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3일 (일)
(녹) 연중 제12주일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강론자료

2014-0706.....김대건성인사제기념일(0705)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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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07-05 ㅣ No.1546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안드레아사제순교자 대축일 [0705]

역대기하권 24,18-22         로마 5,1-5      마태 10,17-22

2014. 7. 6. (주일). 등촌3. (75일은 192579위 시복일)

주제 : 사제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기를.....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김대건안드레아성인사제의 순교자 대축일을 옮겨서 기억하는 날입니다. 이 축일은 김대건안드레아성인사제의 개인적인 삶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교회공동체에서는 1925년에 있었던 79위 순교자들의 시복식 날에, 하느님의 일을 세상에서 실행하면서 사는 이 땅에 사는 사제(司祭)들을 위해서 함께 기도할 것으로 정한 날입니다.

 

저도 김대건안드레아성인사제의 뒤를 따라, 우리나라 서울교구, 조금 더 좁혀서 등촌3동 성당에서 교구장님의 명령에 따라 살고 있는 사제입니다. 지금까지 20년을 조금 더 넘긴 사제생활이 하느님 안에서 마칠 때까지 성실하게 살아가도록 기도에 함께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신앙인에게 기도는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가까이 하기가 참 힘든 일입니다. 세상의 일들처럼, 밥을 먹으면 금방 배부른 것도 아니고, 졸려서 잠을 자고 나면 그 피곤함이 풀리는 것과 같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결과를 지금 하는 기도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밥을 먹거나 잠을 자는 일은 세상인간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지만, 기도를 하고 그 기도의 결과가 세상에 드러나는 것은 하느님의 일이기에 그 모습을 사람의 생각대로 사람의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전례기념일로 정한 날이기는 합니다만, 우리가 오늘 김대건안드레아성인사제의 삶을 새삼스레 강조할 시간은 아닙니다. 그래도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사제성인은 1821년 솔뫼에서 태어났고, 1845년에 사제가 되었으며, 1846916일에 서울교구 새남터성당이 있는 모래밭에서 군문효수(軍門梟首)()으로 죽으신 분입니다. 그리고 1925년 오늘 복자로서 선언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의 사제였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그분이 겪었던 삶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본보기를 따라 사는 이 땅의 사제들이 하느님의 일을 충실히 살아내기를 기도해주실 것을 청합니다.

 

우리가 세상살이에서 해야 하는 일들은 걱정한다고 해서 더 잘 될 일들은 없습니다. 그것보다 그 시간만큼 더 많이 노력하고, 힘겨운 일을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내 삶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게 도와주시라는 기도를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기도는 세상에 사는 사람이 하는 일이지만, 세상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 나의 삶을 봉헌하고 내 삶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게 해달라는 청원이고 하느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시면서, 그들이 가져야 할 삶의 자세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자세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강조하는 것은 걱정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말씀을 통해서, 신앙인으로 사는 우리가 세상에서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가 무엇인지 여러 차례 듣습니다만, 우리의 자세는 어떠하겠습니까?

 

실제로 우리가 매일매일 삶에서 반복하여 걱정하는 일로서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내게 올 녀석이라면 내가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그 두려움이 내가 걱정한다고 나를 비켜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내가 두려워하고 겁낸다는 것을 알면, 오히려 나를 더 만만하게 보면서 나를 이기려고 할 것이고, 그렇게 가진 두려움 때문에 나는 패배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한 번 더 기억한다면 그것은 걱정에 한 올바른 태도입니다. 걱정거리가 우리 삶에 찾아오지 않도록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가진 능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가졌거나 발휘할 능력은 다른 데 있습니다.

 

사람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거나 따르는 것은 참으로 커다란 선택입니다. 이 선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구나 정답은 말할 수 있지만, 누구나 다 정답대로 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오늘 첫 번째 독서, 역대기서의 말씀으로 들은 내용은 그 얘기 중에 한 가지를 전해줍니다.

 

어린나이에 비명횡사(非命橫死)할 수도 있었던 위기를 여호야다사제의 도움으로 모면하고, 유다국가의 최고통치자가 된 요아스임금은 세상 사람들에 대하여 왕권을 드러낼 기회를 갖게 되자, 하느님을 멀리하고 여호야다사제의 아들, ‘즈카르야사제를 성전앞마당에서 죽입니다. 사제로 살면서, 세상의 임금인 자신이 하는 일에 반대하는 소리를 했다는 것이 죄목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들으면서 느껴야 할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세상 삶에 하느님의 뜻을 들어 간섭하는 사제는 죽여야 한다는 얘기일까요? 사제가 뭘 몰라서, 사제가 자기 목숨이 아까운 줄 몰라서 정치를 향해 하느님의 뜻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렇게 행동한 요아스임금이 잘못한 거라고 탓하는 것이어야 하겠습니까? 즈카르야사제는 죽으면서, ‘주님께서 보고 갚으실 것이라고 모진 소리를 했습니다만, 실제로 즈카르야사제의 말에 겁을 먹은 세상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 서글픈 일입니다. 즈카르야사제의 말대로 유다국가는 대략 30년쯤 후에 멸망합니다.

 

세상을 향해서 선포하는 사제의 말에, 하느님의 뜻이 담겨있지 않은 경우도 있을까요? 물론 사제가 개인의 생각을 담아서 말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구별해서 알아들을 수 있다면, 세상에 사는 많은 사람은 사제들이 하는 말을 통해서 하느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고, 사제들이 하느님의 뜻을 세상에서 잘 실천하라고 기도해야 할 일입니다.

 

사람과 하느님 사이에 머물면서, 세상의 사람들을 위한 중개자로 살아가는 사제들이, 하느님의 뜻을 전할 수 있고, 그들이 전하는 것이 진정으로 하느님의 뜻이 되게 하려면, 세상에 사는 우리가 기도로 함께 해야 합니다. 오늘은 이 땅에서 처음으로 사제의 삶을 살았던, 김대건안드레아사제를 기억하면서, 함께 기도하는 날입니다. 우리기 참여하는 기도가 어떤 결과를 맺을지는 알 수 없지만, 하느님께 졸라서라도 사제들이 올바른 사람들이 될 수 있게 해주시라고 청하는 날로 지내시기를 청합니다.

 

사랑의 주 하느님, 이 땅에 사는 사제들이 당신의 뜻을 받아들이고, 세상에 그 뜻을 바르게 펼치는 사람이 되기를 청하는,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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