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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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 해를 선포하는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의 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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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6-23 ㅣ No.339

아르스의 본당 신부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의‘ 천상 탄일’ 150주년에 즈음하여

사제의 해를 선포하는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의 서한

 

 

사랑하는 형제 사제 여러분,

 

저는 다가오는 2009년 6월 19일 금요일 예수 성심 대축일에 - 이 날은 전통적으로 사제 성화를 위한 기도에 바쳐졌습니다. - 전 세계 본당 사제의 수호 성인인1)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의 ‘천상 탄일’ 150주년을 기념하여 ‘사제의 해’를 선포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사제들이 현대 세계에서 더욱 힘차고 분명한 복음 증거를 위하여 내적 쇄신의 노력을 강화하자는 뜻이 담긴 이 사제의 해는 2010년 예수 성심 대축일까지 지내게 될 것입니다. 아르스의 본당 신부였던 비안네 성인은 “사제직은 예수 성심에 대한 사랑”2)이라고 자주 말했습니다. 이러한 감동적인 표현은 무엇보다도 사제들이란 교회만이 아니라 바로 인류에게 주신 무한한 은총임을 우리가 정말 감사하는 마음으로 묵상하게 해 줍니다. 저는 생각과 의지와 감정과 생활 방식에서 주님과 하나가 되려고 노력하면서 온 세상과 신자들에게 날마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동을 그대로 보여 주는 모든 사제를 생각합니다. 그들의 사도적 노고와 지칠 줄 모르는 숨은 봉사와 보편적 사랑을 어찌 치하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온갖 곤경과 몰이해 속에서도 그들을 부르시고 선택하시고 파견하신 ‘그리스도의 벗’으로서 자신의 소명에 충실한 수많은 사제들의 용맹스러운 충성을 어찌 찬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제가 젊은 사제로서 보좌했던 저의 첫 주임 신부님을 지금도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큰 병을 앓는 사람에게 노자 성체를 주러 가시다가 돌아가실 만큼 사제 직무에 대한 헌신의 모범을 저에게 남겨 주셨습니다. 저는 또한 여러 나라를 사목 방문하면서 만났고 여전히 만나고 있는 수많은 동료 사제들을 기억합니다. 이들은 날마다 사제 직무를 위하여 열심히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의 말씀은 또한 그리스도의 상처 받은 성심, 가시관에 찔린 성심을 생각해 보도록 합니다. 그래서 저는 많은 사제들이 스스로 인간의 다양한 고통의 체험을 나누거나 자신이 봉사하는 바로 그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아 겪어야 했던 수많은 시련의 상황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또한 그들의 존엄을 손상당하고 사명을 방해받고 박해받고, 심지어 때로는 피를 흘리면서까지 지고한 증언을 하는 그 모든 사제를 어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유감스럽게도 교회가 일부 봉사자들의 불충으로 고통받는 매우 안타까운 상황도 있습니다. 그럴 때 세상은 교회를 비방하고 거부할 구실을 발견합니다. 그러한 경우 교회에 가장 도움이 되는 길은 교회 봉사자들의 나약함을 솔직하게 모두 인정할 뿐 아니라, 하느님과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는 헌신적인 사목자들과 수도자들의 모범과 통찰력과 인내심을 갖춘 영성 지도자들의 빛나는 모범으로 드러나는 하느님의 위대한 은총을 기쁘고 새롭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의 가르침과 모범이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준거가 될 수 있습니다. 아르스의 본당 신부는 매우 겸손했지만, 사제로서 자신이 신자들에게 무한한 은총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따르는 착한 목자는 좋으신 주님께서 한 본당에 주실 수 있는 최고의 보화이며, 하느님 자비의 가장 고귀한 은총입니다.”3) 이 성인은 사제직을 인간에게 맡겨진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위대한 은총이자 임무라고 말했습니다 “사제는 얼마나 위대합니까! …… 사제가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면 죽고 말 것입니다. …… 하느님께서 사제의 말을 따르십니다. 사제가 몇 마디 하면 그 말을 따라 주님께서 하늘에서 내려 오셔서 작은 성체 안에 머무르십니다.”4) 자신의 본당 신자들에게 성사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성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성품성사가 없다면 우리는 주님을 모시지 못할 것입니다. 누가 주님을 감실 안에 모십니까? 사제입니다. 여러분이 삶을 시작할 때 여러분의 영혼을 받아 준 사람이 누구입니까? 사제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에 자양분을 주고 그 여정에 힘을 실어주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사제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하느님 앞에 나아가도록 준비해 주고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겨 주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사제입니다. 언제나 사제입니다. 그리고 그 영혼이 (죄의 결과로) 죽게 될 때 그 영혼을 부활시키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 영혼의 고요와 평화를 되찾게 해주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또한 사제입니다. …… 하느님 다음에는 사제가 모든 것입니다! …… 오직 하늘에 오르고 나서야 사제는 자신의 신원을 온전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5) 이 거룩한 사제의 사제다운 마음에서 나온 이 말씀이 지나친 것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그가 성품성사에 대해 지녔던 높은 존중을 보여 줍니다. 그는 무한한 책임감에 짓눌렸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지상에서 사제의 신원을 온전히 깨달을 수 있다면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죽게 될 것입니다.……사제가 없다면 우리 주님의 수난과 죽음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될 것입니다. 지상에서 구원 사업을 계속하는 이는 사제입니다. …… 집에 보화가 가득 차 있다 하여도 그 문을 열  사람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사제는 하늘의 보물 창고를 여는 열쇠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문을 여는 이가 사제입니다. 사제는 좋으신 주님의 청지기입니다. 주님의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 20년간 본당에 사제가 없다면 본당 신자들은 결국 짐승을 숭배하게 될 것입니다. …… 사제는 자신을 위한 사제가 아닙니다. 그는 여러분을 위한 사제입니다.”6)

 

성인은 230명의 신자가 있는 아르스에 도착하기 전에 그곳의 신앙 실천이 매우 딱한 형편일 것이라고 경고해 준 주교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 본당에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거의 없습니다. 바로 신부님께서 그곳에 하느님의 사랑을 심어 주십시오.” 따라서 그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구현하고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자비를 증언하러 그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주님] 제가 제 본당을 회개시키도록 하여 주십시오. 저는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이라면 어떤 고난도 평생 감내하겠습니다!”7) 이렇게 기도하며 그는 자신의 사명을 받아들였습니다. 아르스의 본당 신부는 자기 본당의 회개를 위해 무엇보다도 신자들의 그리스도교 교육에 헌신하였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사제 여러분, 주 예수님께서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의 사목 계획에서 우리도 뭔가 배울 수 있는 은총을 주시도록 간청합시다! 우리가 우선 배워야 할 것은 자신의 직무와 완전히 일치를 이루는 일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인간과 사명은 함께 만나기 마련입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구원 사업은 당신의 ‘효심’의 표현이었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이는 사랑으로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태도로 영원으로부터 성부 앞에 서는 것입니다. 모든 사제도 겸손하지만 참되게 이와 같은 일치를 지향하여야 합니다. 분명히 사제 직무의 효력이 사제의 거룩함과는 별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제 직무의 객관적인 거룩함과 사제의 개인적인 거룩함이 일치할 때 이루어지는 놀라운 풍요를 간과해서도 안 됩니다. 아르스의 성인 사제는 자기 본당에서 구체적으로 그 사명을 ‘실천’할 결심을 하고, 사제로서 자신의 삶과 자신이 받은 사제직의 거룩함을 일치시키는 인내와 겸손을 요구하는 이 과업에 즉각 착수하였습니다. 그의 첫 전기에서 들려주는 것처럼 “그는 아르스에 도착하자 성당을 자기 거처로 삼았습니다. 그는 해가 뜨기 전에 성당에 들어가서 저녁 삼종기도 때까지 나오지 않았습니다. 신자들은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성당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8)

 

그의 전기 작가의 지나친 신심에서 우러나온 과장이 있었다 해도 아르스의 본당 신부가 자기 본당 구역 안에서 적극적으로 “사는” 법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신자 가정과 병자들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대중 선교를 조직하고 수호 성인의 축일을 거행하며 자선 사업과 선교 사업을 위한 기금을 모으고 관리하였습니다. 그리고 본당도 아름답게 꾸미고 어린이들의 교육에도 힘을 쓰며 고아들과 ‘프로비덩스’(성인이 세운 학교)의 교사들도 돌보았습니다. 또한 형제회도 설립하여 평신도들이 자신의 일을 돕도록 하였습니다.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의 모범에 따라 저는 평신도에게 더욱 완전히 개방되어야 할 협력 분야가 있음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사제와 평신도가 함께 사제다운 한 백성을 이루고 있으며,9) 사제들은 자기 직무의 힘으로  “모든 사람을 ‘형제애로 서로 깊이 아끼고, 서로 존경하는’(로마 12,10) 사랑의 일치로 이끌기 위하여”10) 평신도들 가운데에서 살아갑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제들에 대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다음과 같은 진심어린 격려를 되새겨야 합니다. “사제들은 평신도의 품위와 더불어 교회의 사명에 참여하는 평신도의 고유한 역할을 진지하게 인정하고 증진하여야 한다. …… 평신도들의 말을 기꺼이 듣고, 그들의 소망을 형제애로 숙고하며, 인간 활동의 여러 분야에서 그들의 경험과 역량을 인정하여야 한다. 그럼으로써 사제들은 평신도와 함께 시대의 징표를 인식할 수 있다.”11)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은 무엇보다도 자기 삶의 증언을 통하여 자기 본당 신자들을 가르쳤습니다. 그의 모범을 따라 본당 신자들은 기도하는 법을 배웠고 자주 감실 앞에 머물러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조배하였습니다.12) 아르스의 본당 신부는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좋은 기도에는 많은 말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감실 안에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 우리 마음을 활짝 열고, 그분의 거룩한 현존 안에서 기뻐합시다. 이것이 최상의 기도입니다.”13) 또한 그는 신자들에게 “형제자매 여러분, 영성체하러 오십시오. 예수님께 오십시오. 그분과 함께 살기 위하여 그분의 생명을 받아 모시러 오십시오.”14) 하고 권유하곤 했습니다. “물론 여러분은 그분의 몸을 모시기에 합당하지 않으나 여러분에게는 그분이 필요합니다!”15) 신자들에게 성체의 현존과 친교에 대해 교육하는 이 방식은 신자들이 미사 성제를 거행하는 그의 모습을 보았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입증되었습니다. 미사 참석자들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보다 더 훌륭한 예배란 찾아보기 힘듭니다. …… 신부님께서는 한없는 사랑의 눈길로 제병을 바라보았습니다.”16) 아르스의 본당 신부는 신자들에게 “훌륭한 일들을 전부 모아 놓아도 미사 성제에 비견할 수 없습니다. 거룩한 미사는 인간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17)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사제 생활의 열정이 전적으로 미사에 달려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사제가 해이해지는 이유는 미사에 전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사를 틀에 박힌 듯이 거행하는 사제야말로 얼마나 가엾습니까.”18)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은 미사 성제를 거행하며 늘 자기 자신의 삶을 희생 제물로 봉헌하였습니다. “사제가 아침마다 하느님께 자기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19)

 

이처럼 십자가의 희생 제사와 자신을 깊이 동일시함으로써 그는 오로지 마음만 움직여 제대에서 고해소로 이동하였습니다. 사제들은 고해소가 비어 있거나 신자들이 고해성사에 대해 노골적으로 무관심하다고 해서 결코 체념해서는 안 됩니다. 아르스의 본당 신부가 살던 시기에 프랑스에서 고해성사는 우리 시대처럼 쉽고 빈번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의 격변으로 오랫동안 신앙 생활이 금지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설교나 설득 등 모든 방법으로, 자기 본당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를 성체 현존의 본질적 요구로 제시하며 그들이 고해성사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재발견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는 힘찬 ‘선순환’(善循環)을 이끌어내었습니다. 비안네 성인은 성당의 감실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냄으로써, 신자들도 자기 본당 신부가 언제나 그곳에서 자기들의 말을 들어주고 용서해 줄 채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따라 예수님을 조배하러 오도록 이끌었습니다. 훗날, 점점 더 많은 수의 참회자가 프랑스 각지에서 모여 들자 그는 하루에 16시간씩이나 고해소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아르스는 이른바 “영혼들의 위대한 병원”20)이 되었습니다.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의 첫 전기 작가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그가 받은 은총이 매우 강력하여 이 은총은 죄인들을 따라다니면서 그들을 한시도 편하게 놔두지 않았다.”21)고 전하고 있습니다.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도 같은 생각을 담은 말을 하였습니다. “하느님께 돌아가 용서를 비는 사람은 죄인이 아닙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직접 죄인을 좇아가 그가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는 것입니다.”22) “이 좋으신 구세주께서는 사랑으로 충만하시어 우리가 어디에 있든 우리를 찾아내십니다.”23)

 

우리 사제들은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가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처럼 전하는 다음과 같은 말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직접 해당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는 나의 성직자들이 내가 언제나 죄인들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고 내 자비는 무한하다는 것을 죄인들에게 선포할 책임을 맡길 것이다.”24)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에게서 우리는 고해성사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을 갖고 다시 한 번 고해성사를 우리의 사목적 관심의 중심에 놓아 ‘구원의’ 대화를 나누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아르스의 본당 신부는 참회자들마다 다른 방식으로 대하였습니다. 하느님께 용서받고자 하는 깊고 겸손한 열망에 이끌려 그의 고해소로 찾아온 이들은 그에게서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는 ‘하느님 자비의 홍수’에 뛰어들 수 있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자신의 나약함과 우유부단함으로 다시 죄 짓게 될까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아르스의 본당 신부는 다음과 같은 아름답고 감동적인 말로 하느님의 사랑의 신비를 드러내 주었습니다. “좋으신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당신이 고백하기 이전에 이미 주님께서는 당신이 또 죄를 지으리라는 것을 알고 계시지만 그래도 여전히 당신을 용서해 주십니다. 우리 하느님의 사랑은 너무나 위대하여 우리에게 용서를 베푸시고자 내일의 일은 기꺼이 잊고자 하십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용서를 베푸실 수 있는 것입니다.”25)

 

그러나 성의 없게 죄를 고백하는 사람에게는 그 자신이 고통의 눈물을 흘리며 그러한 태도가 얼마나 ‘가증스러운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당신이 울지 않기 때문에 제가 웁니다.”26)고 하며, “주님께서 그토록 좋으신 분이 아니셨다면 어쩔 뻔 하였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무 좋으신 분이십니다! 그토록 좋으신 아버지를 이렇게 대하는 사람은 짐승만도 못합니다.”27) 성의 없는 고해자에게 그들의 죄에 대해 아파하시는 하느님의 고통을 고해 사제를 통해 보여 줌으로써 그들에게 참회의 마음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한편, 이미 바람직하고 적절하게 깊은 영성 생활을 하고 있는 이가 찾아오면 그는 한 없이 깊은 하느님 사랑을 활짝 열어 보이며 하느님과 일치하여 하느님 안에 머물러 살아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설명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보시고 모든 것과 함께 하시며 모든 것에 기뻐하십니다. …… 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28) 그리고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기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저의 하느님, 제가 온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은총 내려 주소서.”29)

 

당시 아르스의 본당 신부는 신자들이 주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삶을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우리 시대에도 마찬가지로 사랑의 진리에 대한 선포와 증언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8). 예수님의 말씀과 성사들 덕분에,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은 자신의 양떼를 모았습니다. 그러나 그도 자신의 개인적 역량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자주 고민했고 자신이 합당하지 못하다는 생각에서 본당 사목의 책무에서 떠나고자 바란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모범적인 순명으로 자기 자리를 포기하지 않고 영혼들의 구원에 대한 사도적 열정으로 불타올랐습니다. 그는 엄격한 수덕을 실천함으로써 자기 소명과 사명에 온전히 충실하게 머무르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우리 본당 신부에게 매우 안타까운 것은 우리 영혼의 열의가 식어간다는 것입니다.”라고 탄식하였습니다. 사목자가 자기 양떼 가운데 그토록 많은 이들이 겪고 있는 죄와 무관심의 상태에 점점 익숙해져 버리는 위험을 경고한 것입니다.30) 그는 자신의 육신이 자신의 사제다운 마음을 거스르지 않도록 철야 기도와 단식을 통해 계속 경계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또한 자기가 보살피는 영혼들의 행복을 위하여 고해성사 때 들은 수많은 죄를 속죄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스스로 고행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형제 사제에게 “내 비결을 밝히자면, 나는 죄인들에게 작은 보속을 주고 그 나머지는 내가 대신 한다네.”31)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아르스의 본당 신부가 실천한 실질적 참회와 더불어, 그의 가르침의 핵심, 곧, 예수님께서 몸소 피흘리신 대가로 영혼들이 구원을 받았으며 사제가 구원을 위한 그 ‘고귀한 희생’에 직접 동참하기를 꺼리면 영혼의 구원에 헌신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여전히 유효합니다.

 

아르스의 본당 신부가 살던 혼란한 시대와 마찬가지로 현대 세계에서 사제의 생활과 활동은 힘찬 복음 증거로 드러나야 합니다. 바오로 6세 교황님께서 말씀하셨듯이, “현대인은 스승의 말보다 좋은 표양을 주는 사람의 말을 기꺼이 듣습니다. 스승의 말을 듣는다면 스승이 좋은 표양을 주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32) 우리가 헛되이 살지 않고 또 우리 직무의 힘을 지키려면, 우리는 새로운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 하느님의 말씀에 젖어 삽니까? 그 말씀이 참으로 빵이나 이 세상 것들보다 더 우리를 살찌워주는 우리 삶의 양식입니까? 우리는 정말 그 말씀을 알고, 그 말씀을 사랑합니까? 그 말씀이 참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주고 우리의 사고를 형성할 만큼 그 말씀에 깊이 빠져 있습니까?”33)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에게 먼저 당신과 함께 머물도록 요청하시고(마르 3,14 참조) 나중에서야 말씀을 전파하도록 파견하셨던 것처럼, 우리 시대에도 사제들은 주 예수님께서 시작하셨고 사도들이 뒤따른 ‘새로운 삶의 양식’에 맞추어 살도록 요청받습니다.34)

 

아르스의 본당 신부인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의 사제 직무에서 두드러진 점도 바로 이러한 ‘새로운 삶의 양식’에 대한 완전한 투신이었습니다. 교황 요한 23세께서는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의 선종 100주년을 맞아 1959년에 발표한 회칙 Sacerdotii nostri primordia에서, 사제들에게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신 ‘세 가지 복음적 권고’를 특별히 언급하시며 그의 금욕 생활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사제들이 성직자 신분이기 때문에 이 세 가지 복음적 권고를 이행할 의무는 없다 하더라도, 이 세 가지 권고는, 모든 신자들에게 그러하듯이, 그리스도교 완덕의 바람직한 목표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35) 아르스의 본당 신부는 자신의 사제 신분에 알맞은 방식으로 ‘복음적 권고’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청빈은 수도자가 아니라 사제에게 알맞은 것이었습니다. (부유한 순례자들이 그의 자선 활동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된 이후로) 많은 돈을 관리하면서도 그는 그 모든 것은 그의 교회와 그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과 고아들, 그가 운영하는 ‘프로비덩스’36)의 버림받은 소녀들, 가장 가난한 가정들에 기부된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베푸는 데는 부자였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매우 가난했습니다.”37)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나의 비결은 간단합니다. 모든 것을 줘버리고, 아무 것도 지니지 않는 것이죠.”38) 돈이 떨어지면 그는 그의 문을 두드리는 가난한 이들에게 다정하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오늘은 나도 당신처럼 가난합니다. 당신하고 다를 바 없답니다.”39) 임종을 맞아 그는 너무도 평온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겐 더 이상 아무 것도 없습니다. 좋으신 주님께서 원하실 때 언제든 저를 부르실 수 있습니다.”40) 그의 정결 또한 그의 사제 직무에서 요구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날마다 성체를 만져야 하는 사람, 더 없이 행복하게 성체를 바라보고, 또한 더 없는 기쁨으로 신자들에게 성체를 나누어 주는 사람에게 적합한 정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에게서 정결의 빛이 뿜어 나왔다.”고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신자들은 그가 사랑이 가득 담긴 눈으로 감실을 바라볼 때 이를 알 수 있었습니다.41) 끝으로,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의 순명은 날마다 그의 사제 직무를 의식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잘 드러났습니다. 우리는 그가 자신이 본당 사목에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참으로 괴로워했고, “자신의 보잘것없는 삶을 통탄하고자 아무도 없는 데로”42) 도망가고 싶어 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직 순명과 사람들에 대한 열정 때문에 그는 자기 자리에 머물 수 있었습니다. 그가 자신과 신자들에게 설명했듯이, “하느님을 섬기는 데에는 두 가지 길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길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분께서 바라시는 대로 그분을 섬기는 것입니다.”43) “좋으신 주님께 바칠 수 있는 일만 하십시오.”44) 그는 이를 순명의 삶을 위한 황금률이라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영성은 복음적 권고를 실천함으로써 풍부해지므로, 저는 이 사제의 해에 모든 사제들에게 오늘날 성령께서 특히 교회의 운동 단체들과 새로운 공동체들을 통해 교회에 가져다 주시는 새로운 봄을 맞이하라고 권유하고자 합니다. “성령께서는 당신의 은사를 통해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 성령께서는 불고 싶으신 대로 부십니다. 예기치 않게 또 예기치 않은 장소에,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방법으로 나타나시지만, 한 몸을 위해 한 몸으로 일치하여 활동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45) 이런 점에서, 사제의 생활과 교역에 관한  교령 「사제품」(Presbyterorum Ordinis)은 지금도 시의 적절합니다. “사제는 어떠한 영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인지 판단하고, 평신도들이 받은 높고 낮은 여러 형태의 은사들을 신앙 감각으로 찾아 내고 기꺼이 인정하며, 열심히 보살펴 주어야 합니다.”46) 이러한 은사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더 깊은 영성 생활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켜, 평신도들뿐만 아니라 성직자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서품 직무와 은사 직무의 친교는 “교회가 세상 구석구석에 희망과 사랑의 복음을 전하고 증언하는 일에 새롭게 투신하도록 유익한 자극”47)을 줄 수 있습니다. 저는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 권고 「현대의 사제 양성」(Pastores Dabo Vobis)을 인용하여, 성품 직무는 근본적으로 ‘공동체적인 성격’을 지니며, 사제들과 그들 주교의 친교를 통해서만 행사될 수 있음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사제와 그들 주교의 이러한 친교는 성품성사에 바탕을 두고 있고, 성찬 거행을 통해 드러나므로, 사제들의 실제적이고 우호적인 형제애로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49) 그럴 때에 비로소 사제들은 독신의 은사를 충만히 실천하고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번영을 이룰 수 있고, 첫 복음 전파가 이루어졌던 기적들이 그에서 계속될 수 있습니다.

 

이제 막을 내리는 바오로의 해에 우리는 자기 직무에 전적으로 헌신한 사제의 빛나는 모범이신 이방인의 사도를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한 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고 그리하여 결국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우리가 확신하기 때문입니다.”(2코린 5,14)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덧붙여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살아 있는 이들이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2코린 5,5)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교 완덕의 길을 따라 나아가려고 결심한 사제에게 이보다 더 좋은 계획을 제시해 줄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형제 사제 여러분,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의 선종(1859년) 150주년은 루르드의 성모님 발현(1858년) 150주년에 뒤이어 거행됩니다. 1959년에 복자 요한 23세께서는 이렇게 지적하셨습니다. “아르스의 본당 신부가 그의 긴 훌륭한 삶을 마무리하기 직전에, 원죄 없으신 동정 성모님께서 프랑스의 다른 곳에 사는 보잘것없는 한 순진한 소녀에게 나타나시어 기도하고 회개하라는 메시지를 남기셨습니다. 그 메시지는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도 계속되어 엄청난 영적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념하고 있는 이 거룩한 사제의 삶은 마사비엘의 소녀에게 가르쳐 준 위대한 초자연적 진리를 실질적으로 선취한 것입니다. 그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에 대한 신심이 매우 깊었습니다. 1836년에 그는 자신의 본당을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 바쳤으며 1854년에 발표된 이 진리에 대한 교의를 깊은 신앙과 기쁨으로 반겼습니다.”50) 아르스의 사제는 자기 신자들에게 이렇게 상기시켜 주곤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가지신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신 다음 마지막으로 당신의 가장 고귀하신 복되신 어머니를 우리에게 남겨 주시고자 하셨습니다.”51)

 

저는 이 사제의 해를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 성모님께 바칩니다. 성모님께서 모든 사제의 마음에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완전한 자기 봉헌의 이상적인 삶에 아낌없이 새롭게 투신하려는 마음을 불러일으켜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거룩한 아르스의 본당 신부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주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이상입니다.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께서 날마다 하느님과 교회에 대한 완전한 자기 봉헌의 삶에 정진할 수 있게 해준 것은 그의 열심한 기도의 삶과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께 대한 열정적 사랑이었습니다. 그분의 모범을 따라 모든 사제들이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한 일치, 곧 자기 주교와 이루는 일치, 그리고 다른 사제들과 함께 또 평신도들과 이루는 일치를 증언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 온갖 악이 존재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다락방에서 당신 사도들에게 들려 주신 말씀은 지금도 우리에게 영감을 줍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볼 힘을 얻습니다. 사랑하는 사제 여러분,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믿고 계십니다. 아르스의 본당 신부의 뒤를 따라, 여러분도 그리스도만을 섬기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화해와 평화, 희망의 선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축복을 보내며,

 

바티칸에서

2009년 6월 16일

교황 베네딕토 1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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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오 11세 교황 성하께서 1929년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를 전 세계 본당 신부의 수호 성인으로 선포하셨다.

2)  “Le Sacerdoce, c’est l’amour du cœur de Jesus” (「아르스의 본당 신부. 그의 생각-그의 마음」[Le cure d’Ars. Sa pensee - Son coeur]. 베르나르 노데(Bernard Nodet) 신부 해설, 자비에 마퓌(Xavier Mappus) 편집, Foi Vivante, 1966,  98면). 이하 「아르스의 본당 신부로 표기. 이 말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1589항에도 나온다.

3) 「아르스의 본당 신부」, 101면.

4) 「아르스의 본당 신부」, 97면.

5) 「아르스의 본당 신부」, 98-99면.

6) 「아르스의 본당 신부」, 98-100면.

7) 「아르스의 본당 신부」, 183면.

8) 몬닌(Monnin A.), 「아르스의 본당 신부, 요한 바티스타 마리아 비안네 성인의 생애」(Il curato d’Ars. Vita di Gian-Battista-Maria Vianney), 1권, Mariett 편, Turin, 1870, 122면.

9)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10항 참조.

10)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제의 생활과 교역에 관한 교령 「사제품」(Presbyterorum Ordinis), 9항.

11) 사제 생활 교령, 9항.

12) 「가톨릭 교회 교리서」, 2715항: “관상 기도를 하는 것은 신앙의 눈길을 예수님께 고정시키는 것이다. ‘저는 그분을 보고 그분은 저를 보고 계십니다.’ 이것은 비안네 성인이 아르스의 본당 신부로 있을 때 감실 앞에서 기도하던 한 농부의 말이다.”

13) 「아르스의 본당 신부」, 85면

14) 「아르스의 본당 신부」, 114면.

15) 「아르스의 본당 신부」, 119면.

16) 「아르스의 본당 신부. 요한 바리아 비안네 성인의 생애」, II, 430면 이하.

17) 「아르스의 본당 신부」, 105면.

18) 「아르스의 본당 신부」, 105면.

19) 「아르스의 본당 신부」, 104면.

20) 「아르스의 본당 신부, 요한 바리아 비안네 성인의 생애」, II. 293면.

21) 「아르스의 본당 신부, 요한 바리아 비안네 성인의 생애」, II. 10면.

22) 「아르스의 본당 신부」, 128면.

23) 「아르스의 본당 신부」, 50면.

24) 「아르스의 본당 신부」, 131면.

25) 「아르스의 본당 신부」, 130면.

26) 「아르스의 본당 신부」, 27면.

27) 「아르스의 본당 신부」, 139면.

28) 「아르스의 본당 신부」, 28면.

29) 「아르스의 본당 신부」, 77면.

30) 「아르스의 본당 신부」, 102면.

31) 「아르스의 본당 신부」, 189면.

32) 바오로 6세, 교황 권고 「현대의 복음 선교」(Evangelii Nuntiandi), 1975.12.8., 41항.

33) 베네딕토 16세, 성유 축성 미사 강론, 2009년 4월 9일.

34) 베네딕토 16세, 성직자성 정기 총회에서 하신 연설, 2009년 3월 16일.

35) 회칙 Sacerdotii nostri primordia, 12항.

36) 60명 이상의 버림받은 소녀들을 받아들여 교육시킨 집의 이름. 이 집의 유지를 위해 그는 무엇이든 했다. “나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고 그는 웃으면서 말하곤 했다: 「아르스의 본당 신부」, 214면.

37) 「아르스의 본당 신부」, 216면.

38) 「아르스의 본당 신부」, 215면.

39) 「아르스의 본당 신부」, 216면.

40) 「아르스의 본당 신부」, 214면.

41) 「아르스의 본당 신부」, 112면 참조.

42) 「아르스의 본당 신부」, 82-84.102-103면 참조.

43) 「아르스의 본당 신부」, 75면 참조.

44) 「아르스의 본당 신부」, 76면.

45) 베네딕토 16세, 성령 강림 대축일 전야 강론, 2006년 6월 3일.

46) 사제 생활 교령 9항.

47) 베네딕토 16세, 포콜라레와 성 에지디오 공동체의 동료 주교들에게 한 연설, 2007년 2월 8일.

48)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 권고 「현대의 사제 양성」(Pastores Dabo Vobis), 17항 참조.

49) 「현대의 사제 양성」, 74항.

50) Sacerdotii nostri primordia, 115-116항.

51) 「아르스의 본당 신부」, 24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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