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3일 (일)
(녹) 연중 제12주일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강론자료

2013-0414...부활3주일...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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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3-04-13 ㅣ No.1350

부활 3 주일 (다해)

사도행전 5,27-32.40-41     묵시록 5,11-14        요한 21,1-19

2013. 4. 14. 등촌3

주제 : 우리가 사랑을 드러낸다면.....

사람은 삶에서 저마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다릅니다. 그 차이는 어디에 원인이 있겠습니까? 똑같지는 않지만, 부모님을 통해서 세상에서 살아갈 생명을 받고, 하루에 2번이나 3번 정도 음식을 먹는 일은 비슷한데, 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서로 다르고, 어째서 사는 것이 다른지 참 신기하다고 바라봤던 때가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본 뒤에, 그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원인을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말입니다.

 

오늘은 부활대축일로부터 3번째 주일입니다. 부활시기라고 부르는 이때는,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하면서, 우리도 부활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때입니다. 이런 소리를 들을 때, 우리는 부활을 어떻게 지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그 대답을 하자면 어떤 표현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러한 질문에 대답을 하겠다고 생각하고, 뭔가 표현을 하려면 우리는 아무래도 내가 삶으로 드러내는 것과 가장 비슷한 것을 말할 것입니다. 내가 이미 행동으로 옮겼거나, 내 삶에 일어나기를 바라거나, 내 이웃 사람에게서 보았던 것을 기억하여, 그것이 부활에 가까운 삶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 세 번째라고 하는 발현기적을 전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사가의 경우에는 예수님의 기적을 몇 가지 원칙에 따라서 아주 소수만 전하고 있습니다만, 오늘 복음의 전반부 내용은 루카복음서 5장의 내용과 아주 많이 비슷합니다.

 

스승님이 부활하셨다고 앞서서 2번씩이나 놀라운 소식을 체험했다는 제자들이었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뜻을 읽어 복음선포의 길로 나선 것이 아니라,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기적과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시고, 그들을 복음선포의 길로 다시 부르십니다.

 

우리본당에서도 지난 주일에, 예비신자교리를 새롭게 시작하면서, 우리 신앙인들이 가져야 할 선교에 대한 마음자세를 새롭게 하기를 권고했습니다만, 그 모습은 미사에 함께 하는 우리 신자들이 어떤 자세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일입니다. 레지오 단원들을 중심으로 우리 동네 주변을 청소하는 일로 선교에 관한 일을 한 해 동안 표현하겠다고 하고 시작했습니다만, 우리가 그에 따라서 성실하게 움직인다면, 우리의 의도에 따른 결실은 분명히 생길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소식을 들었고, 두 번씩이나 예수님의 발현을 체험한 제자들이었지만, 예수님께서 그들을 세 번째로 찾아오셨을 때에,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의 옛날 삶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그랬던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찾아가시자, 제자들 가운데서 그 사실을 깨달은 베드로만 물속으로 뛰어들면서 자신의 삶을 제대로 돌이킨 사람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다음순간에 계속되는 대화에서, 그는 자신의 마음을 드러냅니다.

 

자신의 마음이 변한 일이 없다고,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향하여 세 번씩이나 하소연합니다만, 그 하소연으로 베드로는 예수님께 자기 삶을 어떻게 드러냈을까요? 이에 대한 대답을 오늘 성경말씀이 알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너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기를 한 번,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두 번을 묻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베드로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우리는 베드로사도 대신에 그 자리에 우리들 각자가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세상에 살기는 하지만 세상만의 기준이 아니라, 하느님의 기준을 먼저 대하는 사람으로 세상에서 살겠다고 하는 신앙인의 삶은 참으로 큰 모험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인의 길이라고 말은 쉽게 합니다만, 그것은 말로 앞세우는 것보다도 행동을 더 먼저 앞세워야할 일입니다. 교회역사 초창기에 제자들은 두려움 없이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 나섰습니다만, 우리는 그 모습을 얼마나 본받는지 잠시 되새겨야 할 일입니다.

 

세상에서 신앙인의 길을 앞세우고 살면 그의 세상 삶이 순탄하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신앙인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세상의 기준에 따라서만 살아도 괜찮을까요? 신앙 때문에 겪는다는 고통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는 사도들의 본보기를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을 찬미하는 우리의 소리가 하느님의 대전에 도달할 수 있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를 대신해서 대답했던, 베드로사도의 말에서 용기를 얻고 그 사랑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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