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홍)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순교자 기념일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강론자료

2012-0624...주일...하느님은 언제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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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2-06-23 ㅣ No.1253

세례자요한 탄생대축일(0624)

 

이사야 49,1-6      사도행전 13,22-26      루카 1,57-66.80

2012. 6. 24. 주일. 등촌3

 

주제 : 하느님은 나를 언제 부르셨을까?

세상살이는 돈과 명예를 목적으로 움직입니다. 그래서 돈만 있으면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이 세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태도라고 말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런 태도와는 상관없는 다른 삶의 방법을 찾겠습니까? 이런 모습을 보이는 세상에서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또한 어떻게 사는 사람이어야 하겠습니까?

 

반모임일지에 있던 건의사항에서, 신부님, 미사강론 시간에 세상살이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주시지요!!’라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 내용을 읽으면서 매우 놀랐습니다. ‘사제로서 신자들에게 강론시간에 한 얘기가 삶에 도움이 될 내용이 아니었다는 얘기인가?’하는 것이 첫째이고, ‘그 질문을 쓴 사람은 강론시간에 세상에 대하여 하느님의 뜻을 해석하고 지침을 주는 얘기 말고, 무슨 얘기를 듣고 싶은 것일까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 질문에 대답을 해주실 분이 있으십니까?

 

오늘은 예수님을 우리가 사는 세상에 소개해준,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 세례자요한의 탄생기념일입니다. 세례자요한은 예수님을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소개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세상에 놀라운 소식을 알려준, 세례자요한이 오늘 태어났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오늘을 그의 탄생기념일로 기억한다면 그 의미는 우리가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구체적인 삶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세례자요한의 탄생축일미사에 참여한 우리가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하느님은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언제 부르셨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듣기 쉬운 대답으로 세례성사를 받았을 때라는 정답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말을 듣고, 기억하는 내가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라면 나에게 올 대가는 무엇이고 얼마나 되는지 질문할 것입니다.

 

세례자요한이 세상에 태어난 배경에는, 그의 아버지 즈카르야와 관련된 서글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사제역할을 하던 즈카르야였지만, 그는 하느님이 하시려던 일을 받아들이지 않고 의심을 품었습니다. 자기부인은 아이를 낳을 수 있을 만큼 젊지 않았기 때문에, 하느님이라고 하더라도 자기 부인 엘리사벳에게 아기를 갖게 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즈카르야는, 자기 부인 엘리사벳을 통해서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기까지 벙어리로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이름을 짓기까지, 아버지로서 글 쓰는 판에 내 아들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쓰기까지 그는 벙어리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들의 이름을 하느님의 뜻을 전한 천사의 말을 받아들여, 이름을 짓기까지 벙어리로 살았다는 것은 우리들이 가진 신앙의 자세를 돌아보게 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즈카르야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보면서, 우리도 하느님의 뜻을 존중하며 실천하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언제 결심했고 언제부터 그렇게 실천하는지 돌이켜봐야 합니다. 사정은 이렇지만 지금처럼 심각하게 질문하지도 않고, 지금처럼 대답을 찾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 삶에 당장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세례자요한은 태어나기 전부터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세례자요한처럼, 하느님의 뜻이 내게 먼저 이루어진다면, 나는 과연 어떤 자세로 하느님의 말씀을 대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미사에 함께 한 우리는 과연 어떤 자세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여야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사야예언자나 세례자요한 모두, 하느님의 뜻을 펼친 구원의 역사에서 큰일을 했던 분들인데도, 그분들의 삶이 세상에서 말하는 축복과 영광 가운데서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은 신앙인으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풀기 힘든 문제처럼, 우리를 힘겹게 만드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예언자의 삶이나, 세상에서 올바른 정신으로 살아가려는 신앙인의 삶이 항상 순탄하거나 신작로(新作路)처럼 쭉 뻗은 길만 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신앙인이 실제로 가는 길 대신 신앙인의 길을 잘못 생각한 사람들은 기껏 시작한 신앙인의 길을 적당히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대로 따를까요?

 

세상의 삶을 힘겹게 시작한 것이 세례자요한이었지만, 그래도 교회공동체가 그에게 드리는 영예와 영광을 보면서, 우리도 같은 신앙인으로서 올바른 길을 따라갈 수 있도록 하느님께 도움을 청할 시간입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도는 어떤 마음을 담은 것이어야 하겠습니까? 잠시 좋고 올바른 태도를 갖출 수 있도록 기도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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