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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선거와 그리스도인: 우리나라 역대 주요 선거의 의미와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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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3-23 ㅣ No.911

[경향 돋보기 - 선거에 임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 우리나라 역대 주요 선거의 의미와 교훈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집약하고, 이를 기초로 정치권력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핵심적인 제도적 장치이다. 고전적 민주주의 이론가들은, 민주주의는 다수의 시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운영되고, 민주적이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선출된 지도자는 전체 국민을 대표해서 일을 할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국민 대다수가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 체제 자체가 위기를 맞게 된다. 왜냐하면 대표성이 결여된 소수의 지배는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유권자의 선거 참여는 대의제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되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이다.

사회교리에 따르면, 선거는 “국민이 정치 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정치 참여의 도구”이며 선거 참여는 “모든 사람이 책임을 가지고 공동선을 위하여 의식적으로 이행하여야 할 의무”라고 가르친다. “지혜롭고 슬기로우며 지식을 갖춘 지도자를 뽑는 일은 개인의 선익뿐 아니라 사회정의를 위하여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선거는 이런 선거의 기본 취지에 부합하고, 국민들은 능동적으로 선거에 참여하고 있는가?


선거는 국민이 정치 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도구

올해는 20년 만에 총선과 대선을 같은 해에 치른다. 그런 의미에서 ‘중대 선거(critical election)’의 성격을 갖는다. 중대 선거란 오랫동안 반복된 전형적인 정치 패턴이 유지되는 ‘정상 선거(normal election)’와 달리 국가의 미래를 정하고 사회의 틀을 잡는 ‘주춧돌을 놓는 선거’를 말한다.

미국의 루스벨트가 대공황의 참혹함 속에 ‘작은 정부론’을 버리고 ‘큰 정부’를 외치며 뉴딜 정책을 내세워 승리한 1932년 미국 대선이 전형적인 중대 선거였다. 미국의 레이건이 극단적인 냉전구도 속에서 강한 미국과 신보수주의를 내걸고 승리한 1980년 미국 대선도 신자유주의 시대를 연 중대 선거였다는 평가도 있다.

그렇다면 한국 선거에서는 이와 같은 중대 선거가 있었는가?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는 여섯 번의 총선과 다섯 번의 대선을 치렀다. 일부 선거는 한국 정치 지형을 뒤바꾸는 데는 성공했지만 선거 이후 한국 정치의 패러다임을 질적으로 변화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그럼에도 한국 선거에서는 각기 나름대로의 시대정신과 국민들이 강력하게 요구하는 시대과제가 있었다.

시대정신은 국민들이 절실히 원하고 있지만 한 번도 이룩하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이 숨겨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시대정신은 시대과제와 분명 다르다. 경제 살리기는 시대과제는 될 수 있어도 시대정신은 아니다. 반면 국민통합, 한반도 평화, 양성평등 실현, 억울함이 없는 공정사회, 공교육 내실화 등은 시대과제가 아니라 시대정신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 주요 선거의 특징

지난 2007년 대선에서는 ‘경제 살리기’가 최대의 선거 쟁점이었다. 2002년 대선에서는 지역주의 타파와 낡은 정치 청산으로 대변되는 ‘변화와 개혁’이 시대정신이었다. 무엇보다 소수 · 비주류에 의한 정권교체가 선거의 핵심쟁점이었다. 1997년 대선에서는 ‘여야간 수평적 정권교체’, 1992년 대선에서는 문민수립이 시대정신이었다.

이런 시대정신 이외에 대선에서는 지역주의와 각종 바람이 맹위를 떨쳤다. 1987년 민주화운동의 부산물로 형성된 제6공화국 헌법 아래에서 치른 1987년 대통령 선거 이후 한국의 정당체계는 마치 봉건시대의 영주를 연상케 하는 각 지역의 상징적 인물이 확고한 지역적 기반을 바탕으로 운영되었다.

1987년 민주화운동 이전의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가 퇴색하고 그 자리를 지역주의가 차지하면서 지역 패권 정당체제가 조성된 것이다. 이러한 체제 아래에서 각 정당들은 선거에서 승리하려고 이념과 정책과는 상관없이 지역연대에만 의존했다. 1997년에 여야간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기 전에 지역의 균열은 집권세력의 연고지역이었던 영남과 호남에서 두드러졌다. 급기야 1992년 대선은 영남(민정당, 통민당)과 충청(공화당)이 연대해서 호남을 배제한 선거였다.

한편, 1997년 대선은 그동안 고립화되었던 호남이 충청과 연대해 영남 고립화에 성공한 사례였다. 2002년 대선에서는 여당 후보가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공약을 내세워 인물이 아닌 공약으로 충청과 지역연대에 성공했다. 이런 지역연대를 통해 충청과 아무런 지역 연고가 없었던 노무현 후보는 충남 예산 출신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게 이 지역에서 256,286표 차이로 승리했다.

우리나라 대선에서 집권당이 대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했던 사례는 1987년, 1992년, 2002년 선거였다. 이런 선거의 공통점은 현직 대통령이 유력한 여권의 대선 후보를 적극 지지하거나 대세론을 인정했다는 점이다. 더불어, 야권이 분열하여 야 성향의 제3후보가 여당에게 유리하게 작동할 때 재집권이 가능했다. 여권 후보가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면서, 국민에게 감동을 주거나 새로운 정치 실험을 통해 국민적 관심을 고조시키고 연대에 성공할 경우, 재집권의 길이 열린 것이다.


연대와 바람 그리고 묻지마식 투표

반면, 집권당이 재집권에 실패한 1997년과 2007년 대선에서 드러난 공통점은 첫째, 현직 대통령과 집권당 후보 간의 갈등과 대립이 궁극적으로 야당에게 유리하게 작동되었다는 점이다. 현직 대통령이 누구를 차기 대통령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대통령이 안 되게 막을 수는 있기 때문이다.

둘째, 현직 대통령이 ‘경제를 망친 대통령’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질 경우, 대선이 여당 후보 대 야당 후보의 싸움이 아니라 현직 대통령 대 야당 후보 간의 싸움으로 변질되면서 우리나라 대선 특유의 전망적 투표보다는 회고적 응징 투표가 나타나면서 야당이 승리했다.

셋째, 여당 후보가 연대 또는 연합을 구축하는 데 실패했다. 여권 유력 후보가 대세론에 도취하여 연대를 거부하거나(1997년 대선) 여권 후보가 취약해 연대 자체가 성립되지 못할 경우(2007년 대선) 이런 일이 발생했다.

한편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바람이 분 경우도 있다. 1997년 7월에는 ‘이회창 바람(이풍)’이 불었다. ‘3김정치 청산’을 기치로 한 이회창 후보의 대쪽 이미지가 주요 요인이었다. 하지만 이풍은 이회창 후보에 대한 검증이 불거지면서 아들 병역 비리로 추락하고 말았다. 대쪽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면서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반면, 2002년 대선에서는 국민 참여 경선제라는 제도를 통해 ‘노무현 바람(노풍)’이 불었다. 낡음과 새로움으로 대변되는 변화의 축, 20-30대 젊은 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형성된 세대 축, 친미와 반미를 토대로 한 이념의 축, 기득권층과 서민을 대립시키는 계층의 축이 만들어지면서 노풍은 탄력을 받아 승리했다.

2002년에는 노풍 이외에 월드컵 4강 진출을 계기로 ‘정몽준 바람(정풍)’이 8월에 급작스럽게 불어닥쳤다. 그런데 정풍은 무소속이던 정몽준 의원이 11월 국민통합21이라는 신당을 창당하자마자 오히려 위력을 상실했다. 기존 정당과 거리를 둔 신선함이 장점이었는데 신당 창당으로 그 동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바람은 총선에서도 종종 나타났다. 2004년 총선에서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역풍이 불면서 한나라당이 완패했다. 총선 전 47석에 불과했던 열린우리당은 152석으로 과반수 이상을 차지했다.

2008년 4월 총선에서는 비록 공천 파동으로 한나라당이 고전했지만 2007년 12월 대선에서 정권교체에 성공한 직후 총선이 실시되어 이명박 대통령의 후광효과에 힘입어 한나라당이 153석으로 과반수 이상을 차지해 여대야소가 만들어졌다. 문제는 대선에서 승리한 세력이 집권 후 국정 운영에서는 예외 없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집권초기 높은 국정 운영 지지도는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추락했고, 대선과정에서 표만을 의식해 제시한 각종 선거공약을 둘러싸고 정치 갈등이 극대화화였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한반도 대운하를 둘러싼 정치 갈등이었다. 더불어 9부 2처 2청의 행정부처를 이전하는 원안을 백지화하고 교육 · 과학 중심의 경제도시 건설을 골자로 하는 세종시 최종 수정안을 둘러싸고 여야 갈등뿐만 아니라 여여 갈등이 심화되었다.

실제로 2009년 KBS와 동서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민주화 이후 이념적 갈등이 가장 심각했던 시기로 ‘이명박 정부’라는 응답이 49.5%로 나타나, 절반 정도의 국민이 현 정부 들어 이념적 갈등이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531만 표의 압도적인 표 차이로 승리한 이명박 정부에서 갈등이 더욱 심화된 요인들은 다양하다. 하지만 핵심은 대선 과정에서 표출된 갈등이 선거 이후에 완화되기보다는 오히려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대선 과정에서 유권자들이 이성적이고 정책지향적인 투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에 따라 ‘묻지마식 투표’를 한 다음 자신이 던진 표에 책임을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특정 정치 지도자나 정당에 대해 유권자의 열정과 환멸의 주기가 지나치게 짧은 것도 한몫했다.


누구를 선택해야 하나?

여하튼 우리 사회에서는 선거를 통해 갈등이 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폭되어 정치 불안정이 심화되고 있다. 따라서 올해 총선과 대선에서는 선거가 축제의 장이 되고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국민적 합의가 도출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 사회교리에 입각해서 후보를 선택하는 지혜를 보여야 할 것이다.

사회교리의 원리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기본 원리는 인간 존엄성(또는 인격성의 원리) 의 원칙이다. 인간 존엄성의 원칙은 인간에게 공동체 안에서, 인류 가족 안에서 그 구성원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바이론은 이렇게 주장한다. “모든 사람은 잉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내재적인 존엄성을 가지며 그 존엄성에 부합하는 삶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발전과 쇠퇴의 모든 단계에 있는 인간의 생명은 귀중하므로 보호와 존경을 받을 가치가 있다. 무죄한 인간 생명을 직접 공격하는 것은 언제나 죄악이다.”

따라서 어떤 후보와 정당이 공공선에 입각한 정책을 제시하는지, 사회적 약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참된 공약을 하는지, 인간의 생명과 존엄을 위한 행동하는 양심을 보이는지를 기준으로 투표를 하면 된다.

둘째, 바람에 따른 일시적인 충동이나 증오에 입각한 투표를 지양해야 한다.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세찬 바람이 불더라도 어느 후보가 진정 대한민국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능력과 도덕성을 갖고 있는지 냉정하게 판단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소중한 한 표를 의미 있게 행사해야 한다. 그래야만 ‘책임 있는 유권자’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표를 던진 다음 선거가 끝난 후 후보를 잘 못 뽑았다고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버리겠다.”, “이민을 가겠다.” 등과 같이 무책임한 발언을 하는 사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셋째, 인기에 영합한 포퓰리즘 공약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어떠한 포퓰리즘도 결국은 나라를 두 동강 내고 파멸로 몰고 갈 것이기 때문이다. 후보자가 아무리 신념에 찬 발언을 하더라도 포퓰리즘으로 국론을 몰고 가는 것은 경계해야 하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나라의 미래를 위해 정직한 후보를 선택해야 할 의무가 있다.

넷째, 우리 그리스도인은 참여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선거에 참여해야 한다. 독일 명문 대학 가운데 하나인 베를린 훔볼트대학에 들어서면 전면에 “철학은 세상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라는 문구가 크게 붙어있다. 아무리 철학이 옳더라도 행동이 없으면 관념으로 빠지고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뜻이다.

선거에 참여하지 않고 비판하는 것은 비겁한 것이다. 프랑스 사상가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가 위대한 것은 잘못한 것을 수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인간은 한없이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이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주님 앞에서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잘못한 것을 수정할 수 있는 은총을 받았다.

주님! 이번 총선과 대선에서는 대한민국을 번영시키고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지혜롭고 의미있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소서.

* 김형준 다니엘 - 명지대학교 인문교양학부 교수.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미국 아이오와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선거 및 의회 전공) 학위를 받았고, 한국선거학회 회장과 한국정치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경향잡지, 2012년 2월호, 김형준 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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