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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싹이 트는 몽골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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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1 ㅣ No.20

[세계 교회는 지금] 싹이 트는 몽골 교회 (1)

 

 

몽골에서 전해진 기적의 소식

 

지난 3월 28일, 몽골에서는 첫 성유축성 미사가 있었다. 몽골에 선교가 시작된 지 10년 만이었다. 징기스칸으로 기억되는 몽골, 고려가 30년에 걸쳐 싸웠던 몽골, 그러나 우리에겐 또한 매우 친근하게 느껴지는 몽골.

 

몽골은 청나라 때 여진족에게 복속하여 외몽골과 내몽골로 나뉘어 중국의 통치를 받았다. 그러다 중국이 1911년의 신해혁명으로 혼란에 빠지고 1917년에는 러시아에서 공산혁명이 일어난 뒤, 외몽골은 공산주의 소련의 지원 아래 독립을 선언한다. 그뒤부터 광대한 국토에 인구는 적은 유목국가 몽골은 ‘가장 소련에 충실한” 국가로 지내왔다.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개혁 개방정책을 펴자 몽골도 1990년부터 개방정책을 선언했다. 그러나 소련이 무너지면서 소련의 지원에 의존하던 몽골 경제는 갑자기 무너졌다. 이에 몽골 정부는 서방세계와의 교류와 지원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원나라 시절 이후 아무런 관계가 없던 로마 교황청에 “선교사를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이래 몽골은 유럽에서 “황금의 도시” 카라코룸, 지상의 낙원 재너두(Xanadu) 등으로 알려진 일종의 환상의 존재였다. 한편으로는 유럽 그리스도교 문명을 일거에 파괴할 뻔했던 몽골의 침입이 얼마나 충격이 컸던지 황화론(黃禍論)이란 공포가 지금까지 유럽인들을 짓누르고 있지 않은가?

 

그런 몽골에서 자진해서 선교사를 보내달라고 하다니! 200년 전 조선의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신앙을 찾던 때의 기적이 재현되는 순간이었다.

 

교황청은 즉각 몽골에 선교사를 보낼 선교회를 찾았고, 이미 오래 전부터 중국에 뿌리를 내렸던 원죄없으신 성모성심회가 나섰다. 몽골 정부의 마음이 변할까 요청 몇 달 만에 파딜라 신부 등 선교사 3명이 부랴부랴 몽골에 들어갔다.

 

 

몽골에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

 

징기스칸 시대 수도인 카라코룸은 이제는 아주 적은 수의 사람만 산다. 여기에는 네스토리우스파에 속하는 가톨릭 경당과 여러 종교의 사원 유적이 남아있다. 카라코룸은 울란바토르에서 서남쪽으로 36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그러나 몽골의 현실은 이런 고대의 환상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몽골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업은 버려진 아이들을 위한 인 버비스트 거리 아이센터다. 울란바토르의 노숙자들은 울란바토르에 온수를 공급하는 온수관이 지나가는 지하도 입구 근처에 모여드는데 어린이만 2000명이나 되고, 요즘에는 집을 잃고 가족단위로 모여드는 이들도 있다. 어린이 대부분은 가난과 알코올 중독, 가정 폭력 때문에 집 밖으로 내몰린다. 이들 대부분은 심한 성병과 폐렴 간염 등 여러 질병을 앓고 있다. 몽골의 전체 인구가 270만 명밖에 안되는데 말이다.

 

몽골에 이처럼 버려진 아이가 많은 것은, 과거 70년에 걸친 사회주의 사회의 폐해가 크게 작용한다. 소련이 무너지면서 갑자기 어려워진 경제사정, 사회주의적 무상 혜택에 익숙하여 경제적 자립심이 약한 사회분위기, 성문란 등이 작용하여 너무 쉽게 부모가 아이들을 버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선교사를 초청하기는 했지만, 종교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오히려 두려워했다. 사회주의의 경험, 국민 대부분이 티벳 불교인 라마교 신자인 현실에서 “외국 종교”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종교활동은 교회건물 안으로 제한됐다. 때문에 1995년에 새 세례자들이 자신들의 집에서 시작한 성서 나눔 모임은 곧 중단됐다.

 

정부는 “외국종교”가 늘어나면 국민들이 분열될 것을 두려워하며, 일부 불교인은 교회가 자선활동을 이용해 신자를 모은다고 비난한다.

 

이런 상황에서 선교사들은 활동을 시작하기에 앞서, 사람들의 어려움을 보살필 수 있는 복음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고 결론내렸다. 이들은 몽골 사회가 가난과 희망상실, 알코올 중독 등으로 가정이란 울타리가 부서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원죄없으신 성모성심회와 한국의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은 가난한 동네에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세우고 가난해서 학교에 못 가는 어린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공부를 가르친다. 한국인 수녀들은 가난한 어린이만을 위한 몬테소리 교실을 울란바토르에서 운영하는데 몽골에 이런 학교는 이곳 하나뿐이다.

 

한국 대전교구의 이준화 로베르토 신부는 중부지방에서 1000헥타르나 되는 큰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몽골인에게는 당장 일자리와 먹을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몽골 관리들은 불친절했지만 교회가 해온 일을 지켜보면서 서서히 편견을 버리고 지금은 거의 모든 관리가 적극 돕고 있다. 정부는 이제 교회가 몽골인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관리들은 여러 교회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여전히 꺼리고, 나중에야 개인적으로 축하 인사를 보내온다.

 

2001년 3월에 있었던 파딜라 몬시뇰의 사제수품 25주년 행사에는 몇몇 몽골 관리들이 참석했는데, 일부는 자신들을 소개하지 말라고 부탁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를 부르는 이도 있었다. 1-2년 전만 해도 이런 일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2000년 말 현재로 몽골에는 5개 수도회의 남녀수도자 19명과 한국에서 온 교구신부 2명이 있었다. 또한 2001년 3월에는 새 기술학교를 운영하고자 살레시오회 회원 5명이 파견됐는데, 이들의 국적은 한국, 베트남, 필리핀, 체코 등이었다.

 

몽골 교회는 작은 공동체이지만 이처럼 다양한 배경을 지닌 이들이 그야말로 “다양성 안의 일치”를 보여준다.

 

한편 몽골 교회는 2000년 성탄미사에서 처음으로 몽골어로 번역된 “미사경본”을 사용했다. 몽골어와 영어로 된 이 책은 홍콩에서 인쇄된 것이다. 몽골어 성서는 개신교에서 번역한 것을 쓰고 있다. 전통종교인 라마교가 아직도 티벳어 불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불교 신자들은 경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반면에 요즘에 들어간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자기의 종교를 좀더 쉽게 이해한다.

 

몽골에서는 성탄절이라 해도 아직은 공휴일이 아니다. 때문에 2000년 성탄 낮미사 같은 경우에는 저녁 7시에야 봉헌했다.

 

몽골 교회는 우리 나라 교회에 비추어보면 겨우 조그만 공소 하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에 가있는 선교사와 수녀수에 비추어보면, 그리고 선교한 지 10년이나 지났어도 신자수는 200명 남짓이다. 그러나 이렇게 느린 성장은 결코 느린 것이 아니다. [경향잡지, 2002년 5월호, 뱍준영 요셉(아시아 가톨릭 연합통신(UCAN) 한국지국장)]

 

 

[세계 교회는 지금] 싹이 트는 몽골 교회 (2)

 

 

느린 성장이 하느님 축복이다

 

1992년에 가톨릭 선교사들의 입국이 처음 허용된 뒤 1994년에 첫 몽골인 영세자가 나왔다. 지식층에 해당하고 직업상 영어를 접하는 여성 2명이었다. 첫 견진성사는 1995년에 14명이 받았다. 2001년 5월 현재 몽골인 가톨릭 신자는 모두 116명이다.

 

몽골 교회의 수장인 파딜라 몬시뇰에 따르면, 몽골 교회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세례성사와 성체성사, 견진성사를 동시에 주지 않으며, 견진성사는 세례 뒤 일 년이 지나서 따로 준다. 이번 견진을 받은 신자들은 성사에 앞서 준비모임을 두 번 했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견진성사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몽골에 있는 가톨릭 성당은 수도인 울란바토르에 하나밖에 없다. 이 성당의 주임신부는 콩고 출신인 피에르 카세무아나 신부다. 그는 몽골에서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내놓고 말하기가 쉽지 않으며, 특히 청소년 사이에서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했다가는 친구에게 놀림 받기도 한다고 한다. 그는 친구들의 놀림과 강한 애국심, 그리고 그리스도교가 외국 종교임에 반해 불교는 민족 종교라는 시각이 원인이라고 지적하였다. 몽골 법에 따르면 16세 이하 어린이는 부모의 허락을 받아야 ‘외국’ 종교에 들어갈 수 있다. 때문에 교회에 관심을 가진 일부 청소년은 처음에는 몰래 선교사를 찾아오기도 한다.

 

2001년 5월 27일 몽골인 신자 32명이 조반니 바티스타 모란디니 대주교에게 견진을 받았다. 모란디니 대주교는 주한 교황대사로서 서울에 주재하면서 주몽골 교황대사를 겸하고 있다. 이탈리아인인 그는 몽골에 대한 관심이 지극하다.

 

이날 투무르(64세) 씨는 딸과 세 손녀 등 다섯 식구가 한꺼번에 견진성사를 받았다. 그녀의 남편인 야담자브는 “불교인이자 공산주의자”인데 집안 여자들이 행복해 한다면 다른 신앙을 갖는 것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의 손녀들은 몽골 교회의 청소년 프로그램과 노숙자 지원 프로그램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교사인 아리우나는 자기가 교회에 나가는 것은 “외국인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이라고 자기 남편이 비난한다고 말했다. 다른 여자 신자들도 자기 가족에게서 비슷한 비난을 받는다. 그럼에도 그녀의 다섯 살 난 쌍둥이 딸이 부활절에 세례받았으며, 그녀도 견진성사를 받았다.

 

파딜라 몬시뇰은 몽골 선교 9년째인 2001년에 아시아 가톨릭 연합통신(UCAN)과의 인터뷰에서 몽골 신자는 110여 명이지만, “느린 성장은 원래 원하던 바”라고 말했다. 물론 신자가 더 많으면 좋겠지만 지금의 성장률도 나쁘지 않으며, 또한 “정부나 불교, 다른 전통 종교를 위협하거나 이들의 반발을 사지 않는 적정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구가 270만 명밖에 안되는 몽골에 이미 개신교는 20개 종파가 넘게 들어와 있다고 지적하고 “천천히 꾸준하게 성장할 수 있는 것도 하나의 축복”이라고 말했다. 파딜라 몬시뇰에 따르면 가톨릭 교회의 교리교육은 거의 2년 걸리며, 시작한 사람은 대부분 교리 과정을 끝마친다고 한다.

 

그는 다른 선교구처럼 교회 성장을 위해 굳이 많은 새 수도회를 불러오려 애쓰지 않는 것 같다는 질문에 대하여 “너무 일찍 많은 선교사들이 넘쳐나게 되면, 정부와 이곳 교회에 걱정만 될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교세 확장계획이 있긴 하지만, 선교사들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충실히 준비한 뒤에 응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미 20개가 넘는 교파가 들어온 개신교는 정부의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국민들이 여러 종교로 갈라져 분열될까 정부가 걱정하고, 전통종교인 불교측의 경계감도 짙다.

 

파딜라 몬시뇰은 몽골 선교구에 모인 선교 사제와 수녀들의 ‘협동작업’이 이곳에 하나의 표지이자 희망이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천천히 일하면서 가족 같은 분위기와 일치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하나의 표지이며, 몽골인들은 다양한 국적과 전문성, 성격, 나이가 다른 이들이 함께 어울려 일하는 것을 보고 놀라워한다는 것이다. 그는 선교사들이 너무 여러 곳으로 분산된다면, 이런 일치가 유지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이처럼 겸손하고도 사회에 봉사하는 가톨릭 교회의 모습은 몽골인 거의가 신자인 라마교에게도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몽골에서 가장 높은 라마교 승려인 캄블람 초이잠트 스님은 2000년에 교황을 방문한 바 있다. 몽골의 라마교는 티벳 불교와 같다.

 

한편 지난 3월 28일 성목요일에 몽골 교회로서는 처음으로 성유 축성 미사가 열렸다. 몽골 교회는 오는 7월에 10주년을 맞는다. 이 뜻깊은 미사에서, 파딜라 몬시뇰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성목요일에 사제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인용하면서, 교회가 성장하려면 개개인의 고해성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사제들은 자신이 겪는 어려운 조건만 길게 불평하지 말고 대신 기도와 복음, 사도직 활동을 통해 힘을 얻으라고 격려하였다. 이 자리에는 몽골 교회에서 일하는 사제 6명과 부제 2명도 참석하였다.

 

이 미사를 공동집전한 모란디니 대주교와 파딜라 몬시뇰 앞에서 이들 사제들은 교회와 신자들에게 봉사하고 교회 가르침과 자신의 성소에 충실하겠다는 서원을 갱신했다. 모란디니 대주교는 참석자들에게 최근 다른 나라의 추문에 휩싸인 사제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요청하고 성폭력, 특히 어린이에 대한 성폭행을 강력히 비난했다.

 

한편, 이틀 뒤에는 어린이 둘을 비롯해 예비신자 18명이 부활성야 미사 중에 세례를 받았다. 이들은 몽골의 전통과 가톨릭 신앙 사이의 화합을 상징하고자 전통 몽골옷을 입고 세례식에 참석했다. 이 가운데 어린이 한 명은 부모와 삼촌, 고모와 같이 세례를 받았다.

 

울란바토르에서 버비스트 거리 아동 센터를 맡고 있는 세레스 신부에 따르면, 몽골 인구의 80%는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 또한 이 빈곤인구 가운데 절반은 하루에 한끼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 몽골 가톨릭 교회는 이들을 다 책임지지는 못하지만, 빈곤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좋은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원죄 없으신 성모성심회 신부와 수사들은 거리 아동 센터와 영어교육 센터를 운영하고 극빈가정을 돕고 있다. 또 원죄 없으신 성모성심 수녀회에서는 교리교육과 함께 언어교육, 유치원 장애아들의 교육을 돕고 있다.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은 학교 하나와 재봉교실을 운영하며, 병원과 감옥도 방문한다. 한국에서 온 샬트르 성 바오로회 수녀들은 가난한 이를 위한 무료 유치원과 초등학교, 컴퓨터 교실 등을 운영하고 실직 여성에게 재단도 가르친다. 대전교구의 이준화 신부는 가난한 농부들을 도우려고 농장을 하고 있다.

 

2001년 10월에는 살레시오회가 울란바토르에 청소년 직업학교를 열었다. 목공, 재봉, 자동차 정비 등을 가르치며, 앞으로는 영어와 컴퓨터도 가르칠 계획이다. 몽골은 살레시오회가 교육사업을 펼치게 된 126번째 나라이다. 기술학교가 들어선 이 자리에 몽골 교회는 곧 종합 선교 센터를 세울 계획이다.

 

[경향잡지, 2002년 6월호, 박준영 요셉(아시아 가톨릭 연합통신(UCAN) 한국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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