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3일 (목)
(녹) 연중 제7주간 목요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세계교회ㅣ기타

동티모르 교회: 정신적 대통령 벨로 주교 사임하다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1 ㅣ No.28

[세계 교회는 지금] 동티모르 교회 : 정신적 대통령 벨로 주교 사임하다

 

 

2002년 5월 20일, 동티모르가 정식으로 독립했다. 인도네시아 동쪽 티모르 섬의 동쪽 절반을 국토로 한 이 새로운 나라의 대통령으로는 사나나 구스마오가 취임하였다. 그는 동티모르가 포르투갈 식민지이던 1970년대 초부터 동티모르 독립혁명전선(프레틸린)의장으로서 당시 제3세계에 유행하던 사회주의자였다. 그러나 포르투갈의 뒤를 이어 동티모르를 무력 점령, 병합한 인도네시아의 감옥에서 그는 세계의 양심수로 주목받았고, 이제는 이념은 색이 바랜 채 독립과 인권의 대표자가 되었다.

 

사나나 구스마오가 정치적 대통령이라면, 벨로 주교는 정신적 대통령이다. 카를로스 필립페 히메네스 벨로 주교. 그는 1996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구스마오 대신에 호주에 망명해서 독립운동을 이어가던 호세 라모스 호르타와 공동 수상하였다.

 

그런데 독립이 이루어진 지난해 가을, 벨로 주교가 갑작스레 사임하였다. 교황청은 11월 2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벨로 주교의 사임을 받아들이고, 바우카우 교구의 바실리오 도 나시멘토 주교에게 딜리 교구장 서리도 겸임시켰다. 동티모르에는 벨로 주교가 맡던 딜리 교구와 바우카우 교구 2개 교구뿐이다.

 

딜리 교구가 운영하는 티모르 크마넥 라디오 방송은 11월 26일 낮 2시에 벨로 주교 사임 소식을 방송하기 시작해서 다음날 아침까지 30분 간격으로 계속해서 반복했다. 마리 알카티리 총리는 “벨로 주교는 우리 나라에서 중요한 구실을 해왔다. 그가 자신의 교구를 떠난다 해도 여전히 우리 곁에서 의견과 비판을 내놓아 평화와 안정을 튼튼히 하는 데 도움을 주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벨로 주교는 사임 편지에서, 자신이 사임을 신청하게 된 것은 건강이 좋지 않아서라고 밝혔다. 그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로해 오랜 회복기간이 필요”하며, 오랜 투쟁의 세월 속에서 고혈압과 뇌졸중이 생겨났다고 털어놓았다.

 

교황이 벨로 주교의 사임을 받아들인 것은 교회법 401조 2항에 따른 것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교구장 주교가 건강 악화나 그 밖의 중대한 이유로 자기 직무를 수행하기 어렵게 되면, 직무에서 사퇴하도록 간곡히 권고한다. 벨로 주교는 사임 당시 54세였다.

 

그러나 이미 이전부터 벨로 주교의 사임 소문이 동티모르에 나돌았다. 사임 일주일 전에 벨로 주교가 유럽에서 돌아왔을 때 기자들은 공항에서 그에게 이 소문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그는 “사실이 아니다. 그에 관해 교황청과 얘기한 바 없다. 나는 건강검진 때문에 유럽에 갔었다.”고 대답했다.

 

이에 대해 벨로 주교 대신 딜리 교구장 서리도 겸하게 된 나시멘토 주교는 12월 13일 UCAN 통신과 인터뷰하면서 “벨로 주교가 사임한 것은 진짜 건강문제 때문”이라고 누누이 해명했다. 나시멘토 주교는 자신과 벨로 주교가 몇 달 전에 구스마오 대통령을 예방했을 때 벨로 주교가 저혈압으로 거의 쓰러질 뻔했으며, 그가 1998년부터 수많은 문제를 처리하느라 매일 세 시간밖에 자지 못했다는 사실도 털어놓았다. 특히 1999년 8월에 있었던 독립 여부 주민투표와 투표 뒤 일어난 폭력사태 등이 큰 부담이었다고 지적했다.

 

 

자립정신이 필요한 동티모르

 

사실 인구가 80만밖에 되지 않는 신생국가 동티모르에는 문제가 산처럼 쌓여있다. 먼저 1999년 독립투표 당시 일어난 친인도네시아파 민병대의 무장폭동으로 수많은 공공시설이 파괴되었다. 벨로 주교의 주교관도 습격 당해 30여 명이 죽고 벨로 주교는 간신히 피난했을 정도였다. 이들의 협박과 폭력에 못 이겨 일반 주민들이, 그리고 UN 평화유지군이 들어오면서 독립파의 보복을 두려워한 친인도네시아 기득권 세력들이 국경을 넘어 서티모르로 피난해 갔다. 그 숫자가 물경 30만. 이들을 안심시켜 다시 돌아오게 해놓아야 했고, 이들이 저지른 강간, 방화, 살인 등 범죄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도 문제였고, 새 정부 구성도, 국가 재정도 문제였다.

 

과거 인도네시아 편에 서서 인권침해를 저지른 자들의 문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처럼 “동티모르 화해위원회”를 세워 진상은 밝히되 처벌은 하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 위원회는 2002년 2월에 구성되었는데, 세 달 앞선 2001년 11월에 벨로 주교는 UCAN 통신과 인터뷰에서 인권침해자들과의 화해가 아니라 “정의와 화해”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었다.

 

한편 그는 “말이 아니라 실천하는 선교사”가 필요하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UN이 주관하는 독립투표 뒤로 수많은 인권단체와 선교단체들이 동티모르에 와서 많은 약속을 했지만, “텔레비전 방송을 위한 사진을 찍은 뒤 사라져버린다.”는 것이다. 그는 “동티모르에는 공장도 산업체도 없으며, 여태껏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절박한 현실을 말했다.

 

아무래도 좌파적일 수밖에 없는 새 독립정부 또한 실제 국민들의 복지를 위해서는 외국의 원조밖에는 기댈 데가 없다. 이에 대해 벨로 주교는 “우리는 좌파 이념과 체 게바라의 이념뿐 아니라, 전통 신앙도 함께 갖고 있는 젊은이의 신앙 양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현실을 지적했다.

 

그런데, 우연일까, 벨로 주교가 사임한 지 꼭 일주일 만인 12월 3일에 주로 젊은 층이 참여한 폭동이 일어났다. 압도적 지지를 받는 구스마오가 새 정부를 이끌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폭동이 일어난 것일까?

 

폭동은 경찰이 한 학교에서 학생 한 명을 체포하려는데 이에 항의하던 학생 두 명을 경찰이 총으로 쏴 죽이면서 시작되어 이틀간 수도인 딜리 시내의 의사당과 이슬람인인 총리의 집, 상점, 호텔 등이 불타거나 부서졌다. 이슬람 모스크도 불에 탔다.

 

이에 대해 나시멘토 주교는 나중에 이슬람인 지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일부 가톨릭인들”이 모스크 방화에 개입한 데 사과했다. 동티모르는 인구의 92%가 가톨릭이며 이슬람은 2%에 지나지 않는다. 포르투갈이 400년 동안 통치한 결과다.

 

그뒤 나시멘토 주교는 위 인터뷰에서 “동티모르인은 동냥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활개선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동티모르인들은 오랫동안 남이 주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인도네시아는 24년 통치 동안 동티모르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본국보다 더 나은 지원”을 했고, 독립투표 이후로는 UN을 비롯한 수많은 국제 인권기구들이 들락날락했다. 그러나 이 나라에는 지금 일자리도 없고 산업체도 없다. 교회는 이제 국민들에게 자립정신을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경향잡지, 2003년 2월호, 박준영 요셉(아시아 가톨릭 뉴스(UCAN) 한국지국장)]



808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