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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성경 속 생명 이야기6: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 생명 가치의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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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3-15 ㅣ No.1129

[성경 속 생명 이야기] (6)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생명 가치의 상실



'카인과 아벨', 두 형제에게서 삶의 두 갈래 길을 봅니다. 한 길은 이웃이 자신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며 시기하고 결국 그를 정신적, 물리적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다른 길은 자신을 해치는 이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거나 저항하지 못한 채 죽어가는 길입니다. 하지만 이 비극적인 형제 이야기를 통해 생명 가치의 상실은 죽이는 자와 죽임을 당하는 자 모두에게 해당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카인을 훈계하시며(창세 4,8 참조), 그가 아우를 해치려는 악의적 욕구를 따라갈 필요가 없음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카인의 결심은 확고했고, 문 앞에서 기다리던 죄는 카인을 생명 가치의 상실로 이끌었습니다. 아벨과 마찬가지로 카인을 굽어보시는 하느님께서는 그를 향해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하고 심문하십니다. 카인으로선 피할 수 없는 하느님의 이 심문은 현대인들에게도 내려집니다. 무엇 때문에 타인의 생명을 공격하는가? 어떤 공격은 미움과 시기와 질투 등 본성 자체에서 나오지만, 어떤 경우에는 바로잡을 수도 있었는데 무관심과 태만으로 생명에 대한 공격을 더 악화시키기도 합니다. 또한 이익 갈등이라는 상황 아래서 살인, 전쟁, 집단 학살, 민족 말살 등 세계를 폭력으로 얼룩지게 하는 공격이 있습니다(「생명의 복음」 10항 참조).

이와 다른 범주의 공격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초기 단계와 마지막 단계에 가하는 공격(「생명의 복음」 11항 참조)으로서 낙태와 피임 그리고 안락사 문제입니다. 낙태의 확산을 용이하게 하고자, 의술의 도움 없이 모태 안에서 태아를 죽일 수 있는 약품을 생산하는 데 엄청난 자금이 투자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낙태의 유혹을 받지 않으려면 피임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피임 사고방식'에 내재하는 부정적 가치, 곧 '바라지 않는 생명'에 대한 사고는 실제로 낙태의 유혹을 더 강화시키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생명의 복음」 13항 참조).

아울러 피임과 낙태를 통해 여성의 생명은 어떠합니까? 두 생명은 함께 파괴되는 것입니다. 피임에 관한 교회 가르침을 거부하는 곳에서 낙태 조장 문화가 위세를 떨치는 가운데, 심지어 국내 영화관과 TV에서 묵주반지를 낀 여성을 모델로 삼아 가톨릭 신자라 하더라도 자유로운 성관계를 꺼릴 필요가 없다는 이미지를 교묘하게 각인시키는 광고가 아무렇지 않게 전파를 탑니다.

더 일반적 차원에서 현대 문화 안에는 일종의 프로메테우스적인 태도가 존재합니다. 이 태도는 사람들이 스스로 삶과 죽음에 대한 결정을 내림으로써 그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도록 유도합니다. 우리는 비밀리에 행해지거나 공개적으로, 심지어는 합법적으로 행해지는 안락사의 확산 현상 속에서 이 모든 일에 대한 비극적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안락사는 환자의 고통을 바라보며 느끼는 그릇된 동정심과 아울러 때로는 효과도 없고 사회적으로도 큰 부담을 주는 비용을 피하자는 실용주의적 동기 때문에 정당화됩니다(「생명의 복음」 15항 참조).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죽음을 앞당겨 주는 것 같아 보이지만, 진정 죽음을 향한 고통을 통해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하느님의 초대를 간과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카인을 향해 "네 아우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창세 4,10)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살해당한 아벨에게 관심을 가지시는 것은 한편으론 카인의 운명이 아벨의 울부짖음과 관련돼 있기 때문입니다. 곧 카인이 아우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더 이상 자신을 방해할 자가 없는 안전지대가 아니라 자기 삶의 터전도 상실하는 것입니다. 형제가 함께 나누어야 할 생명을 독차지하기 위해 아우를 죽이지만 아우가 죽는 순간 형의 생명 또한 텅 빈 껍데기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삶의 신비이며 하느님께서 창조한 세상에서는 어떤 생명도 버려져서는 안 된다는 천명이기도 합니다.

[평화신문, 2014년 3월 16일, 
이명기 수녀(가톨릭대 ELP학부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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