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3일 (일)
(녹) 연중 제12주일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강론자료

2013-0909...내가 드러내는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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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3-09-08 ㅣ No.1407

연중 23 주간 월요일 - 홀수 해

콜로새 1,24-2,3          루카 6,6-11

2013. 9. 9. 등촌3

주제 : 내가 드러내는 하느님

사람이 세상에서 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아직까지 우리가 현실의 눈으로 바라본 사람은 없겠지만, 이제까지 알아들은 방법을 사용하여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방법도 있고, 말 그대로 아직 하느님을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하여 오로지 사람의 생각만 드러내고 사는 방법도 있습니다. 제가 두 가지 선택사항을 말씀드렸습니다만, 여러분의 삶은 어느 쪽에 가깝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쉬운 것이 아니라면, 3의 방법이나 태도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성인들의 삶이 항사 우리에게 완벽한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누가 인정하겠습니까? 우리가 성현들이 삶이 옳은 것이었다고 인정할 수도 있고, 그들이 보여준 것보다는 내가 더 옳은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삶은 그렇게 많은 여러 가지 선택사항들 가운데 하나에 가까울 것입니다. 다만, 내 생각이나 선택이 옳은 것이라고 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설명할 때, 나와 같은 선택을 다른 사람들도 할 것인지 대답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바오로사도는 자신의 삶으로 드러낸 고통과 힘겨움이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남기신 고난을 자기 몸으로 채우고 있는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표현했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은 생각과 태도로 움직일 수 있다면 가슴이 뿌듯한 감정이라도 남을 텐데, 정말로 그러할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우리들 안에 바오로사도가 드러내려고 한 자신감이 있는지 질문하면, 대답은 어떠할까요?

 

세상 사람들의 행동에 대한 판단은 둘 중의 한가지입니다. 내 마음에 들거나 내 마음에 들지 않거나하는 것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에 드는 것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하더라도 믿을 만한 일이지만,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라면, 믿음의 차원을 넘어서서 그와 같은 세상에 살 수 있는 여유도 주고 싶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이런 일은 세상의 일들보다는 신앙의 일들과 관련이 있을 때, 우리가 드러내는 감정은 극단으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정치의 입장이라면 그저 반대하는 차원으로 갈라질 수 있지만, 신앙에 따른 차이는 끝을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물으신 것처럼,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해야 하거나 합당한 일을 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습니다. 다만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그 시간에 하느님의 뜻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시간을 사용하라는 것인데,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살았던 사람들이 드러낸 삶의 결과가 그 모양이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안식일의 규정을 잘못 해석했다는 얘기이기에, 예수님의 말씀은 타당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드러내는 삶의 행동은 나 혼자만의 구원을 목표로 삼는 것이어서는 곤란한 일입니다. 부족하다는 차원으로 끝낼 수 있는 얘기가 아니라, 하느님을 알고 그분께서 베푸시는 구원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어떻게 강조하면, 그 말에 담겨있는 심각함을 더 많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겠습니까? 잠시 기도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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