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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드라마와 한국사회: 드라마 읽기와 가톨릭교회의 법고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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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7-01 ㅣ No.629

[경향 돋보기 - 드라마와 한국사회] ‘드라마 읽기’와 가톨릭교회의 법고창신(法古創新)


한 편의 인기 드라마가 시대적 감성을 형성해 버릴 정도로 드라마의 문화적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드라마를 제대로 수용하려면 드라마가 보여주는 현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와 영상물의 특성이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드라마는 현실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기호화하여 재구성한 다음 보여준다. 이 과정에는 작가나 제작자 또는 광고주의 의도, 목적, 가치관 등이 강력하게 개입되고, 따라서 시청자는 특정 방향으로 기획된 현실을 생생한 영상의 형태로 주입받게 된다.

그러나 시청자가 이런 속성을 분별하고 드라마를 주체적으로 소화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책을 읽을 때처럼 잠시 멈추어 밑줄 긋고 자기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여유를 TV 영상물은 결코 주지 않기 때문이다. 또 영상이 가지는 사실성과 구체성 때문에 대중은 무의식적으로 이를 현실 그 자체라고 믿어버리기 쉽다.

대중의 무의식적 욕망을 자극해서 상업적 성공을 거두겠다는 목적으로 제작된 드라마를 지속적으로 본다면, 속물적 가치관과 악에 시청자가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시청자가 주체적 태도를 견지하며 드라마를 볼 수는 없기 때문에, 매스미디어의 시대에는 사목자와 교육자의 선구적 역할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그 드라마의 심층을 읽고 교육에 활용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이독제독(以毒制毒)

2009년에 방영된 드라마 ‘아이리스’에서는 상급자인 김태희가 이병헌을 훈계하던 중, 강제로 키스를 당한다. 곧바로 김태희가 뺨을 후려갈기면서 적극적으로 거부하지만 이병헌은 다시 달려들어서 키스를 강제로 지속한다(아래 사진).

그런데 이 단계에서 드라마는 스스로 저항을 포기하고 그 폭력적 키스를 즐기는 여성을 그려놓는다. 또한 여성이 폭력적 성행동에 순응하기 바로 직전에 갑자기 낭만적인 배경음악이 깔리는데, 이는 시청자가 이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무의식적으로 조종하는 것이다.

드라마가 가지는 문화적 파급력은 엄청난 것이기 때문에 이런 장면이 단 한 번만 방송되었다 할지라도, 남성이 주도하는 폭력적 성행동을 마치 낭만적 사랑의 모습으로 각인시키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사실, 이 ‘강제 키스’의 심각성은 이 장면 안에 ‘강제로 시작된 성행위에 여자가 처음에는 저항하지만 나중에는 좋아하고 즐기게 된다.’는 전형적인 포르노의 서사구조가 녹아들어 있다는 점이다.

‘여자가 처음엔 싫어하지만 그건 내숭이고 끝까지 밀어붙이면 좋아하게 된다.’는 ‘강간신화’의 수용과 내면화 과정을 드라마가 엄청나게 용이하게 해주는 것이다. 포르노 영화 수십 편을 보는 과정에서 서서히 생기는 왜곡된 성의식을, 드라마는 2-3분 안에 농축하여 주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은 대체로 문화를 통해서 습득이 되기 때문에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이런 드라마를 보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포르노의 각본을 성의 기본적인 내용으로 학습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배운다는 의식조차 없이 영상물에 내재된 가치를 흡수하기 때문에, 특정 장면을 무의식적으로 행동화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런데 우리 드라마에서는 인간의 성적 욕망을 자극하는, 이와 같은 장면을 정형화된 공식처럼 너무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시청률을 끌어올리고 상업적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가장 손쉽고 빠르게 쓸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상업적 영상물 안에 코드화하여 숨겨진 독(毒)이다.

사목자와 교육자는 문화상품 안에 스며들어 있는 독을 분별하고, 대중에게 그 실체를 알려주어 무분별한 드라마 시청이 궁극적으로 인간의 마음과 영혼을 병들게 한다는 것을 밝혀주어야 한다. 아름답게 포장된 악이 침투력 강한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급속하게 전파되고, 그 독성이 신앙인의 관절과 골수에 스며들어서 인간의 ‘원초적 선’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우선 해독제가 급히 필요한데, 역설적이게도 그 독을 즉각 제압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독뿐이다. 시청자에게 독이 되는 그 장면을 역이용하여 그 실체를 밝혀주는 ‘이독제독’의 교육이 시급하다.

나는 대학교 1학년 때 미팅을 많이 했다. 미팅에서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남자는 우리 집 앞까지 나를 데려다주겠다며 끝까지 나에게 매달렸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 남자와 우리 집 앞까지 오게 되었다. 집 앞에 도착한 순간, 그 남자는 갑자기 내게 키스를 퍼부었다. 한 번도 키스를 못 해본 나는 너무 당혹스러웠고, 키스를 하기 싫어서 남자를 밀쳐내 보았다. 하지만 힘이 세서 밀쳐내지지 않을뿐더러, 그 남자는 내가 싫다고 해도 계속 키스를 퍼부었다.

이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남자는 내가 뿌리친 것은 단지 내숭이었고, 계속 키스를 퍼부으면 내가 좋아할 줄 알았다고 했다.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나는 너무 어이없고 화가 나서 다시는 그와 연락하지 않았다. 이 일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끔찍한 경험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수업을 듣고 보니 그는 대중매체에서 사용하는 포르노 기법을 보고 배운, 한 명의 피해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 남자도 ‘아이리스’의 이병헌과 김태희의 키스를 보고 그런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닐까?

필자가 ‘드라마와 암묵적 성의식 형성’에 대해서 강의하고 받은 보고서다. 이 글은 한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드라마가 형성한 문화적 조류와 결부시켜 해석하면서,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음을 보여준다. 드라마를 위시한 문화상품이 형성한 독이 여성인 자신에게 어떻게 해롭게 작용할 수 있는지를 거시적 차원에서 이해한 것이다.

드라마가 보여주는 것은 현실 자체가 아니다. 드라마는 대중의 무의식적 욕망을 기민하게 파악하여 그것을 만족시켜 주는 방향으로 재구성된 현실을 보여준다. 따라서 대중에게 드라마는 자기 욕망이 이루어지는 ‘현실’이고, 실제 현실은 드라마만 못하다.

대중매체는 많은 여성들에게 남자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다. 나 역시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멋진 남자를 기대했었다. 나는 드라마 속 남자들이 여성을 벽에 밀어붙이고 팔로 여성을 못 나가게 막으며 거칠게 대하는 것을 멋있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도 그러한 여성이 되기를 바랐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런 남자가 두 명 나타났었다. 한 명은 선배였는데, 그 선배는 나를 벽으로 몰아붙이고 나의 핸드폰 번호를 요구했었다. 정말 내가 원하던 순간이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때, 드라마와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벽에 몰아붙이고 아무 데도 못 가게 막으며 얼굴을 들이미는데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내 환상 속의 느낌이 아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남자는 내 친구였는데, 그 남자가 그렇게 행동했을 때도 낭만적이거나 아름답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드라마 ‘파리의 연인’, ‘시크릿 가든’을 보면서 또 다른 이상적인 남성을 꿈꾸고 있었다. 현실에서 보면 전혀 낭만적이지도 않을 걸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이제 대중매체의 달콤한 거짓말에 대한 진실을 안 나는 더 이상 대중매체의 메시지를 수용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수용을 하더라도 비판적인 사고를 가지고 수용할 수 있는 지식을 길러야겠다.

위의 여학생처럼 자기 경험을 성찰해 현실과 드라마는 결코 같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이독제독의 과정이 없다면, 미디어가 주입해 주는 허상에 빠져 살 가능성이 높다. 컴퓨터가 주입하는 환상을 실제라고 착각하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영화 ‘매트릭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선양선(以善養善)

드라마에 독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귀한 가치를 추구하는 작가 정신이 만들어낸 선도 있다. 사목자와 교육자는 드라마 안에 표현되어 있는 선한 가치를 정확히 포착하고 활용하여, 선으로 선을 북돋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사장님이 무지 미안해하시더라고요. 굉장히 지원해 드리고 싶어 하셨거든요. 그래서 말인데요. 그동안 저희 약품을 많이 써주시고, 임상에서 테스트도 해주시고 그랬는데…. 저희가 컴퓨터 하나 못 바꿔 드렸잖아요.

그런 건 필요 없어.

아뇨…. 사실 사장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이 연구가 중단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제 선에서 세포배양기 정도는 가능하거든요. 그리고… 시약이나 실험용 쥐 같은 것은 필요하신 만큼 구입하시면, 저희 회사에서 구입한 걸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사장님께서 그렇게 지시하셨거든요. 그리고 상황이 좋아지면, 공식적으로 지원을 하시겠답니다. 일단 그렇게라도 연구를 진행하시죠.

김 대리, 고맙고…. 사장님께도 고맙다고 전해드려. 근데… 세상엔 비밀이란 없어. 그리고 우리 연구가 비밀로 진행될 성질의 것도 아니고. 언제든 좋으니까…. 공식적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을 때 그때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도 전해드려.

교수님, 사실 이런 거는요. 그냥 다들 하는 관행이잖아요.

우리만이라도 원칙대로 하자고.

2007년에 방영된 드라마 ‘하얀 거탑’의 한 장면에서 우리는 고결한 한 인물을 본다. 선한 가치가 내재화된 이 사람은 결코 욕망을 따라 살지도 않고 세상풍조에 흔들리지도 않는다. 선이 드라마 캐릭터에 집약되어 나타난 것이다.

세상에서 의원을 높이 알아주건 안 알아주건 간에, 의원의 소임은 생명을 다루는 것이니 그 어느 생업보다도 고귀한 일이다. 허나 아무리 귀하다 한들, 마지막 한 가지를 깨우치지 못하면 진정한 의원이라 할 수 없으니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병들어 앓는 이를 불쌍히 여기고 동정하는 긍휼의 마음, 진심으로 병자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가짐이 있을 때 비로소 심의(心醫)가 되는 것이야. 세상이 진심으로 바라고 기다리는 것은 오직 하나, 바로 심의일 뿐이다.

2000년에 방영된 드라마 ‘허준’에서 허준이 스승 유의태의 시신을 해부하면서 스승의 가르침을 회고하는 장면이다. 이 드라마를 잘 새겨서 읽으면 병자를 긍휼히 여기는 허준의 마음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닮은 성심(聖心)을 발굴해 낼 수 있다.

이렇게 드라마 안에서 끌어낸 집약체로서의 선을 활용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교육효과를 거둘 수 있다. 드라마가 시대적 감성과 집단 무의식을 형성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의 선이 교육에 적극 활용되면서 끝난 다음에도 그 드라마가 끊임없이 회자되고 사랑받는다면, 상품으로서의 드라마가 자극적이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제작자들은 하게 된다. 미디어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고소득이 보장되는 특정 직업 자체가 목표가 된 사회다. 신분과 지위가 아니라,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어떻게 가르치면 좋을까?

전하, 소신 피난길에 오르면서 전란으로 참담하게 죽어가는 수많은 백성들을 보았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왜적의 총칼이 아니라, 전란 중에 발생한 역병과 질병으로 쓰러졌습니다. 소신, 의원의 손길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무참하게 죽어가는 백성들을 위해서 그리고 그들의 원혼을 위로하는 뜻에서 새로운 의서가 편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옵니다. 전하께서 하교를 내려주시면 소신이 내의원 의관들과 함께 새로운 의서를 편찬하겠사옵니다.

허준이 어의(御醫)가 된 뒤에 임금께 올린 간청이다. 최고의 지위에 올랐지만 결코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그 자리를 수단으로 삼아 선한 일을 하려는 이 장면 자체가 생생한 가르침이 된다. 드라마의 막대한 문화적 파급력을 활용한 덕분이다.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본받아 새것을 창조한다.’는 뜻이다. 가톨릭교회가 ‘법고(法古)’해 왔던 가치를 드라마를 활용해서 ‘창신(創新)’해야 할 필요가 분명 있는 시대이다.

* 이광호 베네딕토 - 낙태예방 생명문화 연구가로 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2년 6월호, 이광호 베네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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