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33 주간 월요일 - 홀수 해
1마카베오 1,10-15.41-43.54-57.62-64 루카 18,35-43
2011.11. 14. 등촌3동
주제 : 삶을 위하여
사람이 산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과장된 표현은 아니겠지만, 살기 위해서는 못 할 일이 없다는 소리도 합니다. 그 일이란 어떤 것이겠습니까? 아마도 어느 한쪽의 목숨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그와는 다른 방향에 서 있는 사람의 목숨이나 생명은 함부로 대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에 대한 것은 어떤가 하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짧은 시간 안에 대답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목숨을 대하는 차원과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목숨을 대하는 차원보다는 그 영향이 월등히 더 클 것입니다. 목숨에 대한 것의 영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목숨에 관한 것은 개인과 주변의 몇몇에만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신아에 대한 것까지 확대되면, 파급효과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때로는 한 나라나 민족 전체에 그 영향을 남길 수도 있습니다. 이 소리는 시간이 지난 다음에 후회하고 반성해봐야 돌이키기에는 늦은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기원전 140년경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 오늘 독서의 이야기입니다. 유대민족에게서 일어난 일이지만, 자기들의 삶에서 하느님을 부담스러워하여 하느님을 따른다는 흔적을 없애고, 율법서를 태워버리는 일을 벌입니다. 그 일들의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고 하는 때로부터 시간이 지난 다음에 사는 우리는, 과거의 그들이 대하거나 행동했던 것들을 본보기로 삼고 배울 수 있습니다.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본보기들을 보는 자세가 다를 뿐입니다. 그리고 그 자세는 다른 사람이 몇마디 말로 해준다고 해서 달라질 일은 아닐 것입니다.
사실 신앙에 충실하게 산다고 해서, 세상일이 잘 될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것을 일찍이, 빨리 깨달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서 교회공동체라고 하는 곳의 모양이 달라질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리코의 소경이 세상을 향하여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이런 자세는 어떤 때에 그 삶의 결과를 남기겠습니까? 굳이 그 상황을 나누자면, 세상의 소리로는 우리가 부담스럽다고 느끼거나 시끄럽다고 대할 일입니다. 하지만, 같은 상황일 수도 있는 그 일을 예수님은 달리 대하게 만드셨습니다.
세상 삶에 신앙의 길을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길이 아닌 것이 그 역할을 대신해야주어야 하지만, 그런 역할을 하는 일을 찾기가 쉬운 것은 아닙니다. 바꿔 말하면, 그 좋은 길을 신앙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향해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도 살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전례력으로 한 해의 끝을 향해서 가는 이때, 예리코의 소경이었던 사람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어떤 자세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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