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6일 (일)
(녹) 연중 제11주일 어떤 씨앗보다도 작으나 어떤 풀보다도 커진다.

강론자료

2015-0216.....연중 제6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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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2-15 ㅣ No.1701

연중 제6주간 월요일 - 홀수 해

창세기 4,1-15.25             마르코 8,11-13

2015. 2. 16. 이태원

주제 : 하느님의 편애(偏愛)(?)

세상은 얼마나 공평할까요? 이런 질문에 대답하다보면, 쉽게 나오는 대답이 있습니다. 인간의 세상은 그렇지 못해도 하느님의 세상이나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는 교회공동체만은 공평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렇게 이론에 근거한 대답을 해놓고, 하느님의 세상은 잘 모르니까 접어놓고 교회공동체는 정말로 공평한가 하고 물어보면서, 그 대답에는 쉽게 아니다....하고 대답합니다.

이런 대답이 어디까지 옳을까요? 정말로 교회공동체는 공평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질문하면, 각자 대답하고 싶은 사람이 공평하다는 것과 평등하다는 개념을 헛갈리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 질문해봐야 합니다.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면, 대답은 전혀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전에 나오는 공평이라는 말과 평등이라는 말의 차이를 아십니다. 우리말 사전에, 공평(公平)이라는 말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고름이라고 설명하는 말이고, 평등(平等)이라는 말은 권리·의무·자격 등이 차별 없이 고르고 한결같음이라고 설명합니다. 미묘한 차이이기는 하지만 분명히 다른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창세기의 일부분을 읽은 독서말씀에서 전형적인 불공평의 얘기를 보았습니다. 무슨 이유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하느님도 카인과 아벨의 제물에 서로 다른 기준을 두고 받아들이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공의(公義,=<>선악을 공평하게 제재(制裁)하는 하느님의 적극적인 품성)로우신 분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이 말을 정확하게 구별하려면 삶이 올바른 길로 가고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카인과 아벨을 구별하여 편애하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해야 정답이 될 데, 오늘 독서내용만으로는 그렇게 봐줄 수가 없다고 할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성경에 나오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도 안 되는 것은 분명히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대상도 인간과 마찬가지 길을 가야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제대로 판단해야 합니다.

동생을 해친 카인이 다른 사람에게 비명횡사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특별한 표를 찍어주셨다는 것이 정말로 공평한 기준의 실현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드러난 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향하여, 우리에게 목소리를 높여 말하고 싶다면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증거로 요구한 바리사이들은 과연 어떤 길을 갔던 사람들이겠습니까?

하느님의 편애는 우리의 모든 것을 고려한 하느님의 판단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 더 좋겠습니다. 잠시 묵상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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