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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구제역 넘어서기: 채식 위주의 건강하고 소박한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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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5-01 ㅣ No.830

[경향 돋보기 - 그리스도인의 시각으로 본 구제역 사태] 구제역 넘어서기 - 채식 위주의 건강하고 소박한 밥상!

 

 

폭풍처럼 엄청난 구제역의 위력

 

구제역이 한반도를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지난해 11월 28일, 경북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은 막대한 물질적, 정신적 손실과 충격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구제역은 서울, 제주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전국 11개 시 · 도, 75개 시 · 군 · 구로 확대되어 돼지는 전체 사육 두수(988만 마리)의 33.4%인 330만 4,582마리, 소는 335만 마리의 4.5%인 15만 870마리가 살처분되었습니다(농림수산식품부 3월 5일 자료 기준).

 

이는 소 · 돼지 전체(1,300여만 마리)의 25%(350만 마리)가 넘는 엄청난 숫자입니다. 경기 북부는 피해가 더 커서, 돼지는 전체(69만 3,773마리) 의 91.9%(63만 7,575마리)가,  소는 전체(15만 2,265마리)의 25.9%(3만 9,400마리)가 매몰 처리되었다고 합니다(경인일보 2011년 1월 24일자). 충격적인 규모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2000년대에 발생한 네 차례 구제역을 모두 합한 22만여 마리의 15배가 넘는 규모로, 구제역으로 생긴 직접적 피해만도 이미 3조 원을 넘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구제역 때문에 각종 행사의 취소, 관련 산업 등의 피해와 함께 전국 4,700여 곳에 이르는 매몰지 주변의 침출수 유출에 따른 식수 오염과 악취 문제, 식품 가격의 급등과 같은 2차 피해는 더 큰 파장을 안겨줄 것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가축의 생매장 과정을 지켜본 이들은 심한 정신적 충격에 휩싸여 있습니다. 자식처럼 키운 가축이 제 눈앞에서 죽어나가는, 심지어 산 채로 매장당하는 광경을 지켜봐야 했던 농민들, 살처분을 집행했던 수의사와 현장 관계자들은 소 눈망울이 눈에 선하고 돼지의 울부짖음이 귓가에 맴돈다며 악몽과 불면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가축의 살처분 과정에서 엄청난 불편함을 느끼고 있고, 나아가 죄책감까지 느끼고 있습니다. 이들이 느끼는 불편한 심정은 생명을 부당하게 살해했다는 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것은 인간이 자초한 것을 죄 없는 가축이 그 책임을 뒤집어쓰는 것은 부당하다는, 이런 대규모의 살상을 강요하는 방식은 아무래도 크게 잘못되었다는 판단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인간과 더불어 살아온 생명

 

무엇인가 많이 잘못되어 있습니다. 깊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입니다. 이번 일에 대한 여러 가지 개선책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부실한 초동 대처와 사후 대처 방법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방역 시스템의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동물의 생존권, 동물복지를 위해 사육 환경을 중앙집권적 대형축산(공장형 축산) 시스템이 아닌 분산형 소형 유기축산 시스템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전염병에 취약한 중앙집권적 대형축산 시스템에서 소농 중심의 유기순환 축산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개선책이 분명 합리적인데도 여전히 마음에 불편한 것이 남아있습니다. 생명 학살의 책임을 살처분 담당 공무원에게, 열악한 환경에서 동물을 키워온 축산업자에게, 아니면 밀집식 축산을 장려하여 동물의 면역력을 키울 수 없게 한 정부에게 물어야 하는가? 아니면 날마다 더 많은 고기를 더 값싸게 요구하던 우리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구제역 문제와 현대의 육류 소비중심의 문화가 낳은 여러 가지 문제들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겠는가? 어떻게, 무엇을 해야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소, 돼지, 닭, 오리 등은 인간과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온 가축들입니다. 그들은 야생의 상태에서 벗어나 인간과 가까이 생활하면서 인간을 도와 경작 활동도 하고, 농사에 꼭 필요한 양질의 거름과 다양한 먹을거리를 제공하였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생존에 꼭 필요한 존재로 인간과 더불어 살아왔습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육류 중심의 섭생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채식 위주의 삶을 살았습니다. 현미와 보리, 기장과 조, 콩 등 곡물과 푸성귀를 주로 하는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 삶에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였습니다.

 

고기는 귀한 손님이 오거나 명절과 생일, 마을잔치 같은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육류 중심의 음식문화를 가졌던 유목민들도 미각의 풍미를 따르는 형태가 아니라, 자신의 생존을 유지시켜 주는 범위 내에서 고기를 귀하게 여기며 먹고 살았습니다.

 

가축은 인간에게 그 가치를 제대로 대접받으며 살았습니다. 건강한 목초를 먹고 넓고 쾌적한 공간에서 인간과 공생하며 살아왔습니다. 인간이 가축에게 제공하던 사료는 자연에서 채취한 것이었고, 인간이 먹고 남은 음식이었습니다.

 

가축은 인간과 함께 호흡하며 조작 없는 먹을거리를 먹으며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이런 사육 환경에서 구제역의 집단적 발병, 항생제와 성장촉진제, 조작된 사료와 같은 문제는 발생하지도 않았습니다. 가축은 인간에게 고기를 제공하는 상품이 아니었습니다.

 

 

육식 위주의 소비형태가 낳은 문제점

 

소와 돼지를 포함한 가축들이 인간을 위한 식품, 음식으로 전락한 이후에 실로 엄청난 일들이 생겨났습니다.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소는 약 13억 마리로 추산되는데, 소의 사육 면적은 전 세계 토지의 24%에 달하며, 소들은 수억 명을 넉넉히 먹여 살릴 만한 양의 곡식을 먹어치우고 있습니다. 소의 수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데, 소의 증가와 함께 소 방목용 목초지로 개간하려고 더 많은 열대우림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사하라 사막 이남과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남부 목장 지대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소 방목은 사막화의 주된 요인으로 지목받고 있습니다. 또한 사육장에서 흘러나온 축산 폐기물은 지하수 오염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으며, 소가 내뿜는 메탄가스를 포함해 축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전체 온실가스 발생량의 18%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동차나 선박, 비행기 등의 교통수단이 발생하는 온실가스 13.5%보다 훨씬 많은 양입니다.

 

지구상에서 생산되는 전체 곡물의 1/3은 가축의 사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부드러운 육질을 얻으려고 인간은 여전히 기아에 시달리고 있고, 소와 다른 가축들은 곡물을 실컷 포식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수억의 인구가 기아에 내몰려 있는데도, 이른바 선진 산업사회의 많은 부유한 이들은 곡물로 키워진 쇠고기를 탐닉하여 비만 때문에 심장질환, 당뇨 등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1인당 육류 소비는 30년 전에 비해 3배나 증가했고, 지금도 여전히 증가 추세에 있다고 합니다.

 

육식 위주의 식습관은 축산의 형태를 자가 사료 중심의 소규모 유기축산에서 중앙집권적 대형축산(공장형 축산) 방식으로 그 형태를 변화시켰습니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고의 효율과 최고의 이윤을 창출할 목적으로 축산은 규모화, 집중화, 밀식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육류 소비 증가에 발맞추어 곡물사료 수요의 지속적 증가로 사료의 수급 문제가 발생하고, 유전자조작 사료의 출현, 성장촉진제와 항생제의 과도한 사용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등은 육식 위주의 소비형태가 낳은 여러 문제점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구제역(口蹄疫, foot-and-mouth disease)은 소 · 돼지 · 양 · 사슴 등 발굽이 갈라진 동물에서 발생하는 바이러스성 가축전염병이고, 조류독감(Avian Influenza) 역시 닭 · 오리 등의 가금류에서 생기는 바이러스성 전염병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전염병은 밀식 사육방식에 기본적으로 취약합니다. 구제역과 같은 전염병을 예방하고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사육방식과 생육조건 자체를 바꾸는 것입니다.

 

전 세계 사람들의 육류 소비는 크게 증가하였지만 인류의 식탁에 오르는 축산물은 그 종류가 매우 단순해지고 있습니다. 닭의 종류는 500종이 넘지만 육계와 산란계로 나눠질 뿐입니다. 호주 닭이나 우리나라 닭이나 같은 종입니다.

 

500종이 넘었던 닭의 종류는 거의 레그혼종과 코니시종을 혼합한 육계종으로 단일화되었습니다. 소건 돼지건 사정은 비슷합니다. 수많은 세월을 거치며, 다양한 기후와 토양에 적응하며 살아온 동물들은 경제성이라는 단일 잣대로 평가되어 경쟁력 있는 소수의 종으로 획일화되고 있습니다.

 

닭의 가슴살처럼 가축의 특정 부위에 차별적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유전자조작 기술을 빌려 특정 부위가 잘 발달된 종으로 개량하고 있습니다. 기후나 토양, 자연환경이 더 이상 번식하고 종을 유지하는 변수가 되지 못합니다. 오로지 빨리 자라고 사육비가 적게 드는 종만이 번식하고 살아남습니다.

 

항생제와 성장 호르몬은 가축이 경쟁력을 갖게 하는 매우 유용한 도구입니다. 정말이지, 가축은 우리의 식욕을 충족시켜 주는 상품에 불과합니까?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우리는 충격적인 구제역 사태와 육식 위주의 식습관이 주는 파괴적인 상황을 살펴보면서 가축을, 피조물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성경적 기준을 ‘구제역 사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성찰’이라는 강우일 주교님의 ‘특별 기고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물에서 우글대는 온갖 생물들과 새들을, 들짐승과 집짐승들을 만드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당신 모습으로 귀하게 만드신 것처럼, 존재하는 모든 동식물을, 분명히 집짐승인 가축들까지 당신의 정성을 들여 귀하게 만드셨습니다. 사람의 귀함이 인정받아 마땅한 것처럼, 모든 피조물의 소중함, 가축의 소중한 가치도 귀하게 지켜져야 한다고 창세기는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습니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창세 1,28).

 

하느님은 당신이 세상을 다스리고 지배하시는 것처럼, 당신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이 그 귀함을 존중받으며 하느님의 창조질서 안에서 모두가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그렇게, 하느님의 다스림 그 방식대로, 창조질서를 존중하며 모든 피조물을 잘 돌보고 지켜가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또 하느님은 대홍수 때에도, 노아의 방주에 노아의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처럼 온갖 생물을 한 쌍씩 집어넣으시어 노아와 함께 살아남게 하셨습니다(창세 6,17-20 참조). 대홍수 후에 노아와 그 가족과 함께 모든 생물들을“땅에 우글거리며 번식하고 번성하게 하여라.”(창세 8,17) 하고 창조의 그때처럼 또다시 축복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창조 때와 마찬가지로 당신의 피조물 모두를 축복해 주시며 그 귀함을 세상에 선포해 주셨습니다.

 

 

단순하고 소박한 식단으로 모두 행복해지기를

 

하느님은 사람을 귀하게 만드시면서 당신의 다른 피조물을 가벼이 대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당신이 세상을 다스리듯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의 귀함이 잘 지켜질 수 있도록 하라고 당부하십니다.

 

지난 겨울, 우리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던 구제역의 재발을 방지하고, 그런 상황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우리의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중앙집권적 대형축산 시스템은 소농 중심의 유기순환 축산 시스템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우리의 식단을 채식 위주의 건강하고 소박한 식단으로 적극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식단을 채식 위주의 단순하고 소박한 식단으로 바꾸면 지구의 온난화, 빈부의 문제, 축산 폐기물의 처리 문제, 음식의 안정성 문제 등을 그만큼 분명하게 개선시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가축을 원래 위치로 되돌려 놓아야 합니다.

 

가축은 우리의 육식 욕망을 위한 상품이 아닙니다. 가축을 우리와 함께 밭도 갈고 우리에게 소중한 것을 선물하는 귀한 존재입니다. 가축도 좋은 환경에서 건강한 먹을거리를 먹을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채식입니다. 육식은 그저 명절이나 귀한 손님이 오신 특별한 날에 감사하며 먹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현미와 잡곡을 곁들인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도 우리는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날마다 고기를 먹고 있다면 하루 걸러서, 일주일에 한두 번으로, 한 달에 서너 번으로, 1년 중에 특별한 날에나 먹는 것으로, 육식을 취하지 않아도 서운하지 않게 우리의 식습관을 바꾸어 나갈 때, 구제역이나 조류독감과 같은 가축전염병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고, 가축도 인간도 모두 행복해질 것입니다.

 

채식 위주의 단순하고 건강한 먹을거리의 선택이 정답입니다.

 

창조주 하느님과 함께하는 평화! 모든 피조물과 함께하는 평화!

 

* 김규봉 가브리엘 - 의정부교구 신부. 교구 환경·농촌사목위원회 위원장과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본부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1년 4월호, 김규봉 가브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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