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자] 현대의 순교자에 관한 연구 동향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02 ㅣ No.310

현대의 순교자에 관한 연구 동향

 

 

성인들, 특히 순교자에 대한 책들은 계속 출간되고 있다. 이 글은 순교자 중에서도 현대의 순교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복음과 그 내용의 지속적인 가치에 관한 순교자의 상징적 의미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 바가 있다. 교황의 글에서 강조된 순교의 신학적 중요성은 교황의 사상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교황은 다른 무엇보다도 현대의 순교자의 중요성, 다시 말해서 현대의 교회 일치 운동에서의 화해(ecumenical reconciliation), 초창기의 교회 일치적 연대(primordial ecumenical bond)를 보여 주려고 그리스도를 위해 죽은 사람들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교황은 회칙 [하나 되게 하소서](ut unum sint)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느님 중심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리스도인들은 공통되는 순교론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는 현대의 순교자들도 포함이 된다. 이들의 숫자는 보통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많다. 그리고 하느님은 순교를 통해 세례를 받은 자들의 일치를 매우 고차원적인 차원에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순교자를 이야기할 때 고대와 초대 그리스도 교회의 순교자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현대의 순교와 과거의 순교가 어떻게 서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지난 몇 년에 걸쳐 이에 도움이 되는 논의를 적절히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되는 연구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 다니엘 보이어린(Daniel Boyarin)의 최근 작품에서는 종교적 전통의 생성과 보존에 건설적인 요소가 되는 순교의 설화적 특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이어린은 "순교를 하나의 담론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곧 하느님을 위한 죽음 그리고 그에 관한 언급의 실천, 다시 말해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고 발전하는 담론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담론의 중요성은 강조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의 전통에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순교자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또한 전례적인 그리고 비전례적인 공경으로 몇몇 순교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는 행위적인 설화의 방법으로 그들을 기리기 때문이다. 


보이어린의 책은 포스트모던의 문학적 담론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보이어린의 책을 읽을 때 그 내용이 환원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순교자의 실질적 증언과, 종교 전통에 완전히 흡수된 일종의 담론의 형태로 나타나는 순교자에 대한 기억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어떤 사람이 순교하면 그 다음에 순차적으로 그 사태에 대한 설화와 한 집단의 기억이 '구성'(construct)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형성된 담론은 여러 사람들이 각자 자신만의 담론을 형성하도록 자극할 수가 있다. 그러한 담론이 얼마나 서로 다를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은 브래드 그레고리(Brad Gregory)의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 그레고리는 종교 개혁 이후의 재침례교를 포함한 개신교와 가톨릭 교회의 순교에 관한 자료를 조사한 바가 있다. 그레고리의 분석은 '잘 죽는 법'(ars moriendi)에 관한 시각적으로 묘사된 작품으로부터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중세 문학 전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레고리는 성서의 고전적인 글귀뿐 아니라 웅변과 강론의 목적으로 설화식으로 이야기된 내용들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언급하고 있다. 그레고리 책의 특별한 점은 환원주의를 단호히 배격한 것에 있다. 그레고리의 책의 자료는 모두 신앙을 위해 죽은 개신교와 가톨릭 신자들에 관한 것이다. 순교 문학 작품에 대한 현대적 분석을 할 때 종종 간과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신앙에 관한 것인데 그레고리는 일부러 신앙의 측면을 무시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도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이것은 보이어린이 신앙을 순교의 증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간주하는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현대의 순교자 

현대의 순교자의 상황을 살펴보려면 역사 연구와 풍부한 성인전(hagiography)과 도상(iconography) 등을 참고하게 된다. 현대의 그리스도교 진리의 증인들은 런던의 웨스트 민스터 묘지의 서쪽 앞부분에 10개의 돌상으로 새겨져 벽감(壁龕)에 안치되어 있다. 이 조각들은 1998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참석한 가운데 캔터베리의 대주교에게 축성을 받았다. 러시아 정교, 로마 가톨릭, 성공회, 장로교, 루터교, 그리고 침례교 등의 순교자를 대표하는 10개의 돌상은 모두 20세기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순교한 이들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 동상들은 마틴 루터 킹 2세(Martin Luther King Jr.) 목사, 막시밀리안 콜베(Maximilian Kolbe) 신부, 디트리히 본훼퍼(Dietrich Bonhoeffer) 목사뿐 아니라 파키스탄에서 살해된 장로교 선교사 이스터 존(Ester John), 1928년 남아프리카에서 교리 공부를 하던 중 미신을 믿는 부모에게 살해당한 성공회 예비신자인 만체 마세몰라(Manche Masemola) 등의 것이다. 


로버트 로얄(Robert Royal)은 20세기 그리스도교 순교자에 대한 뛰어난 연구를 하였다. 그의 저서는 주로 로마 가톨릭에 관한 광범위한 2차 자료를 수집 정리한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국가 단위의 조사 자료뿐 아니라 개별 순교자의 생애에 대한 자료도 정리해 놓았다. 영어로 된 책 중에서 현대의 순교자에 대해 이토록 풍부한 자료를 모아 놓은 것은 없다. 물론 순교자의 숫자가 너무 많아 각자에 관한 자료를 하나도 남김없이 다 담을 수는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로마에서 살고 있는 역사학자이며 상에지디오(Sant'Egidio)회의 회원인 안드레아 리카르디(Andrea Riccardi) 교수도 순교자를 주제로 한 책을 저술한 바 있다. 책 제목은 [순교의 시대:20세기의 그리스도교인](Il secolo del martirio:I cristiani nel novecento)이다. 이 책은 이미 3판까지 나와 있지만 아직 영어로 번역되지는 않았다. 


현대의 순교자들을 기릴 목적으로 교황청 '사도들의 모후' 대학(Apostolical Atheneum Regina Apostolorum)에서 개최된 심포지엄의 자료가 최근 그 학교에서 발간하는 계간지인 [교회](Ecclesia)에 스페인어로 게재되었다. 이 심포지엄은 2000년 대희년 맞이 행사의 일환으로 로마에서 개최된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여기에 정리된 자료들은 담론적 성격을 가진 것으로 주석에 나온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순교자들의 일생에 관한 자료가 들어 있지 않다. 이 계간지의 이전 호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순교자들에 대해 행한 강론들 중에 몇 가지를 부록으로 싣고 있다. 그러나 이 내용들조차도 이미 [사도좌 관보](AAS)에 나와 있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계간지에 자세한 자료 인용 없이 에세이 형식으로 순교자들에 대한 글을 실은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학문적 연구를 위해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순교자의 일생을 연구하는 데는 적절하지 않다.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될 수도 있었는데 너무 서두른 흔적이 있어 보여 아쉬운 것이다. 


엘살바도르의 순교자에 관한 최근의 글은 그리스도교의 순교가 어떻게 성립되는지에 관한 판단 기준에 대하여 초대 교회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잘 조사하여 좋은 도움이 되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에디트 슈타인(Edith Stein) 수녀의 성인품에 대한 당시에 있었던 논란이 보여 주는 것처럼 학문적 관심만이 아니다. 곧 "그녀가 순교자로서 죽었는가 아니면 나치가 유다인을 증오했기 때문에 죽었는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좀 더 확대해서 다음과 같이 질문을 할 수 있다. 곧 "엘살바도르의 순교자들이 교회 전통적으로 어떤 사람을 성인으로 선언하는 데 기준이 되는 '신앙으로 인한 박해'(in odium fidei)를 받았는가?"라는 것이다. 과연 로메로 대주교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순교자인가 아니면 정치적 암살의 희생자인가? 


슈벡(Schubeck)은 중세의 토마스 데 아퀴노(Thomas de Aquino)와 현대의 칼 라너(Karl Rahner) 모두 순교의 의미를 폭넓게 해석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곧 자선, 용기, 그리고 정의를 행하는 것 모두가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일이며, 단순히 신앙 때문에 박해 받고(in odium fidei) 죽는 것만을 순교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슈벡의 입장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생각에도 상당히 근접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황의 이런 생각은 [진리의 광채], [하나 되게 하소서], [생명의 선물], [아메리카 교회] 등뿐 아니라 시복식이나 시성식에서 행한 연설에도 나와 있다. 
현대의 순교의 기준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준은 예수회 수사인 제이미 코바루비아스(Jaime Covarrubias)의 책인 [20세기 순교론: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순교한 예수회 수사들](A Martyrology for Twentieth Century:Jesuits who Died for the Love of God and Man)에 나온 것이다. 


(1) 어떤 사람이 학대를 받다가 암살당하거나 죽어야 한다. 
(2) 박해자가 신앙을 증오하거나 그 신앙에 본질적인 덕을 행하는 일을 증오하여야 한다. 
(3) 순교자는 그러한 행위가 목숨을 잃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미 인식했어야 한다. 


이러한 새로운 순교의 개념을 더 명확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동방 정교에서 성자에 대해 행하는 풍습을 잠깐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동방 정교의 전통에서는 '그리스도를 위해 바보가 된 자'(Iurodivyi)를 존경한다. 그런데 이에 더해 특히 '수난자'(Stratoterpsi)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비폭력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하늘 나라를 위해 고난을 당한 사람들이다. 11세기에 친형에게 비참하게 살해당한 보리스(Boris)와 글렙(Gleb)은 러시아 정교회에서 최초로 성인품에 오른 순교자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순교자의 전형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성인품에 오른 다른 경우의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성인적인 면모가 바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같아 보인다. 교황이 우크라이나 출신 순교자를 위한 시성식 때 그러한 순교자들이 '산상수훈 복음의 이콘(icon)'이라고 말한 바가 있다. 


지난 10년 동안 신앙을 위해 죽은 사람들에 관한 글들이 많이 발표되고 있는데 이는 교황이 현대의 순교자들을 강조하고 있는 데 힘입은 것으로 보인다. 그 중에 몇 가지 눈에 뜨이는 예가 다음과 같다. 


1993년 9월 15일 56세를 일기로 마피아에게 암살당한 팔레르모 교구 소속 쥬세페 풀리시(Giuseppe Puglisi) 신부에 관한 교구 차원의 증빙 자료들이 교황청에 제출되어 있다. 풀리시 신부는 팔레르모 지역에서 타협할 줄 모르는 마피아 반대 운동가였다. 그는 마피아의 범죄 행위와 시민들에 대한 특히 청소년들에 대한 악영향에 대해 우려하여 마피아를 강력하게 반대한 것이다. 풀리시 신부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했고 성인다운 태도와 사회적 활동으로 명성이 높았다. 풀리시 신부는 교황이 시칠리아를 방문했을 때 행한 사목적 가르침과 예언자적 과제에 관한 말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교황이 모든 범죄 행위를 비난하고, 특히 마피아 조직을 직접적으로 지적하며 비난한 것에 용기를 얻었다. 교황은 풀리시 신부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그의 용기와 진리에 대한 사랑을 특별히 칭찬하였다. 풀리시 신부의 일대기는 시칠리아의 유명한 저널리스트인 프란치스코 델리치오시(Francesco Deliziosi)가 [풀리시 신부:마피아에게 살해당한 팔레르모 교구 사제의 생애](Don Puglisi: vita del prete palermitano ucciso della mafia)라는 제목의 매우 훌륭한 책으로 써 냈다. 또한 본당 신자들에게도 커다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는 현대 교회에서 이해하는 오늘날의 순교의 의미와 연관되는 풀리시 신부의 행적에 관하여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델리치오시(Deliziosi)는 시칠리아 출신의 신학자인 바르톨로메오 소르제(Bartolomeo Sorge)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소르제는 과거 교회에서는 사람들이 '신앙의 박해'(in odium fidei) 때문에 순교하였지만,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박해'(in odium caritatis) 때문에 순교한다고 말하였다. 


20세기의 마지막 10년 동안에 알제리만큼 그리스도교인들이 박해 받은 지역도 없을 것이다. 정부에 반대하는 이슬람 과격 분자 집단은 약 30명의 수도자, 신부를 살해하였다. 여기에는 주교도 한 명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관점에서 볼 때 불법적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한 전쟁의 일환으로 이러한 살해를 자행하고 있다. 이 중에 가장 잔학했던 것은 1996년 5월 21일에 트라피스트회 수사 7명을 납치한 후 목을 잘라 살해한 일이다. 이 사건이 발생하기 2년 전에 수도원장이었던 크리스티앙 드 세르주(Dom Christian de Cherge') 신부가 쓰고 봉해 놓은 편지 때문에 이 일은 더욱 유명해지게 되었다. 이 편지는 세르주 수도원장이 다른 수사들과 함께 비참하게 죽고 난 뒤 맞이한 성령강림 대축일에 공개되었다. 


세르주 수도원장의 이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세르주 수도원장은 수도원 내에서 수사들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수사들이 살해되더라도 이슬람교 신자들을 향해 비난을 퍼붓거나 이슬람 신앙을 조롱거리로 만들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리고 세르주 수도원장 자신은 형제애적인 차원에서 알제리에 머물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사실 세르주 수도원장은 종교 간의 대화에 매우 열심이었다. 이 편지의 마지막 단락에서 세르주 수도원장은 살인자에 대해 직접 화법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미래의 어느 날에 '두 명의 선한 도둑들'이 천국의 하느님 앞에서 서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고는 미지의 살인자에게 작별 인사를 고했다. 


이 트라피스트회의 수사들에 대한 몇 가지 유용한 논문들이 발표되었었다. 그런데 이제 알제리의 상황, 수사들이 추구한 삶, 그리고 이들이 개종의 유혹에 맞서서 굳건히 저항한 일 등을 잘 알고 있는 르네 귀통(Rene' Guitton)이 이들에 관해 두꺼운 책을 썼다. 책명은 [만약 우리가 침묵한다면 ...... 티비렌느 수사들의 순교](Si nous nous taisons ...... Le martyre des moines de Tibhirine)이다. 


귀통의 책에서 가장 흥미 있는 것은 트라피스트회가 19세기에 알제리에 창설될 때의 사연을 강조한 점이다. 이 당시 반성직주의적(anticlerical) 공화국 정부는 이 수도회를 탄압하였었다. 그리고 프랑스 식민 정부는 이른바 '개화 선교 정책'(misssion civilitrice)의 일환으로 이러한 정책을 옹호하였었다. 수도회 설립 초기의 모토였던 "칼과 십자가 그리고 쟁기를 위하여"가 상징하던 것과 그 수십 년 후에 알제리로 건너와서 수사들이 세워 놓은 것의 극명한 차이는 선교의 이론과 현실의 복음화가 한 세기 내에 얼마나 크게 달라질 수 있는지에 대한 좋은 연구 자료가 되고 있다. 


귀통의 연구는 목이 잘린 수사들, 아틀라스의 모후 수도원, 그리고 알제리의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간의 관계 등에 대한 프랑스 시민과 종교계의 반응에 관해서도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알제리 순교자들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곧 특히 관상을 주로 하는 작은 규모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그들에게 무관심하거나 나아가 적대적인 환경에서 어떻게 복음의 진리의 증거자가 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순교자들에 대한 설화식의 이야기는 신자 공동체 안에서 신자들의 기억에 머물고, 이들의 제자다운 행위의 특성은 과거나 현재에나 모두 신학적 사유를 위한 좋은 자료가 된다. 엘살바도르에서 동료들의 죽음을 목격한 존 소브리노(Jon Sobrino)는 이러한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최근에 발표한 [해방자이신 그리스도](Christ the Liberator)에서 소브리노는 '사랑하는 아들'(Beloved Son)과 순교자 간에는 비슷한 점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곧 "이 세상에는 선교를 수행하다가 무너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고난당하는 종처럼 약하고 무기력하게 삶을 마감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이러한 종과 완전히 일치하는 순교자들이 많이 있다."그러나 순교는 고난과 미움으로 무너지는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고난 받는 종'은 결국에는 '부활한 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소브리노는 순교가 '복음'에 깊은 뿌리를 둔 것으로 보고 있다. 순교가 '복음'이라고 한다면 물론 모순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모순이든 모순이 아니든 간에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은 옳다. "거짓과 잔인함이 판치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순교자들은 진리와 사랑, 확신과 믿음 그리고 죽을 때까지 사랑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 원문:Lawrence S. Cunningham, "On Contemporary Martyrs: Some Recent Literature", Theological Studies, 63권, 2002년 3월, 374-381면, 이종범 편역.


* 로렌스 커닝햄(Lawrence S. Cunningham)은 노틀담 대학(University of Notre Dame) 교수로 로마의 그레고리안 대학(Gregorian University)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플로리다 주립 대학(Florida State University)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사목, 2002년 9월호, 로렌스 커닝햄(노틀담 대학 교수)]



524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