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가톨릭 교리

가톨릭 신학3: 나는 믿나이다, 우리는 믿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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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1-22 ㅣ No.3865

[가톨릭 신학03] 나는 믿나이다, 우리는 믿나이다

 

 

성인이 되어 세례를 받았던 분들은 그 설레던 마음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세 번의 질문, 곧 “천지의 창조주 전능하신 천주 성부를 믿습니까?”,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성령…을 믿습니까?” 이 질문에 큰 소리로 “믿습니다.”라고 고백했던 때 말입니다. 그리고 직전에는 이런 질문을 받았지요. “끊어버립니까?”라는 질문입니다. 죄를 끊고, 악의 유혹을 끊고, 마귀를 끊어버리냐는 세 번의 질문에 역시 “끊어 버립니다.”라고 답합니다.

 

세례 때의 이 고백은 우리 신앙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신앙은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진리를 믿고, 하느님을 신뢰하며 그분이 보여주신 길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례 때 우리가 받았던 질문, 그리고 대답은 신앙이 단순히 머리로만, 즉 교리를 ‘외운다’는 것만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 전체가 하느님을 향하여 움직이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신앙은 베네딕토 16세 교황님 말씀처럼 결단이요, 모험이요, 투신인 것입니다.

 

한편, 세례 때에 그리고 현재 신경에서 ‘나는 믿습니다.’라고 하고 있는데, 또한 “우리는 믿습니다.”의 고백 형식도 있음을 살펴보는 것도 신앙의 이런 측면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자주 고백하는 신경은 사도신경인데, 이 신경보다 오래된 신경으로 381년에 있었던 공의회에서 고백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이 있습니다. 이 신경에는 “우리는 믿습니다.”로 되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주어가 바뀐 것에 대해 의구심을 갖기도 하지만, 사실 두 표현은 서로 다른 상황에서 그리고 다양한 신학적 의미를 갖기 때문에 신앙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더욱 풍요롭게 합니다.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주어가 “우리”였던 것은 공의회에서 모인 주교님들이 ‘함께’ 공동의 신앙을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성경에서도 강조되고 있는 것이 ‘하나의 신앙’입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에페 4,5) 그래서 나의 신앙은 곧 교회의 신앙입니다. 정확히 말한다면 나의 신앙은 교회로부터 받은 것으로서,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그 신앙을 받은 것이며, 그리고 교회 안에서 성장하는 신앙입니다. 이것을 신앙의 교회적 특성이라고 하는데 언젠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의 이름은 그리스도인이고 나의 성(姓)은 ‘교회에 속한’입니다.” 신앙인으로서의 우리의 신원을 성명에 빗대어 하신 말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믿나이다.”라는 말은 우리 모두 하나의 신앙을 고백한다는 말을 표현합니다.

 

반면 ‘나는 믿나이다.’라는 표현은 세례를 받을 때 사용하던 형식입니다. 다른 누가 아니고 바로 ‘내가’, 천지의 창조주,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 예수그리스도,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표현은 누군가의 고백에 은근슬쩍 얹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고, 그래서 이것은 “나는 끊어버립니다.”라는 삶의 전환 선언으로 이어집니다. 신앙은 하나의 투신인 것이지요.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하나인 우리의 신앙을 나의 신앙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2023년 1월 22일(가해) 설(하느님의 말씀 주일) 서울주보 4면, 최현순 데레사(서강대학교 전인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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