로 나야함을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큰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산을 오를 때, 반드시 직선으로 난 가파른 길로 오르지는 않습니다. 길을 돌아서 걷기도 하고, 또는 자신이 찾은 길로도 올라갑니다.

완전함을 추구하는 것도 마음가짐에 달려 있습니다. 마음을 다지고, 이 마음에 알맞은 동기를 부여하고, 그런 다음 올바른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완전함이란 무엇인가(What is Perfection?)

완전함이란 세세한 것에 대해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이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세한 것에 그렇게 주의를 기울이는 게 가능할까요? 그렇습니다. 그 점이 모든 일 잘하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이런 훌륭한 자질을 영적인 면으로 옮겨봅시다. 그러면 당신도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평범한 성취를 이룹니다. 그 수준에서 딱 한 단계만 더 올려 보십시오. 세상은 당신에게 위대하다고 갈채를 보낼 것입니다. 영성적인 면에서 이렇게 하면, 당신은 하느님 앞에서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완전함을 추구하려는 동기motive가 있어야 합니다. 만약 동기가 적절하지 않거나 희미하면, 우리는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일 수가 없습니다. 그 동기는 모호해서는 안되며, 그리스도교 가르침Christian Doctrine에 바탕을 두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이 어디서 오는지 어떻게 작용하는지 잘 이해해야 하며, 성삼위에 대해서, 그리스도 신비체에 대해서, 그리고 성모님의 역할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평범 이상이 되고자 한다면 이런 지식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지식을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레지오 교본에서도 이런 지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일상 안에서 자신을 살피고, 그 속에서 자신의 동기가 무엇인지 찾으십시오. 여러분은 완전함을 떠나서라도 크리스천이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마치 성모님이 몸소 동기를 지니신 것처럼 이야기하는 걸까요? 우리가 ‘마리아’라고 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따로 떼어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톨릭 신자에게 예수님과 떨어져 있는 성모님을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이면서도, 성모님의 역할을 제외시키는 개신교의 시각을 가지고 있다면, 예수님을 이야기하면서 성모님을 배제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메시지를 뒤죽박죽으로 만듭니다. 비극적이지만, 수없이 많은 종파가 그렇게 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성모님의 존재를 이야기하면서도 자주 바른 길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성모님과 함께 완전함을(Perfection with Mary)

저는 위에서, 모든 그리스도교 가르침이 우리 행동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그리스도교 가르침을 온전히 잘 보여 주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아드님을 위해서, 항상 성모님과 함께 일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모님의 도구로서, 예수님을 양육하고, 그분에게 봉사하고, 그분을 세상으로 모셔 갑니다. 우리는 온전히 투신하여, 성모님의 활동을 도와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성모님의 정신을 섭취하기 위해서, 그리고 성모님의 방법으로 활동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모님의 정신을 따라서, 최소한 간접적으로라도 항상 성모님을 우리 마음에 모시고 활동합니다. 어떤 때는 확실하게 성모님을 모시고 활동합니다. 우리는 성모님이 하셨을 거라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모든 일을 하려고 애씁니다.

성모님의 모성에는 모든 은총이 담겨 있습니다. 그분은 아주 작은 것에도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성모님은 인간적인 모성을 훨씬 뛰어넘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큰 사랑으로 우리를 늘 살피고 보호해 주십니다. 엄마가 아이의 손을 잡고 그 아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처럼, 우리가 활동할 때 성모님이 마음과 행동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성모님의 활동과 우리의 활동이 연결되어 있고,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활동하면서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모님의 사업을 잘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우리가 게으름을 피운 활동에, 성모님을 억지로 끌어들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절대로 안 됩니다. 우리는 반드시 성실하게 활동해야 하고, 그 활동을 할 때 성모님이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돌보시는 것처럼 해야 합니다.

이렇게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렇게 하면 너무 긴장이 되어서 견디어내지 못하지는 않을까요? 감히 말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만 된다면 크게 긴장하지 않아도 됩니다. 훌륭한 장인은 완전함을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고, 완전하게 하기 위해 작은 것에도 주의를 기울입니다. 또한 완전함을 추구하는 참된 예술가에게도 그것은 그리 수고스런 일이 아닙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1년 4월호, 글 프랭크 더프(레지오 마리애 창설자), 역 장훈(광주 se. 국제서기)]

 

 

[레지오의 영성] 모든 행동을 완전하게(Making Each Act Perfect)

 

 

반대도 있습니다. 누구나 장인정신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 것처럼, 우리 안에는 완전성이 없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 순전히 물리적인 방식으로만 활동하는 게 아니고, 또한 오직 결과만으로 평가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알맞은 정도의 노력을 쏟으면, 우리는 그런 의도로부터 벌써 이익을 얻습니다.

아마 하늘에서는 우리들 하나하나에게서 예술가의 싹을 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진짜 예술가가 하듯이 일합시다. 아무리 단순한 일이라도 우리는 완벽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 활동이 성모님의 큰 모성에 보태어지고, 성모님은 당신의 위대함을 우리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줄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을 이루는, 시시하고 끝도 없는 일이 어떻게 완전해질 수 있을까요? 집안 일, 농사, 공예, 직장 일, 가게에서 물건을 파는 일, 기계를 손보는 일과 같은 일이 어떻게 완전해질 수 있을까요? 이런 것들은 완전성과는 거리가 있을까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이러한 일상에 미켈란젤로가 그의 걸작에 쏟은 만큼, 아니 그 이상의 주의를 기울일 수가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우리의 일에는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완전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속마음을 보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예술가만큼 주의를 기울이고, 우리의 동기가 그들보다 훌륭하면, 우리의 활동은 보다 완전해질 것입니다.


성모님을 위해 완전함을(Perfection for Mary)

우리의 마음속에 ‘성모님께 완전함을’이라는 모티브를 늘 간직합시다. 자신의 작품에 긍지를 갖고 있는 장인이 그렇듯이 우리도 언제나 훌륭한 활동을 목표로 삼읍시다.

그리고 각 단계에서, 또는 다음 단계로 옮겨갈 때에, 우리가 하는 일이 완전해지도록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뭔가를 더하도록add 합시다. 이것은 시간은 조금 드는 작은 일이지만, 특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확실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이 습관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문구나 단어로 표현해두는 게 좋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특별히 조금 더little Extra” 할 때마다 되새겨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 한 가지 문구를 제안하겠습니다. “성모님께 완전함을” 이 문구는 우리가 일을 할 때 더 집중하도록 해줍니다.

이런 조그마한 상징적인 과정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조금 더”입니다. 이것이 보통의 훌륭한 활동과 완전한 활동을 구분지어 주는 것입니다. 이런 외적인 표시가 우리가 때때로 동기와 목적을 상기하도록 하는데 꼭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규칙적으로 상기시켜주면 동기가 우리 마음에 뿌리내리고 우리가 행동할 때 영향을 줍니다.


조금 더(A Little Extra)

"조금 더”는 무엇일까요? 직업의 종류는 셀 수 없이 다양하고, 인간의 마음은 더욱 더 여러 가지여서, 그 방법을 찾는 것은 각자의 몫입니다. 제가 좋은 실례를 제시하겠습니다. 한 번 더 닦기, 한 땀 더 바느질하기, 한 번 더 손질하고 광내기, 헐거운 매듭을 조여주기, 기름칠하기, 정돈하기, 꾸미기, 예의바르게 행동하기 등.

또 다른 예도 있습니다. 우리가 몸을 씻고 나면, 수건과 비누를 아무데나 던져 놓고 싶은 충동이 솟아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몸을 잘 씻어야 하는 것처럼, 모든 행동도 잘 마무리하여 완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수건과 비누를 제 자리에 잘 놓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유치하다구요? 성모님께서 가정에서 어린아이처럼 물건을 여기저기 던져 놓았을까요? 우리들 중에는 동화에 나오는 요정처럼 여기저기 물건들을 던져 놓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술가라면 한 번 더 붓질할 것입니다. 그것이 완전함이라는 목적을 이루는 데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으로 말하자면 여러분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한 번 더 닦는다고 더 티가 나는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런 행동은 성모님의 것과 연관되며, 구원 사업의 일부가 됩니다.

정신적으로 부담스럽다구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완전함을 추구하는 예술가에게는 그것이 부담이 아니라 자극이며, 동기이며, 청량제입니다. 동기가 바르면 추진력이 생깁니다.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긴장을 일으킵니다. 당신이 하고 있는 일에 당신의 심장이 있도록 하십시오. 일을 하는 동안 집중하면, 임무가 우리에게 열정을 일으켜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모님을 사랑하고, 우리의 활동을 그분과 연관시키고, 그분에게 참으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 일이 부담이 아니라 정반대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지루함을 청량제로 만들기(Turning Tedium into Refreshment)

“조금 더” 는 비록 힘은 더 들지만, 영적인 에너지가 되어 활동을 편하게 만듭니다. 마치 쓴 음식에 설탕을 넣어 맛있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는 뻑뻑한 기계에 기름을 칠해주는 것과 같습니다. 새와 새의 날개를 예로 들어 봅시다. 새의 날개는 새의 무게를 더 나가게 하여 부담이 되는 게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새가 날도록 할 뿐만 아니라, 새가 더 높이 날아서 더 멀리 보게 합니다. 사실 날개야말로 새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목적을 이해하는 날개가 필요합니다. 단조롭고 계속되는 일들이 우리 마음에 무거운 짐이 되어, 때로 절망감을 가지고 삶을 마주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일상에 생기를 주지 않으면, 우리의 하루하루는 시들고, 마침내는 우리의 정신도 죽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이겨내지 못하면, 그것이 우리를 짓눌러 버릴 것입니다.

완전함의 기본 원칙이 여기 있습니다. 그 원칙은 새의 날개처럼 짐으로 보태지지 않고, 새를 날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관심과 노력의 동기가 생깁니다. 지루함을 청량제로 바꾸어 줍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여러 활동에도 의미를 줍니다. 그것은 창문을 열고 빛이 들어오게 하여 침침했던 방이 여러 가지 색깔로 가득 차게 합니다. 우리에게 날개를 달아 주어 하늘 높이 날아오르게 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1년 5월호, 글 프랭크 더프(레지오 마리애 창설자), 역 장훈(광주 se. 국제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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