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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사목] 독일 통일 20년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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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5-01 ㅣ No.569

[통일 대비, 어떻게?] 독일 통일 20년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머리말

 

통일 20년의 독일, 관심의 초점은 지금 통일된 독일이 총체적으로 성공적인 모습을 띠고 있느냐는 것이다. 통일이 이루어지면서 독일은 경제적인 면에서 잘못되었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무엇보다도 서독에 의한 일방적 흡수 방식으로 우리와는 맞지 않는 것으로 비판받기도 했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그와 같은 평가가 아직도 유효하며 정당한 것인가? 우리는 독일 통일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답을 찾고자 한다.

 

 

독일 통일 20년 평가

 

지난 20년 동안 독일 통일은 ‘창조적 파괴’의 연속이었다. 그 결과 동독은 이제 서독에 비해 훨씬 앞선 기술과 설비로 무장되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이 동독에 자리잡고 있다. 소득 수준과 삶의 질에서 크게 향상되었다. 1991년 9,751유로(1만 2,398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은 2009년 19,500유로로 2배가 되었다. 서독은 같은 기간 동안 12%  증가에 그쳤는데도 말이다.

 

구동독 주민의 자동차 소유 비율은 57%로 구서독의 51%를 넘어섰다. 구동독의 생산성도 크게 높아져 1991년 구동독에서 1천 유로의 재화를 생산하는 데 77.2시간이 소요됐으나, 현재는 29시간이면 충분하다(Ifo 경제연구소 분석). 실업률도 1997년 17.9%까지 상승했으나, 2010년에는 통일 이후 최저인 11.5%로 낮아졌다. 그렇지만 구서독의 6.6%보다 크게 높은 편이다.

 

한국에서 통일 비용을 산출할 때 흔히 지표로 삼는 것이 통일 10년이 지난 다음, 북한 주민 1인당 소득 수준이 남한의 60%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동독 경제는 신기할 만큼 빠르게 서독의 수준을 따라잡은 셈이 된다.

 

통일 이후 불과 5년 만인 1995년에 동독의 1인당 국민소득이 서독의 60%, 노동 생산성(취업자 1인당 국민소득)은 66%, 1인당 소비지출은 74%에 도달했다. 동독이 빠른 시간 내 탈바꿈한 것은 서독의 막강한 경제력이 동독인들을 부양하고 동독의 부흥을 위해 엄청난 재원을 투입할 수 있었던 저력 때문이었다고 본다. 더 중요했던 것은 기본조약 체결 이후 수많은 인적교류와 협력을 통해 같은 민족이라는 인식과 연대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독일 통일이 간과한 것

 

독일 통일이 간과한 측면도 있었다. 독일 통일은 기본적으로 동독 주민이 요구한 것이었다. 그 요구는 고르바초프의 동유럽 국가에 대한 개혁과 개방(페레스트로이카, 글라스노스트)과 연결된 시민혁명을 통해 분출되었다. 그들 모두는 통일만 하면 자유롭게 잘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 믿음은 어디서 생겨났을까? 교류 협력을 통해 얻었던 대서독 경험이 통일을 하면 서독같이 자유롭고 잘살 수 있다는 확신으로 변해있었기에 옛 동독 사람들은 한사코 통일하려고 했다. 그것도 동독이 서독 속으로 쏙 빨려 들어가는, 그야말로 ‘흡수되는’ 형태의 통일을 원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의 평화 통일, 동독 주민의 시민혁명으로 쟁취한 통일이 독일 통일의 실체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동독의 붕괴라고 한다면 동독 주민 스스로가 그런 붕괴를 원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동독 주민들은 통일 뒤 통합 과정을 모두 서독 사람들에게 맡겨버렸다.

 

통일은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동반한다. 돈도 중요하지만 사람은 더 중요하다. 통일을 먼저 돈으로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다. 통일이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을 땐 많은 것이 어긋나 있었다.

 

동독인들은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또 다른 사회적 실험”을 원하지 않았다. 즉각적인 통일을 원했고 되도록 빨리 서독인들처럼 풍요롭게 살기를 원했다. 서독의 사회 체제가 그것을 가능케 해줄 것으로 생각했다.

 

서독 사람들도 동독 사람들의 의견을 묻지 않고 통합 작업을 추진했다. 함께하자고 제안하지도 않았다. 동독 사회주의와 서독 자본주의의 좋은 면만 어우러지게 하는 통합은 애초부터 성립하기 어려웠다.

 

문제는 바로 거기서 생겨났다. 동독 주민들은 서독 주도의 통합이 안겨줄 정신적인 폐해를 예견하지 못했다. 모든 중요 자리를 서독인들이 싹쓸이하듯 차지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지금도 많은 동독 주민들은 그들이 “2등 시민으로 취급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2008년 구동독 지역에 거주하는 18세 이상의 2,892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구동독 지역 주민들 가운데 자신을 실질적인 독일인이라고 여기고 있는 사람들은 22%에 불과(베를린-브란덴부르크사회과학연구센터 조사)하다.

 

통일 초기 모든 것은 ‘청산(Sanierung)’ 대상이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토지와 기업의 사유화는 ‘신탁관리청(Treuhandanstalt)’에 의해 동독의 기업과 공장을 파산시키는 것이 대세였다. 그래서 수만 개의 동독 기업이 파산 · 청산됐다. 기업은 사라졌고 실업자는 늘어났다. 붕괴된 동독은 경제적으로 진공 상태가 되었고, 서독 기업들은 자연스럽게 그 공백을 장악할 수 있었다.

 

동독은 서독 기업의 이윤 극대화의 시험장이기도 했다. 자본주의 작동방식을 모르는 동독 주민들은 서독의 기업에 매달리는 것 외에는 달리 뾰족한 대안이 없었다.

 

 

우리에게 남긴 과제

 

동서독의 통일이 비록 많은 부작용과 문제를 가져왔지만, 결코 잘못된 통일 또는 실패한 통일은 아니다. 동독 주민의 마음을 샀던 통일, 동독 주민이 스스로 원해서 이룬 통일, 그것을 주변국들이 동의한 통일이라는 점에서는 성공한 것이다.

 

독일 통일은 평화적으로, 서독 체제로의 통일에 대해 아무런 저항 없이 동서독 정부가 합의한 것이다. 그 합의는 동독 주민이 동서독 정부에게 요구해서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럼에도 통일 뒤 동서독은 주민들 사이의 이질성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도 그 속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남북한이 동서독처럼 서로 적응하는 과정 없이, 상대의 마음을 사지 못하고 어느날 갑자기 통일했을 경우, 주민들 사이에 어떤 인식이 심어지겠는가?

 

남북한이 통일하려면 동독 주민이 통일을 원했던 환경을 먼저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일 통일은 동독 주민이 원하고, 그것을 동서독 정부가 완벽히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통일의 합의 속에 서독 체제가 도입되는 것을 명시 · 합의한 형태의 통일이었다.

 

그와 같은 상황이 한반도에도 조성되어야 한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통일, 남한 주도의 통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장기간에 걸친 남북 교류와 협력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북한 주민의 생각이 완전히 우리 쪽으로 올 수 있다.

 

또 한 가지, 막상 통일이 되었을 때는 남북한을 곧바로 하나로 만드는 작업에는 신중해야 할 것이다. 동서독 통일은 수준이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두 경제를 급속도로 통합시키고 비적정 환율을 선택함으로써 통일 정부에 큰 부담을 지웠다.

 

남북한 통합은 먼저 북한의 체제를 전환시키는 제도적 조치를 취하고 일정기간이 경과해 북한 지역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역량을 확보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단일화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남북한 경제 격차가 어느 정도 해소될 때까지 남북한을 분리하여 관리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분리 관리 기간 동안에는 주민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급적 억제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노동력의 자유 이동은 노동시장의 왜곡 효과를 심하게 나타낼 수 있다. 특히, 남북한의 통일 시 동서독의 경우처럼 사회보장제도를 완전 통합하는 것은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사회보장제도를 완전 통합하면, 북한 주민의 대다수 주민은 기초생활보장과 의료보호 대상자가 될 수밖에 없으며, 이 부담은 전적으로 남한이 져야 한다. 공공 서비스를 남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는 대규모의 재정이 이전되어야 한다.

 

이는 북한 지역의 임금을 생산성에 비해 너무 높은 수준에서 형성시키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북한 지역의 산업에 치명적인 타격을 안겨주게 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 실정에 적합한 수준의 사회보장이 이루어질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통일에 앞서 고려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

 

[경향잡지, 2011년 4월호, 김영윤(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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