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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간추린 사회교리: 정치공동체 - 민주주의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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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8-18 ㅣ No.965

[간추린 사회교리] 정치공동체 - 민주주의가 답이다


많은 이들이 현 정부를 ‘시장만능’ 또는 ‘신자유주의’ 등의 표현을 써가며 비판한다. 그러나 이런 표현들 안에도 사회와 국가, 시장을 바라보는 일관된 논리와 철학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어느 ‘팟캐스트’의 표현대로 “국가를 수익 모델로 삼아 사적이익을 추구”하는 정부라는 표현이 그럴싸하다. 어떤 신자유주의 정부가 억지로 물가억제책을 강제로 동원하고, 어떤 시장만능 정부가 아파트 미분양 물량을 세금으로 매입하고 금융계에 낙하산을 무더기로 내려 보내 관치금융 상태를 만드는가?

그러면 국가는 무엇이고, 무엇을 해야 하나? 국가는 강해야 하나 아니면 작아져야 하나? 언뜻 정치학에서나 할 만한 질문들이라고 여길지 모르겠으나, 가톨릭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은 이런 정치적 영역에서도 복음적 성찰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사회교리의 가장 중심에 있는 문제의식은 한 사회 또는 한 국가를 어떻게 조직하고 운영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국가는 무엇인가

성경의 첫 장은 하느님께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셨다고 전한다. 이는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시작에서부터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사회 안에서 살아가도록 불림을 받았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사람은 사회 안에서 자기를 실현한다. 이것은 인간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본성을 말한다.

이러한 본성에 따라 인간은 시민공동체 또는 시민사회를 형성한다. 뿐만 아니라 더 나은 공동선을 실현하고자 정치공동체 또는 국가를 형성한다. 여기서 공동선이란 “개인과 가정과 단체가 더 충만하게 더욱 쉽게 자기완성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생활 조건의 총체”(사목헌장, 74항)를 말한다.

국가의 본질과 목적은 인간이 자신의 사회적 정치적 본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사회적 조건인 공동선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는 “공동선을 위하여 존재하고, 공동선 안에서 완전한 자기 정당화와 의미를 얻고, 공동선에서 본래의 고유한 자기권리를 이끌어낸다”(사목헌장, 74항).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나

국가의 존재이유가 인간의 사회적 실현을 위한 것이라면 구체적으로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고 또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우선 국가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국가가 전체 사회 안에서 다른 영역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전체주의에서 국가는 시장과 시민사회를 국가의 영역과 통제 속으로 통합시키려는 경향이 있고, 자유주의에서는 시장을 중심으로 국가와 시민사회의 영역을 축소하려고 한다. 이처럼 어떤 입장에서 국가를 이해하는지에 상관없이 한 사회를 국가 - 시장 - 시민사회의 세 영역으로 파악하는 것은 대단히 일반적이다.

역대 교황들이 정치학의 언어를 그대로 빌려 쓰기를 꺼려해서 그렇지, 실제로는 교회문헌 역시 사회과학에서 말하듯 한 사회를 정치공동체(국가), 경제공동체(시장), 그리고 시민공동체(시민사회)의 3분법 안에서 바라보고 있다. 교회의 여러 문헌은 이 세 영역이 전체주의나 자유주의의 경향을 거슬러 서로 자율적이고 균형 있는 관계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국가의 존재와 역할은 나머지 두 영역과 맺는 관계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국가는 시민사회에 봉사해야 한다. 시민사회에 대한 국가의 봉사는 한마디로 말하면 공동선의 증진이다. 인간이 자기완성을 위해 필요한 사회적 조건들, 예를 들면 의식주, 생활 신분의 자유로운 선택, 가정의 형성, 교육, 일자리, 적절한 의료혜택, 사회적 존중과 명예, 적절한 정보, 건전한 사법체계 등을 증진시켜야 하는 것이다.

다른 면에서 국가의 권력과 역할은 시민사회 안에서 각 사회적 주체들이 각종 활동에 자유롭게 참여하도록 보조성의 원리에 입각하여 제한되어야 한다. 보조성의 원리는 더 작은 조직과 단체의 역할과 활동을 위하여 큰 조직과 단체의 역할을 제한해야 한다는 원리이다.

국가나 시민사회와 달리 시장은 사적영역이다.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가치보다 이윤과 경쟁이 우선시되는 영역이다. 독점과 불균형이 쉽게 자리를 잡는 곳이 바로 시장이다. 그러므로 국가는 공동선의 원리에 따라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이다. 특히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야 할 사회적 조건을 뜻하는 공동선의 원리에 비추어 볼 때, 생산수단과 토지소유의 절대적 지배에 대항하여 국가는 시장을 조절하여야 하고(「백주년」, 35항), 시장 안에서 과도한 독점을 막고 시장 안에서 인권이 무시되지 않도록 감시하고 조정해야 한다(「백주년」, 48항).

더 나아가 국가는 노동시장 안에서 특별한 지위와 역할을 갖는데, 그것은 간접 고용주로서의 역할이다. 직접 고용주는 노동자가 일정한 조건에 따라 직접 노동계약을 맺는 사람 또는 단체를 뜻한다면, 간접 고용주는 노동협약 뿐 아니라 노동현장에서 정당하거나 부당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인들을 뜻한다. 국가가 간접 고용주로서의 역할과 지위를 갖는다는 것은 결국 국가가 올바르고 윤리적인 노동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말이다.

어차피 직접 고용주는 이윤 극대화를 위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노동조건으로 노동계약을 맺으려 할 것이고, 상대적으로 약자인 노동자들은 인권과 권리를 제약받는 조건에 놓여있다. 그러므로 간접 고용주로서 국가는 노동자들의 권리와 인권이 존중받도록 노동정책을 통해서 노동시장에 개입해야 하는 것이다(「노동하는 인간」, 16.17항).

이렇게 우리는 국가의 역할에 대해 사회 각 영역과 관련하여 이해해야 한다. 국가는 시민사회에 대해서는 공동선을 증진시키고, 보조성의 원리에 따라 그 권력이 제한되어야 한다. 반대로 국가는 시장이라는 사적영역에 대해서는 공동선을 증진시키고자 시장에 개입하고 조절하여야 한다. 시장 안에서 독점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노동자들의 인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감시하고 조정해야 한다. 특히나 노동시장 안에서 윤리적이고 올바른 노동정책을 수행하는 것은 국가의 중대한 의무이다.


국가는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나

국가의 존재목적과 사회 각 영역 안에서 갖는 역할을 생각해 볼 때, 국가가 조직되고 운영되어야 하는 가장 긍정적인 구조는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는 중요한 정치적 결정에 시민이 참여해야 되고, 정부를 선택하고 통제하며 대치하는 권한을 뜻한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따르면, “교회는 민주주의를 높이 평가하는데, 이 체제는 확실히 시민들에게 정치적 결정에 참여할 중요한 권한을 부여하며, 피지배자들에게는 지배자들을 선택하거나 통제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평화적으로 대치할 가능성을 보장해 준다”(「백주년」, 46항).

그러나 민주주의는 정부를 합법적으로 선출하거나 정해진 절차와 법 규범을 준수하는 것만으로 이해될 수 없다. “참된 민주주의는 단지 일련의 규범들을 형식적으로 준수한 결과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존엄, 인권존중, 정치생활의 목적이며 통치기준인 공동선에 대한 투신과 같이 민주주의 발전에 영감을 주는 가치들을 확신 있게 수용한 열매이다”(「간추린 사회교리」, 407항). 그러므로 공동선과 인간의 존엄성에 기초해 있지 않은 민주주의는 올바른 의미의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선을 훼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민주주의의 적이다. 이러한 것들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가운데 심각한 것은 정치적 부패와 정보의 독점이다. 정치적 부패는 한 사회의 윤리적 원칙과 사회정의 규범을 한꺼번에 짓밟는 것(「사회적 관심」, 44항)이고, 정보의 독점은 시민의 정치적 의사표현과 참여를 왜곡시킨다(「간추린 사회교리」, 414항). 부패와 정보독점에 대한 시민사회의 감시와 견제 없이는 참다운 민주주의는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시민사회는 무엇을 할 것인가

국가는 그 자체로 전체 사회를 대표하거나 대변하지 않는다. 국가가 인간의 사회적 본성에서 유래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국가가 행사하는 권력이 언제나 옳음을 뜻하지 않는다. 국가의 역할과 권력은 시민사회 앞에서 작아져야 하고 시장 앞에서는 커져야 한다. 그러나 교회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현 정권에서의 국가는 시장 앞에서는 작아지고 시민사회 앞에서는 공권력을 무분별하게 남용한다. 이런 현실 앞에서 국가가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하도록 하는 것은 시민사회의 역할이다.

시민사회는 지속적으로 국가를 견제하고 감시하여 그 권력이 민주적 통제 아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 이동화 타라쿠스 - 부산교구 신부. 성바오로본당 부주임 겸 울산대리구 선교사목 담당신부로 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2009년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2년 8월호, 이동화 타라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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