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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전례에 쓰이는 것들: 전례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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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0-30 ㅣ No.6

전례에 쓰이는 것들 : 전례용구

 

 

저희 본당에 신부님이 새로 부임해 오시면서 여러 가지가 바뀌어 전례 분위기도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것을 느끼고 있는 신자입니다. 신부님은 제대 뒤 벽면을 현대적 추상화로 채우고, 성당 창문들도 뜻모를 그림들이 그려진 스테인드 글라스로 바꾸었습니다. 미사 때 입는 제의(祭衣)도 일반적으로 많이 보는 그런 제의가 아니고 한복의 두루마기처럼 생긴 제의 위에 영대를 걸치고 미사를 하는가 하면 성작과 성반도 도자기로 된 것을 사용하거나 때때로 포도주 잔과 비슷한 유리잔으로 성작을 대신하기도 합니다. 신세대 신부님이라는 느낌과, 전통을 너무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감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미사중에 사용되는 제의나 성구(聖具)의 형태나 재질에 있어 교회가 정한 어떤 규정은 없는 건지요.

 

 

문제 제기 : 성예술(聖藝術)은 존재하는가?

 

교회 안에서 전례용으로 쓰이는 것들은 성당 건물을 비롯하여 제의(祭衣), 제기(祭器), 예배 장소의 장식, 성상(聖像)과 성화(聖畵), 성물(聖物)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것들을 예술적으로 다루는 것을 성예술이라고 말합니다만, 과연 포스트 모더니즘, 낭만파, 추상파 하는 것처럼 성예술이란 분야가 따로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어떤 특정한 예술 사조를 선택하여 예배에 관계된 것들을 만든 것이 아니라 각 시대에 따라 예배에 적합한 것이 있으면 아무리 세속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그 시대에 맞는 것을, 로코코 시대에는 그 방식의 작품들을 교회 안에 받아들였음을 현재 남아 있는 성당이나 예술품들, 제구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교회의 고유 예술로서의 성예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예술 사조에 속하든 예배에 적합한 것이라면 무엇이나 성예술로 인정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전례 용구의 기원

 

처음에 교회는 신학적 이유 때문에 유대교나 타종교의 영향을 가급적 피하기 위해서 다른 종교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또 박해 동안에는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킬 수 있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자신만의 예배 용구를 가질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세속적인 물건들 가운데 예배에 적합한 것이 있으면 그대로 사용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성작과 성반의 경우 아마도 장식이 있는 유리로 된 것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4세기경부터 귀금속이 사용되면서 예술적인 것들이 생겨났습니다. 제의도 5세기까지는 아직 사복을 그대로 사용하되, 전례의 품위에 어울리지 않는 군인복이나 노동복은 피하였습니다.

 

하지만 종교자유를 통해 자신의 신앙을 널리 전하고 싶었던 교회는 점차 세속적인 것 가운데 더 고귀하고 품위있는 것을 골라 교회 전례에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왕족이나 귀족들의 의복이나 그들만이 사용하던 상징물들이 전례복이나 전례 상징들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북유럽의 야만족의 침입으로 그들의 노출이 심한 옷들이 사회에 퍼지면서 더욱 전례복을 세속 옷과는 구별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7세기에는 모든 전례 용구가 세속의 물건과는 구별되면서, 온전히 전례에만 사용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전례복, 특히 교황복과 주교복의 경우에는 12세기까지 많은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하여 전례복에 그 옷을 입는 사람의 직무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문장들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또 전례 용구를 강복하여 사용하는 관행을 보여주는 첫 강복 기도문은 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전례 용구의 발전은 12세기 이후 지나친 장식화, 신학의 결여와 같은 것으로 인해 오히려 퇴조하는 경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 개혁을 통하여 전례 용구가 단순하고도 전례의 품위에 맞게끔 고치도록 촉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전례 용구가 갖춰야 할 특징

 

교회는 세속적인 목적을 갖는 물건과는 구별되는, 오직 전례 때만 사용될 목적으로 만들어진 성물을 사용할 것을 의무화하였습니다. 이런 성물은 무엇보다도 예배에 적합한 품위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야 하고, 초자연적 실체를 상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성물들을 통해 신자들의 신심이 북돋아질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한마디로 말해 전례 용구는 다음의 특징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용구의 본래 쓰임새에 적합할 것(기능성), 예배의 품위를 드러낼 수 있을 정도의 아름다움을 지닐 것(예술성), 하느님의 은총과 진행되는 예배의 실체를 상징적으로 잘 드러내어 신자들의 신심에 도움이 될 것(상징성 및 교육적 효과).

 

 

전례 용구의 새로운 형태 : 도전과 한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는 각국 주교회의가 자기네 고유 문화유산을 이용하여 전례의 많은 부분에 걸쳐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작업을 통해 전례가 각 나라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하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유로 인해 새로운 형태의 전례 용구가 등장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것이 언제나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위에 열거한 전례 용구의 특성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경우도 있고, 신자들의 수준이 어떤 특정 예술사조가 요구하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신자 공동체 전체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편의와 기호에 따라 어떤 특정한 것을 토착화란 이름 아래 강요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구상화가 추상화보다 이해하기 쉽다고 해서 그것만을 교회 안에 받아들인다는 것은 지나치게 좁은 마음일 것입니다. 반대로 지나치게 현대적인 것만을 쫓다 보면 일반 신자들의 감정과는 동떨어진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배 장소가 한 예술가의 작품 전시장이 되어서도 곤란하지만, 하느님의 선물인 새로운 창조 시도를 무조건 배격하는 것 또한 현명한 자세는 아니라고 봅니다.

 

전례 용구에 대한 새로운 시도는 계속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어느 한 개인의 취향에 따라 좌지우지되거나 어떤 신학적 근거 없이 즉흥적으로 이루어져서는 곤란합니다. 전례는 공동체가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시도가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위에 열거한 전례 용구의 특성을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김인영 신부님, 성 베네딕도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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