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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마리아의 딸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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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2-27 ㅣ No.65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마리아의 딸 수도회 (상)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시오」라는 가나 혼인잔치에서 마리아가 하신 말씀은 마리아의 딸 수녀회의 정신과 사명의 상징이며 모토다.

 

 

창설과 영성

 

1979년 「마리아회」 초청으로 일본 관구로부터 한국교회에 첫 발을 딛은 마리아의 딸 수도회는 1816년 프랑스 남서부 아장에서 아델 드 바츠 드 크랑꿸레옹과 윌리암 요셉 샤미나드 신부에 의해 창립됐다.

 

‘개인생활 규칙’ 실천

 

창립자 아델은 만 4세때부터 가르멜 수녀가 되겠다는 표명을 했을 만큼 아주 어린 나이일 때부터 하느님을 위해 무언가 해야겠다는 사명을 느꼈던 것 같다. 아장에서 멀지 않은 퓌가롤의 트랑 꿸레옹 성에서 귀족으로 태어난 아델은 12세 되던 해 프랑스 혁명으로 폐허가 된 고국을 보며 특별한 부르심과 소명을 느꼈으며 그 이듬해부터는 「개인생활 규칙」을 실천함으로써 수도자로서의 준비와 완덕의 길을 향하는 구체적 준비에 나선다.

 

아델의 이러한 결심은 자신의 성에서 일하는 이들과 주위 가난한 이들에게 물심양면 도움을 주고 인격적 삶을 살도록 배려한 어머니의 신심 영향이 크다. 어머니의 그리스도인다운 깊은 신앙심과 애덕 정신을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것으로 길들인 아델은 이를 통해 개인적인 사도적 삶의 기초를 세우고 또 오늘날 젊은이들과 가난한 이들을 우선으로 하는 마리아의 딸 수도회의 사도적 삶의 뿌리를 형성했다.

 

아델은 14세때 견진성사를 받은 친구와 함께 당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많은 젊은이들의 선종을 위해, 또 하느님을 잊고 가치적 혼란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을 위해 「작은회」라는 신심 단체를 만들게 된다. 이를 통해 아델은 회원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성장하고 또 아장 지역 사람들의 믿음을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샤미나드 신부와 만남

 

이후 1808년 아델은 윌리암 요셉 샤미나드 신부와 섭리적 만남을 이룬다. 당시 「신심회」라는 이름으로 평신도 남녀 신심단체를 창설 지도하고 있던 샤미나드 신부는 두 회가 유사한 점을 발견하고 이 두 단체가 합류하기를 제안했다. 양쪽 회원 모두 이를 기꺼이 받아들여 같은 이름하에 기도 활동을 펼쳐나가게 됐고 모임이 성숙될 수록 회원들안에서 점차 자신들을 마리아께 깊게 봉헌하고자 하는 원의가 생겨났다.

 

선교적 열성의 삶살아

 

마리아의 딸 수도회는 이런 평신도 신심단체가 배경이 돼서 탄생했다. 아델은 이전부터 꿈꾸고 있던 수도회 창설이 구체화되면서 온 정열을 그에 쏟았다. 「단하나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이 세상 끝까지 달려갈 각오를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로 수도회원들에게 사도적 열성을 불어넣으려 애썼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으로 선교적 열성의 삶을 살았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시오」(요한 2, 5)라는 가나 혼인잔치에서 마리아가 하신 말씀은 마리아의 딸 수녀회의 정신과 사명의 상징이며 모토다.

 

샤미나드 신부는 『마리아에게 귀를 기울이고 믿음에 뿌리내린 생활을 하자』고 독려했다. 이는 샤미나드 신부가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시오」라는 모토에 밝힌 첫 번째 의미로 설명되어 진다.

 

또한 이 모토는 「선교적인 방향」으로 회원들에게 강조된다. 수도회의 고유 사업은 구체적인 사업 하나 또는 사업 형식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선교적인 근원들 또는 사도적 활동의 정신으로 정의된다. [가톨릭신문, 2003년 6월 22일, 이주연 기자]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마리아의 딸 수도회 (하)

 

 

마리아의 딸 수도회 한국지구는 현재 2004년 한국 진출 25주년을 기념, 영적 쇄신 작업 및 한국 교회와 사회 안에서의 수도회 카리스마 재정립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중이다.


- 유치원 교육도 마리아의 딸 수도회의 중점 사도직.

 

 

사도직 활동

 

1888년 교황 레오13세 칙서에 의해 회헌 승인을 받은 마리아의 딸 수도회는 창립이후 약 10년동안 프랑스 남서부에서 동북부 지역으로 진출하는 약진을 보였으며 1900년대에는 「단 하나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세상 끝까지 갈 각오를 지녀야 한다」는 창립자 말대로 국경을 넘기 시작, 유럽 미국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로 퍼져나갔다.

 

이들 활동의 특징은 마리아의 선교사로서 활동을 넘어 존재 자체로 복음화에 기여하는 「영속적인 선교」를 기억하며 정의롭고 형제적인 세상 건설을 위해 다른 이들과 연대, 교회 사명에 협력한다.

 

「무엇이든지 그가 이르는대로 하시오」라는 성모님 말씀에 따라 모든 사도직에 문호를 개방함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믿음을 각성시키고 신자들을 배가시킬 수 있는 일」 「젊은이들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일」 등 창립자들의 카리스마에 충실하기 위한 일들을 우선적으로 한다.

 

현재 마리아의 딸 수도회가 한국을 비롯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사도직은 그리스도인다운 교육을 목표로 하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학교교육이다. 

 

그밖에 본당사목 마리아니스트 평신도 공동체 형성을 통한 믿음의 공동체 형성 및 신자재교육, 피정지도, 젊은이 모임, 어린이집, 빈민사목, 양로원, 순례자를 위한 숙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와함께 사회발전을 돕는 차원에서 정의평화를 증진시키는 일에도 참여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인천교구의 「아델 피정의 집」을 비롯 피정 기관을 운영하는 한편 어린이집 설립을 통해 유치원 교육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젊은이들을 위한 사도직 프로그램 마련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데 「젊은이 침묵 피정」「청소년모임」「마리아니스트 영성에 따른 침묵 피정」 등이 대표적인 젊은이 프로그램이다.

 

마리아의 딸 수도회 한국지구는 현재 2004년 한국 진출 25주년을 기념, 영적 쇄신 작업 및 한국 교회 사회 안에서의 수도회 카리스마 재정립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중이다. 신자들의 영성 증진, 재교육을 위한 「마리아니스트 센터」 건립이 그에따른 구체적 계획으로 거론되고 있으며 인도선교 계획도 진행중이다. 

 

지난해 8월 로마에서 열린 제29차 총회는 회원 모두가 선교사 되기를 바랬던 창립자 정신을 더욱 굳게 다짐하는 자리가 되는 한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도적 서한 「새천년기」에 언급된 것처럼 『그 어느때 보다 우리의 시선을 그리스도의 얼굴에 고정시키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관상으로 이끌림을 받는 과정을 계속할 것』을 천명한바 있다.

 

마리아의 딸 수녀회는 독자적인 수도회 활동 뿐 아니라 마리아니스트 가족, 즉 마리아니스트 평신도 공동체, 마리아회(마리아니스트), 알리앙스 마리알과 함께하는 움직임도 적극적이다. [가톨릭신문, 2003년 6월 29일,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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