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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살며 배우는 사회교리: 행복하길 원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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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10-30 ㅣ No.875

[살며 배우는 사회교리] 행복하길 원하십니까?

 

 

억세게 운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 온 행운

 

어린 시절 나는 억세게 운이 좋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해마다 성탄시기면 내가 다니던 성당에서는 성탄예술제를 하곤 했는데, 구역별로 여러 가지 장기자랑을 하는 것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행사의 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행운권 추첨이 제일 재미있었다.

 

성탄예술제 프로그램을 알려주는 팸플릿의 귀퉁이 한 부분에 적힌 고유 번호를 잘라 행운권 추첨함에 넣어두면, 행사의 마지막 순간에 본당신부님이나 수녀님, 사목회 임원들이 행운권을 추첨하여 풍성한 선물을 나눠주곤 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선물을 받겠다는 욕심에서 남들이 버리고 간 팸플릿까지 여러 장을 모아 가지고 있으면서 내가 가진 행운권 번호가 불리길 애타게 기다렸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내 번호가 불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해마다 성탄제나 본당 체육대회가 있었지만 나에게는 행운이 따르질 않았다. 그때 이후로 나는 어떤 행운이나 요행을 바라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낫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행운이란 말 자체에서 보듯 나의 노력에 따른 결과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행(?)한 나에게 이른바 행운이란 것이 찾아왔다. 몇 년 전 마트에 신학생들의 간식거리를 사러 갔는데 마트 측에서 하는 사은행사에 당첨된 것이다.

 

필요한 물건을 고르고 계산을 하려고 하니 점원이 복권을 두 장 주었다. 동전으로 긁어내는 방식의 복권이었다. 점원이 보는 앞에서 바로 긁었는데 두 장 가운데 하나에 ‘2등’이란 글자가 쓰여있었다.

 

난 내가 복권에 당첨된 사실도 모르고 점원에게 “여기 2등이라고 쓰여있네요. 이게 뭐예요?” 하고 물었다. 오히려 흥분한 사람은 점원과 내 뒤에 줄을 서서 계산을 기다리던 사람들이었다. “2등이네요, 축하합니다!” 뜻밖에 마트 안에 있던 모르는 사람들한테서 축하인사를 받았다.

 

사람들의 축하 속에 계산을 끝내고 2등 사은품인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받았다.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사은품으로 받은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바라보면서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그 물건이 얼마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공짜로 사은품을 받았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나를 기분 좋게 만들었던 것이다.

 

세상에는 공짜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처럼 나 역시 공짜를 좋아하는 인간인지라 이 사건 이후로 전에 없던 버릇이 하나 생겼다. 마트에 물건을 사러 갈 일이 있으면 괜히 고객 사은행사가 없는지 기웃거리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1등을 꿈꾸면서 말이다.

 

 

요행을 바라며 사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땀 흘려 일하지 않고도 풍족하게 모두 먹고살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자신이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서도 풍족한 삶을 바라는 것은 그야말로 요행을 바라는 허황된 꿈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요행을 바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늘어난 것 같다.

 

최근 세계적인 경제 위기로 말미암아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을 살펴보더라도 이러한 상황은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발생한 경제난 때문에 사람들은 더 많이 절망하고 더 많이 포기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아무리 노력해도 주변 상황 때문에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이른바 일확천금을 꿈꾼다. 어린아이 시절엔 우연히 길에서 주운 100원짜리 동전 하나에도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했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복권 당첨이나 주식투자와 같은 방법을 통한 일확천금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따금 어린 시절 친구들을 만날 때가 있는데, 요즘 대화의 주제는 주로 ‘주식투자’에 관한 것이다. 친구들의 직업은 다양하지만 공통된 대화의 주제는 어느 주식에 어떻게 투자하는 것이 고수익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것들뿐이다.

 

친구들과 만나면서 이처럼 주식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들을 듣고 있노라면 사제인 나는 따분함을 느낀다. 왜냐하면 나는 주식투자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분명 과거에는 공통된 관심사가 있었던 친구들이었는데 이제는 서로 많이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어린 시절 우리는 함께 모여 사랑과 우정에 대해서,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행복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이러한 주제에 대해서 말하려 하지 않는다.

 

어떻게 돈을 버는 것이 좋은지, 어디에 투자해서 어떤 이익을 내는 것이 좋은지, 모두의 관심사가 오로지 ‘돈’에만 맞추어져 있는 것 같다. 그야말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돈에 ‘돈’ 세상이 되어버린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세상에는 물질적인 풍요보다 더 큰 가치들이 분명 존재하는데 이러한 가치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만일 물질이 세상의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되는 세상이 되어버린다면 정말로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텐데 사람들은 그 위험성을 간과한다.

 

자신의 부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더라도 우선 부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고는 나중에 물질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주겠노라고 말하면서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기도 한다.

 

 

적은 돈과 시간으로 고수익을 얻으려 한다면

 

재산을 늘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 흔히 사용되는 방법으로 주식 투자, 부동산 투자, 복권 당첨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방법들은 하나같이 적은 돈과 적은 시간을 투자해 고수익을 얻으려는 방법의 대표적인 것들이다.

 

어린 시절에는 용돈을 벌려고 부모님의 심부름을 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성인이 된 지금은 자신에게 주어진 직업과 상관없이 자신이 지닌 재화를 얼마만큼 잘 재테크하여 재산을 불리느냐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신도시 개발이나 역세권 주변의 아파트에 관심을 갖는 것 역시 가족들의 더 나은 주거환경을 찾을 목적에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재산을 늘리려는 투자 목적에 기인하는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서민들에게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복권 역시 그 복권이 만들어진 목적에 기여하려고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복권당첨을 통해 자신이 부유해지길 바라면서 구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

 

서민들이 복권추첨을 기다리면서 한 주일을 버틴다는 말을 듣고 있노라면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을 통해서 부자가 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실감하게 한다.

 

강원도의 폐광지역에서는 죽어가는 지역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이른바 카지노라고 부르는 사행성 도박장을 국가차원에서 허가해 주었다. 관광사업 활성화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설립된 이 도박장은 지역경제 활성화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말하지만 그러한 긍정적인 효과에 반해 오히려 역효과가 더 크게 발생되고 있다.

 

처음에는 호기심과 개인의 취미생활로 게임에 손을 대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도박에 중독되어 자신이 지니고 있던 소중한 재산과 가족들을 모두 잃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게임에 빠져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카지노 주변에서 노숙인 신세로 전락하면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내는 것 역시 그들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한탕주의의 결과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들 역시 행복한 삶을 꿈꾸었던 사람들이지만 그 수단과 방법을 잘못 선택함으로써 가장 소중한 가정과 자신까지도 잃게 된 것이다.

 

 

인간의 행복은 물질에만 있지 않다

 

가톨릭교회는 인간이 추구하는 참된 행복이 어디에 있다고 가르치고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참 행복에 대해 산상설교에서 말씀하고 계신다(마태 5,3-12; 루카 6,20-23 참조).

 

산상설교에 따르면 행복한 사람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자비로운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리고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다.

 

세상의 잣대로 보면 전혀 행복과 무관할 것 같은 사람들이 오히려 더 행복하다고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참된 행복이 물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정신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비록 물질적으로 풍요하다고 할지라도 국민의 행복도를 측정하는 ‘행복지수(GNH : Gross National Happiness)’에서는 부유한 나라의 국민들이 모두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지 않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오히려 물질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방글라데시나 부탄 같은 나라의 국민들이 더 행복함을 느끼며 살아간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의 행복이 다만 물질적 풍요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가톨릭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서도 진정한 행복이 물질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풍부한 물질적 재화에 파묻혀서도 삶에 관하여 일종의 혼란을 겪고 삶의 의미를 올바르게 경험하며 살지 못하는 모습들이 흔히 목격된다.

 

소외감과 인간성 상실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 생산과 소비라는 기계의 한 톱니바퀴로 축소된 듯이 느끼게 되었으며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엄을 확인할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374항).

 

더군다나 가톨릭교회는 비록 부유한 나라들이 물질적 행복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지만, 이러한 물질적 행복이 상대적으로 더 가난하고 더 약한 사회계층을 희생시켜 이루어졌음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의 참 행복을 위해서는 진정한 연대를 통한 전인적인 인간 발전이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행복해지려면 하느님의 가치를 따라야

 

인간은 행복한 삶을 꿈꾼다. 그러나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 과연 어떠한 삶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허둥대며 살아가고 있다.

 

만일 누군가가 참으로 행복해지고 싶다면 세상의 가치가 아니라 하느님의 가치를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하느님 사랑과 인간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야말로 우리 인간이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행운을 기대하며 일확천금을 꿈꾸며 사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면서 우리들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에게 우리들이 가진 것을 조금씩 나누며 사는 것이 오히려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들지 않을까!

 

* 황창희 알베르토 - 인천교구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1997년에 사제품을 받고, 로마 알폰소신학원에서 석사, 교황청립 우르바노대학에서 사회교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 인천가톨릭대학교 교학처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1년 10월호, 황창희 알베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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