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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문헌ㅣ메시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노동하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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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27 ㅣ No.347

[문헌 풀어 읽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노동하는 인간”

 

 

이미 19세기에 산업 노동의 대두와 더불어, 인간의 노동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두고 새로운 성찰과 토론이 시작되었다. 이 토론은 특히 마르크스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노동에 대한 가르침에 의해서 제기되었다. 노동에 대한 신학적 토론이 이미 있어왔지만, 이제 이 주제에 대한 교회의 공식적 입장 표명 또한 나오게 되었다.

 

특히, 다음 두 가지 범주가 눈에 띈다. 곧, 노동의 의미와 가치, 노동에 대한 인간의 의무와 권리가 그것이다.

 


인간 노동의 의미와 가치

 

우선 인간 노동의 이용 가치가 제기되었다. 레오 13세는 “새로운 사태”(1891년)에서, “어떤 별다른 곳에서가 아니라 바로 일하고 있는 인간의 노동에서부터 국가의 번영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다.”(25항 참조)라고 천명했다. 이 문장으로 노동의 가치가 인정되고 있는데, 마르크스주의의 의미로 다시 새겨보면, 노동이 마치 가치 창출의 유일한 유발 요소인 것처럼 잘못 이해될 수도 있다. 그래서 비오 11세가 “새로운 사태”의 이 문장을 “사십주년”에서 한 번 더 명시하되, 다음과 같이 세 가지 방향으로 보충 설명하고 있다.

 

① 인간 노동의 생산성은 공구나 기계의 생산성에 의해 보강된다.

 

② 손으로 하는 노동뿐만 아니라 머리를 써서 하는 노동까지도 생산적인 것이다. 따라서 소득은 육체노동에 선행하는 정신노동에 의해서도 좌우된다.

 

③ 생산요소인 한 사람의 노동과 다른 사람의 생산 수단이 생산적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 관련 맺어야만 한다(24항 참조).

 

요한 바오로 2세는 “노동하는 인간” 전체를 노동하는 인간의 문제에 할애하고 있다. 그는 노동의 존엄성 논의를 심오한 신학적 근거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곧 인간은 노동을 통해 하느님의 모상을 닮아 가는데, 그것은 노동을 통해서 하느님의 소명을 따르고, 그것을 충족시키며, 세상을 예속시키고, 굴복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이 소명을 충족시키면서 인간은 창조주의 작업을 반영한다”(4.9항). 따라서 인간이 세상의 ‘주인’이 되면서 그는 하느님의 모상에 근접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노동을 통해 인간은 창조주의 작업을 “어떤 의미에서 더욱 더 개발하고 완성하면서”(25항) 이 작업에 동참하기도 한다.

 

인간의 이 ‘주인됨’은 ‘인간임의 실현’이고 “인격적 존재라는 소명을 실현케 하는” 것이다(6항). “노동은 인간을 위한 - 인간임을 위한 - 일종의 선인데, 왜냐하면 노동을 통해서 인간은 자기의 필요에 따라 자연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인간으로 실현시키며 어떤 의미에서는 더욱 더 인간답게 되기도 한다”(9항). 따라서 노동의 가치는 극히 객관적인 업적을 척도로 하여 볼 것이 아니라, ‘그 주체의 존엄성’을 척도로 봐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가장 보잘것없는 업무 수행도 인간의 인격적 자아실현이 되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노동은 똑같이 가치 있는 것이다. 인간이 ‘노동의 목적’이다(6항). 그러므로 노동은 결코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파는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때문에 인간은 경제적 과정에서 ‘단순한 공구’로서 여겨져도 안 되며,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물질적인 생산 수단의 총체와 동일시되어서도 안 된다”(7항). 한마디로 ‘자본에 선행하는 노동’의 원칙이 지켜져야만 한다는 것이다(12항).

 

 

노동에 대한 권리와 의무

 

많은 나라의 헌법에서 ‘노동에 대한 권리’를 기본권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대다수의 인간이 노동에 의한 소득으로 삶을 영위해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권리가 분명히 있음을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교회는 이 문제에 어떤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가? 최초의 사회 회칙 “새로운 사태”와 “사십주년”에서는 ‘노동에 대한 권리’가 아직 분명히 언급되지 않고 있다. 단지 “사십주년”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보일 뿐이다. “일할 수 있고 일할 뜻이 있는 모든 이는 실제로 노동 기회를 얻어야 한다”(4항).

 

그러나 비오 12세 이래 ‘노동에 대한 권리’는 분명히 표현되고 있으며, 동시에 노동에 대한 의무도 언급되고 있다. 인간의 ‘천부적인 노동 의무’와, ‘침해되어서는 안 될 인간의 권리 하에서의 노동에 대한 권리’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목헌장 “기쁨과 희망”의 제2장 ‘인간 공동체’에서 지적하고 있다(26항). 따라서 사회는 인간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기회를 제공할 의무를 갖는다(67항).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노동하는 인간”에서 한 번 더, 노동을 해야 하는 인간의 의무와 권리에 관해 특별히 언급하고 있다. “인간은 노동을 해야 한다. 우선 창조주가 노동을 명령했기 때문이고, 또 그 유지와 발전을 위해 노동을 필요로 하는 인간 자신의 인간 본성 때문이다. 인간은 다른 사람을 향한 관심에서 특히 자기 자신의 가족을 위하여 일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를 위해, 자신이 태어난 국가를 위해, 그리고 자신이 한 구성원으로 있는 전인류 가족을 위해 일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수많은 세대에 걸친 노동의 상속자이며 동시에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의 뒤를 따라올 사람들이 이룩할 미래 건설의 참여자이기 때문이다”(16항).

 

노동에 대한 교회의 입장에 관해 이미 말한 바를 개관해 본다면, 무엇보다도 교회는 노동을 인간의 의무와 권리로뿐만 아니라, 인간의 명예로도 보고 있음이 눈에 띈다. 곧 인간은 노동하도록 ‘특은을 받은’ 것이다. 노동에 대한 이러한 더욱 고결한 견해를 근거로, 경제과정에서 공정한 임금과 노동자의 공동 결정을 보장하라는 교회의 요구가 납득할 만해지고 있다. 곧 노동하는 인간의 존엄성은 말로만 존중될 것이 아니라, 그에 맞는 대우로도 존중되어야 한다.

 

* 허창수 헤르베르트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수사 신부. 독일 출신으로 1972년에 한국에 입국하였으며,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와 지부장을 지냈다. 현재 구미 가톨릭 근로자 센터 소장으로 있다.

 

[경향잡지, 2008년 5월호, 허창수 헤르베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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