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6일 (일)
(녹) 연중 제11주일 어떤 씨앗보다도 작으나 어떤 풀보다도 커진다.

강론자료

2015-0223.....사순 제1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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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2-22 ㅣ No.1707

사순 제1주간 월요일

레위기 19,1-2.11-18       마태 25,31-46

2015. 2. 23. 이태원

주제 : 세상을 대하는 자세

세상에서 사람은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이렇게 질문을 하면, 대답은 두가지중에 하나가 될 것입니다. 하나는 그렇다와 다른 하나는 왜 그래야 하느냐 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말할 사람은 그런 기억 때문에 삶이 달라진 체험을 한 사람이거나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있는 사람일 것이고, 왜 그래야 하느냐고 질문할 사람이라면 삶에 대한 자신감이 꽉 차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렇게 구별하면 맘에 드는 삶이란,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상황일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대하는 자세는 다양합니다. 얻거나 잃을 것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요소를 생각해도 그 대답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든지, 다른 이가 내 삶에 대해서 아무런 제재도 할 수 없다면, 어떤 현상이 생길까요? 세상의 기준이라는 것은 그렇게 움직이지만, 사람의 삶에 그렇게 바라는 대로만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오늘 복음은 최후심판에 있을 법한 얘기를 전하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기는하지만, 실제로 이렇게 일이 생기면 어떠할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바라보겠느냐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뒤통수를 친다고 예수님과 세상에 대한 심판자의 행동과 판단을 우리 사람의 입장에서 비난하지는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대답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어떻게 판단하고 평가하든 그것은 우리의 자유입니다. 아직은 예수님께서 하시겠다고 하는 일이 실현된 것도 아니고, 우리들이 예수님의 판단에 따라서 왼편으로 갈라져야 할 염소의 무리에 든 사람이라는 단정도 없기 때문입니다. 내 맘에 드는 결과가 생기면 내가 흥분하지 않고, 내 맘에 들지 않으면 더 많이 흥분하게 될까요?

우리가 반드시 다른 사람을 생각해서 내가 가진 시간이나 돈을 희생하고 살아야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그 어느 것도 정해진 상태에서 우리에게 반론(反論)의 여지없이 찾아올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마태오복음의 최후심판의 얘기는 예수님께서 독창적으로 지어낸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히브리민족에서 하느님에 관한 묵상과 기도로 드러난 모습을 한 번 더 체현한 것에 불과한 것일 뿐입니다. 하늘 아래 온전하게 처음인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물러서서,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들은 삶의 기준이 히브리민족의 내부가르침이었다고는 해도, 보편적인 진리가 될 수는 있을 것입니다. 내가 세상을 대하는 자세에서, 그다지 좋은 느낌은 아닌 갑의 행동을 내가 영원히 언제나 또 내가 원하는 순간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는 과연 어떤 것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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