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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사목] 피로사회 탈출, 귀농: 보시니 좋았던 하느님의 마음을 이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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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9-17 ㅣ No.645

[경향 돋보기 - 피로사회 탈출, 귀농] ‘보시니 좋았던’ 하느님의 마음을 이제야


가을을 알리는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가득하다. 따갑게 내리쬐는 햇빛이 눈이 부시도록 반짝이고…. 어느새 고추밭 사이로 빠알간 색의 고추들이 눈에 띈다. 밭고랑 사이엔 초록의 풀들이 작물보다는 조금 키가 작아진 듯하다.

마당 한편에 자리한 예취기가 놓인 그대로다. 여름내 풀과 씨름하며 그야말로 풀과의 전쟁이라고 누군가 말했던가! 하지만 우리 부부는 풀에게 전쟁이라는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풀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끌어안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풀들이 이렇게 예쁠 수가 없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하찮은 풀들도 농사에 필요한 제 역할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렇게 주님께선 우리 두 사람에게 내어놓고 담아내는 방법을 터득하게 해주셨다.


내어놓으면 채워주시는 귀농생활

우리 가족은 15년 전 이곳 경북 봉화군 춘양으로 우연찮게 내려오게 되었다. 오랫동안 학원을 경영하던 남편은 둘째 아이를 가졌을 무렵부터 서울생활을 벗어버리고 싶어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귀농이라는 말을 알지 못하던 때였다.

서울 토박이였던 나는 무엇 하나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시골이 너무나 낯설고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남편의 의견에 절대적으로 반대했다. 그런데 몇 년을 조르던 남편은 큰아이가 6학년, 작은아이가 3학년 때 기어이 혼자라도 시골로 가겠다고 엄포를 놓는데, 더는 말릴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사과 농사를 시작하면서 남이 약을 치는 날이면 우리도 약을 치고, 남이 적과를 시작하면 한발 늦게 아주머니들을 불러 적과하고, 남이 사과를 따면 우리도 따고…. 정말이지 스스로 알아서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나는 과수원에 따라가도 할 줄 아는 것이 없어 구경만 하다시피 했지만, 남편은 나를 타박하거나 보채지 않으면서 묵묵히 이곳에 적응하도록 기다려주었다. 그러는 사이 몸이 유난히도 약했던 나와 두 아이의 건강이 날로 좋아지고 있음을 느꼈다. 서울에서 감기로 자주 고생하던 아들은 공기 좋고 물 좋은 이곳에 와서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병원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가 되자 또 다른 갈등이 나를 힘들게 했다. 가까운 곳에 학교가 없어, 기숙사 생활을 하는 작은 도시 고등학교로 보내야만 했던 것이다. 마냥 어려 보이기만 하는 이 아이들과 떨어져서는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그나마 제일 가까운 영주의 한 고등학교에 입학을 시키고, 며칠을 울면서 지냈다. 그러는 사이 나도 모르게 의연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의 기우였나 보다. 아이들은 기숙사에서 잘 참고 견디며,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잘 지내주었다. 고생을 모르고 자라던 우리 아이들이 부모를 걱정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키워가고 있었다.

태풍이 심하게 불어대는 날이면, 철부지로만 여겼던 아이들이 전화를 걸어, 사과는 괜찮냐며 농사일을 걱정해 주었다. 그런 나의 아이들을 보면서 난 진정한 맘으로 삶의 감사함을 느낄 줄 알게 되었다. 내어놓으면 또 다른 것으로 채워주심을….


욕심을 버리게 한 유기농법

7-8년이 지나도록 농사일엔 젬병이었던 나를 남편은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처음 시도하는 농사를 혼자 해내는 동안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그것도 유기농이라 더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몇 년 전에는 고추 농사를 시작했는데 고추밭이 온통 진딧물로 가득했다. 유기농법은 벌레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천적을 이용해 스스로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만들어야 한다는데, 남편이 이래저래 노력해 봤지만 모두 헛일이었다.

‘아! 올 고추 농사는 포기해야겠구나.’ 실망의 맘으로 가득 차 고추밭에는 발걸음도 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 고추밭을 갈아엎을 맘으로 들렀는데, 고춧잎 뒤에 노란 알들이 가득하고, 한두 마리의 무당벌레가 밭 위를 날고 있었다. 그 노란 알들은 바로 무당벌레의 알이었다. 평소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큰 무당벌레가 진딧물을 잡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일반 무당벌레 한 마리가 진딧물을 잡아먹는 양은 하루에 오백 마리가량이라고 한다.

희망이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 죽어가던 고추나무에 가득했던 진딧물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다시 새잎이 돋더니 싱싱한 고추가 주렁주렁 열렸다. 비록 적은 양이었지만 그해 우리 가족이 먹기에는 충분했기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로 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어느 날 남편을 따라 밭에 갔는데, 파랗게 움트는 어린 싹들이 눈에 들어왔다. 흙 속에서 움직이는 작은 벌레들이 새로워 보였다. 파란 하늘이 무척 아름답게 보였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던 하늘이 내 마음에 들어오는 듯했다. 어느새 내 손에 작은 호미가 들리고 내 발길은 밭고랑을 향하고 있었다. 나도 놀랐다.

진정으로 자연을 느낄 줄 아는 마음이 내게도 움튼 것이다. 농약을 안 치고 어떻게 농사를 짓냐며 비웃던 이웃도 우리의 유기농법에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 어설퍼 보였던 우리 밭이 이젠 그럴 듯하게 정돈되어 가고 제법 수확도 늘어가고 있다. 물론 관행농사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이 적은 양이다.

몇 년 동안 고생했던 마늘과 양파 농사도 올해는 제법 성공적이었다. 겨우내 비닐 멀칭 속에서 곱게 숨어있다가 봄이 되어 뾰족뾰족 싹을 내밀면, 멀칭을 벗기고 농업기술센터에서 주는 미생물과 액비에 현미식초를 섞어 수확기가 될 때까지 4-5회 쳐준다. 그러면 동글동글하고 단단한 마늘과 양파가 되는 것이다.

살충제를 뿌리고 비료를 친 관행농사에 비하면 크기는 작지만, 단단하여 오래 보관할 수 있고 맛도 달콤 매콤한 것이 어느 것과 비교해 봐도 손색이 없다. 욕심은 욕심을 부른다고 한다. 욕심을 내면 마음까지도 황폐해지기에 우리 부부는 욕심을 내려놓는 쪽을 선택했다.


도시와 농촌이 하나 되어

요즘 시골은 도시인들의 귀농으로 그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때로는 귀농인들이 도시생활을 그대로 옮겨와 시골의 멋을 떨어뜨리는 때가 있다. 그러면 주민들과 부딪히기 마련이다. 도시의 생활만이 옳다고 여기는 귀농인들의 주장이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지역주민들이 살아온 관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자신이 생각하는 귀농생활이 자연을 황폐하게 만들 수 있다면 차라리 포기하라고 말하고 싶다. 나만 편하면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하지 않을까? 조금은 불편해도 조금은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나의수고로 땅이 살아나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간직해 가는 것, 그 또한 우리가 할 일이기 때문이다.

이젠 잘 갖추어지고 멋지게 지어진 집들이 부럽지 않고, 예쁘고 화려한 것들이 내게서 멀어져 가도 마음이 서글퍼지지 않는 건, 한껏 묶어놓았던 내 안의 욕심을 서서히 덜어낼 줄 알게 되어서일 게다.

주님께서 이런 우리를 기특하게 보셨는지, 우리 유기농 농산물이 의정부교구 후곡본당 신자들에게 갈 수 있도록 연결해 주셨다. 뿌리 역할을 하는 농민이 농약과 제초제를 쓰지 않고 힘들게 지어내는 농산물을, 도시의 꽃님들이 소비해 주는 방법으로, 도시와 농촌이 하나 되어 자연의 생명과 환경을 지키는 일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이제 10월이면 27세 우리 딸아이는 혼인을 한다. 군복무를 마친 아들은 대학생활을 몇 년 더 할 테고, 우리 남편은 지금처럼 소박한 자세로 유기농 농사일에 열심일 것이다. 이렇게 고맙고 사랑스러운 우리 가족과 함께 ‘보시니 좋았던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있음이 자부심으로 느껴진다.

* 서기순 클라라 - 안동교구 춘양본당 신자. 15년 전에 귀농하여 유기농법을 고집하며 농사일을 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2년 9월호, 서기순 클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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