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6일 (일)
(녹) 연중 제11주일 어떤 씨앗보다도 작으나 어떤 풀보다도 커진다.

강론자료

2015-0504.....부활 제5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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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5-03 ㅣ No.1768

부활 제5주간 월요일

사도 14,5-18                요한 14,21-26

2015. 5. 4. 이태원

주제 : 삶의 중심은 하느님에게...

우리가 세상에서 신앙인으로 산다고 하면서, 갖거나 드러내는 삶의 태도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안으로 가진 자세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기는 하지만, 그런 태도와 자세는 언제 어느 때에 내 삶을 찾아와 내가 행한 수많은 일들을 판단하는 근거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듣는다고 어쩔 수는 없는 일일 것입니다.


복음선포의 길에 나선 바오로와 바르나바에게 펼쳐진 마당은 잘 준비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좋은 것은 누릴 줄 안다고 하면서도 내 앞에 펼쳐지는 색다른 일에도 늘 자비롭게 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터키지방 중부에서부터 서쪽으로, 로마제국의 영내에 발전했던 도시들, 특히 유대인들이 모여 살던 곳을 찾아가 복음을 선포한 두 사도들 앞에 준비된 것은 험난한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는 그렇게 최초의 복음전파자들이 겪었던 다양한 얘기들이 나옵니다만, 오늘 얘기는 그런대로 양반입니다. 물론 그렇게 다가온 사람들의 자세도 사도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이교제사의 형태를 막은 내용을 전합니다.


세상의 기준에서라면, 내가 하라고도 하지 않은 일에, 그 결과가 내가 높아지게 해주겠다는 것을 두 명의 사도가 왜 거부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말해야 할까요? 인간이면 인간의 위치에 맞는 대우가 있을 터인데, 자기들에게 다가오는 상황이 자신들이 겪을 수 있는 한계를 넘는다는 판단을 했고, 그래서 두 사도는 나서서 자기들에게 엉뚱한 결과가 오지 않도록 막았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은 모든 사람이 다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겠지만, 상당수의 경우, 세상에서 자기 맘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살기 쉽습니다. 이런 일에는 신앙인이건 아니건 구별이 없습니다. 세상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들은 그럴 수 있겠거니 생각하겠지만, 신앙인들이라고 말하면서 세상의 기준에 따라 이름을 드러내고 명예를 찾으며 편리를 찾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냐고 묻는다면 드러나는 이름은 다르지만, 행동은 같은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세상의 기준에 따라 해도 좋다고 말한다면, 그런 세상에서는 신앙의 빛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이 사는 세상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사람의 삶에는 수많은 가능성이 펼쳐져있습니다. 그렇게 가능성만 보고 마음껏 살 수도 있습니다만, 그것만을 판단기준으로 삼는 일 대신에,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행동을 보시고, 그 안에서 드러나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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