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6일 (일)
(녹) 연중 제11주일 어떤 씨앗보다도 작으나 어떤 풀보다도 커진다.

강론자료

2015-0416.....부활 제2주간 목요일

스크랩 인쇄

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4-15 ㅣ No.1753

부활 제2주간 목요일

사도행전 5,27-33                 요한 3,31-36

2015. 4. 16. 이태원

주제 : 하느님을 따르는 사람의 자신감

세상의 삶은 누구에게나 어렵습니다. 혹시 우리 주변의 이런 생각과는 달리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주 놀라운 사람이거나 세상에서 하는 말로(=속칭하여) 뭔가 모자라는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둘째 표현으로 말할 때는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듣는 사람을 흥분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표현을 바꾸어 달리 표현하면 어떻겠습니까?


세상의 삶이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통용될 진리라고 하면서, 그 삶을 다르게 만들 방법을 찾기란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 어딘가에는 있겠지만, 그런 방법을 찾기가 어렵다는 말이 정확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정치가의 손에 맡겨 죽게 하는데 일조(一助)한 대사제의 입장에서, 감히 배운 것도 없고 세상에서 인정하는 직책들도 낮은 사도들이 덤비는 것을 보고 그냥 참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에서 인정하는 권력을 이용하여 사도들의 입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시각을 벗어나 살던 사도들이 그들의 말을 듣고 뒤로 물러섰을까요?


놀라운 경험인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했으니 그렇게 했을 거라고 우리는 말하지만, 그것까지 인정하지 않았던 대사제는 기껏 예수님을 죽게 한 일에 대하여 자신은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서는 이렇게 자신의 과오(過誤,=과실(過失,=잘못이나 허물)를 인정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과오를 인정한다는 것은 곧 세상의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한번 죽으면, 그렇게 죽고 난 다음에 자신에게 도움이 될 일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잘못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사제가 강요했지만, 사도들은 그들 앞에서 주눅이 들지 않았습니다. 대시제가 살던 삶의 방식과 다른 것을 기준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기준도 나름대로는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하겠지만, 사도들은 그것을 인정하는 것보다는 그 세상의 기준에 과감하게 도전합니다. 그리고 그 도전은 훗날 세상을 기준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승리로 끝난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삶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는지는 세상의 시각으로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해도, 그것은 분명히 드러나는 삶의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세상일에 대하여 주눅이 들어있거나,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여전히 세상의 일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매우 안타깝다는 것입니다

 

니코데모와 예수님의 대화는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내용은 아닙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 잠시 묵상할 시간....



517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