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6일 (일)
(녹) 연중 제11주일 어떤 씨앗보다도 작으나 어떤 풀보다도 커진다.

강론자료

2015-0215....연중 제6주일 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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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2-14 ㅣ No.1700

연중 제6주일 (나해)

레위기 13,1-2.44-46         1코린 10,31-11,1      마르코 1,40-46

2015. 2. 15. 이태원

주제 : ‘하실 수 있다면.....?’

세상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길 것인지 그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한 가족의 구성원이라고 해도 차이가 있을 것이고, 한 공동체에 속해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바라는 것은 서로 다르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할 때, 내가 어떤 기준을 제시하면 다른 사람이 내가 하는 말을 따르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내가 알아낸 기준을 제시했는데, 상대방이 내가 제시한 기준을 따르지 않거나 귀로 들었을 소리와는 전혀 다른 행동을 했을 때,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하겠습니까?


오늘 복음말씀에서 우리는 극적(劇的)인 얘기를 들었습니다. 복음내용은 우리 몸의 일부분이 떨어져나가는 천형(天刑)이라고 불리던 나병(癩病)환자의 몸이 깨끗하게 치유되고 회복하는 과정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어떤 병이든지, 앓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법입니다. 어떤 병이든지 병을 앓는 사람이 견딜만하다고 하거나, 다른 사람보다 더 큰 병을 앓는 것은 아니니 그래도 내가 행복하다고 여길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자신이 처한 현실을 보는 자세에 따라 대처방법은 다를 것입니다.


오늘 복음말씀에 나오는 나병을 앓던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면서 스승님께서는 하고자만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다는 소리로 마음을 드러냅니다. 이 소리에 그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얼마나 담았을까요? 그 분량을 계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그가 다음 순간에 한 행동을 보면 그가 가졌을 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소리에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과학의 힘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요즘 세상에 이런 말이 얼마나 적용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일이 잘되면 내가 받을 복을 받은 덕분이라고 생각하지, 그걸 누가 하늘의 움직임/혹은/도움이라고 생각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했을 법한 모습을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부탁을 했던, 나병환자가 어떤 상황에서 머물고 있었는지 마르코복음사가는 우리에게 전해주지 않습니다. 다만 환자의 등장과 함께 그가 청원하는 소리, 그리고 예수님의 치유선언, 그 다음에 환자였던 그 사람의 행동에 따라 예수님이 받은 영향만을 전합니다. 예수님은 나병환자의 삶이 변하게 된 과정이 증거로서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아주 간단하면서도 반드시 필요했던 한 가지를 그에게 말씀하셨지만, 그 사람은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그 말씀을 지키지도 않았습니다. 청원(?)을 담아서 자기가 처한 현실을 변화시켜달라는 말은 했지만, 그는 처음부터 예수님에게서 놀라운 일이 시작될 거라고 믿지 않았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앞뒤의 상황을 함께 생각해보면,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삶에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제가 묻는 이 질문은 내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가져야 할 자세를 묻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각자가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옳으냐고 묻는 것입니다. 우리들 각자가 하느님을 대한다고 하면서 인간을 대하는 것과 같은 자세로 하면, 자기의 삶에 일어난 일은 놀라운 일은 될 수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는 특별한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현실에 일어난 놀라운 일이 미래에도 그 의미를 갖게 하고 싶다면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일관성에 대한 것입니다

 

첫째독서에서 들은 것처럼, 공동체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사람이 겪을 것은 공동체를 위하여 희생하는 마음입니다. 왜 다른 사람은 가만히 있고 나만 희생해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라면 그는 공동체에 어떤 모습을 남기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선하고 좋은 결과를 가져올 일은 다른 사람에게 강요해서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하는 행동이 좋은 영향을 주는 모습으로 남기 위해서는 개인보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앞서야 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드러내야 할 올바른 세상 삶의 자세는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속한 본당공동체에 나는 어떤 모습을 드러내야 하겠습니까?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나에게 좋은 일을 하도록 강요할 권리를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바오로사도가 세상에서 드러냈던 것처럼, ‘모든 일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움직인다는 자세는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 마음과 자세는 나 자신에게 뿐만이 아니라, 하느님을 공경하는 사람들의 무리인 공동체에도 중요한 모습을 남길 것입니다.


세상만물을 돌보라고 우리에게 사명을 주신 하느님, 저희가 드러내는 삶의 자세가 당신의 영광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과 행동이 되게 해주시기를 청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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