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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사목] 평화통일의 도구로 써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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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4-29 ㅣ No.563

[통일 대비, 어떻게?] 평화통일의 도구로 써주소서

 

 

1990년대 말 함경도에 출장을 간 적이 있습니다. 평양과는 비교할 수 없이 낙후된 지역입니다. 신포에서 함흥까지 비포장도로를 장시간 달리면서 흙먼지 속 차창 밖으로 함경도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주마간산이었지만 백문불여일견이었습니다.

 

당시 북한은 ‘고난의 행군’이라고 불렀던 어려운 시기의 끝자락이었습니다. 도로변 민가들은 벗겨진 페인트와 깨진 유리창 등 망가진 곳을 손보지 못한 채 그대로 낡아 허물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볕이 드는 바깥이 집 안보다 따뜻할 것 같았습니다.

 

그 추운 날 빨래나 할 수 있을까? 세수나 목욕은 제대로 하고 있을까? 별별 안타까운 생각 속에 창밖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금강산 남북적십자회담

 

지금부터 10년 전인 2001년 1월 29일부터 2박 3일 동안 금강산에서 제3차 남북적십자회담이 열렸습니다. 당시 필자는 남측 회담대표로 참가하였습니다.

 

얼마나 추운 날씨였는지 꽤 고생하였습니다. 회담장에는 전기가 수시로 끊어져 촛불을 켜고 회담을 하기도 했고 서울과 통신이 끊어지면 복구될 때까지 회담을 중단하기도 하였습니다. 외투를 입고 잠을 자서 허리가 욱신거리는데 수도는 얼어 아침 세수도 못할 판이었습니다.

 

북측 관계자에게 대책을 세우라 요구했더니 인근 온천장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온천장의 시설은 낡았지만 북측의 배려로 우리 대표단은 따뜻한 온천물로 양치질까지 하는 호강을 누렸습니다. 그러자 문득 신포와 함흥 사이 도로변 사람들이 생각났습니다. 연민인지 분노인지 모를 뜨거움이 목구멍에 솟아올랐습니다.

 

 

탈북자 2만 명 시대

 

그때나 지금이나 북한의 경제나 북한주민의 살림살이는 크게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최근 북한의 전력사정이 다소 호전되고 외부 도움 없이 ‘주체철’이니 ‘주체섬유’니 ‘주체비료’를 생산하는 전망이 열렸다고 선전하고 있기는 하지만, 남한으로부터 지원이 중단되고 재작년의 화폐교환도 실패하면서 주민들의 살림은 더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고난의 행군은 종료된 것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언제 끝날지 전망하기도 어렵습니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뒤 살기 어려운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이 2만 명이 넘습니다.

 

북한이 살기 어렵다고 다 탈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탈북했다고 모두 남한으로 귀순하는 것이 아니므로, 중국에서 숨어 지내는 난민과 북한 내에서 사실상 난민처럼 살아가는 주민들의 규모는 아직도 많을 것입니다. 최근 국경 통제가 심해 탈북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소식에도 탈북행렬이 언제 끝날 수 있을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탈북자들이 입국하면 하나원이라는 곳에 입소하게 됩니다. 하나원은 탈북자들이 거주지를 정하여 주택을 배정받을 때까지 석 달간 사회적응교육을 받는 곳입니다.

 

필자는 하나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이들과 함께 생활한 적이 있습니다. 교육생 80%가 함경도 사람이기 때문에 10여 년 전에 신포와 함흥 간 도로변에서 스쳐 지나갔던 사람 중에 하나원에서 또 다시 스치는 인연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다달이 수백 명이 과정을 수료하고 나갈 때마다 이들의 고생이 끝이 없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남한사회에 적응하기도 어려운 형편에 각자 자립을 위해 취업 경쟁에 나서는 것도 그렇지만 분단의 벽을 뚫고 탈북하는 과정에서 생긴 상처가 더 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외로움과 가슴의 멍에

 

탈북자들이 하나원을 나온 첫날 느끼는 것은 ‘이제 남한에 와서 정착금도 받고 따뜻한 물이 나오는 아파트도 생겼으니 바라던 것이 다 이루어졌다.’는 충족감이 아닙니다. 무한 경쟁사회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더 무겁게 짓누르는 생각은 외로움입니다. 두고 온 고향과 가족 생각에 몸서리치게 됩니다.

 

‘이제 다시 고향에 갈 수 있을까? 두고 온 가족과 친구들과는 언제 만날 수 있을까?’ 이러한 한이 풀리려면 통일 외에는 길이 없다는 생각에 그날 밤을 거의 뜬눈으로 지새우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 남한사회에서 경제적으로 기반을 잡는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고독감과 가슴의 멍에는 지워지지 않습니다.

 

 

통일의 여정에서 탈북자들의 역할

 

우리 사회에는 우리가 분단된 땅에서 살고 있다거나 통일이 시대적 과제라는 것을 잊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분단된 채로도 우리는 얼마든지 잘살 수 있는데 왜 굳이 못사는 북한과 통일해서 경제성장의 열매를 나눌 필요가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더구나 북한이 인류 평화를 무시하고 핵무기를 개발했고 인권상황도 엉망인 세습독재 체제인데 아예 상종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탈북자들은 왜 우리가 통일을 해야 하는지를 몸으로 알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이 우리 사회에 적응하면서 느끼는 답답함 가운데 하나는 우리 사회의 통일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여기에 탈북자들의 역할이 생깁니다. 탈북자들에게 부과된 민족사적 과제가 제기됩니다. 하나원장 재직 중에 인천에서 열린 한 탈북자 행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행사에는 그 지역에 거주하는 탈북자들뿐 아니라 탈북자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에 거주하는 남한 출신 통반장 아주머니들도 같이 오셨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질문답변을 포함한 환담 시간이 있었습니다.

 

어떤 통장 아주머니가 탈북자들이 모여사는 아파트에서 공중도덕이 부족하여 이웃들이 피해를 본다고 말문을 꺼내자, 그 자리에 있던 탈북자들도 질세라 남한 출신 이웃들이 자신들을 무시한다며 불만을 쏟아냈습니다.

 

갑자기 탈북자들과 남한 출신 사이에 서로 성토장이 되어버렸습니다. 낭패였습니다. 순간적으로 저는 이 사태를 수습하려면 통장 아주머니 편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탈북자들에게 하나원 수료날 남한사회에서 보낸 첫날 밤을 상기하자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탈북 과정에서 생긴 상처와 한은 통일이 되어야 풀립니다. 그런데 남한에는 통일에 관심이 없거나 아예 반대하는 사람마저 있습니다. 여러분이 남한 이웃과 갈등이 생겨 부딪칠 때, 그 사람 멱살을 잡고 흔들면 잠시 분이 풀리겠지만 그 사람이 다른 데 가서 뭐라 하겠습니까?

 

‘탈북자랑 같이 살아보니 통일되면 엄청 힘들겠어, 큰일 나겠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남한 이웃들이 ‘우리 이웃에 함경도 부부가 들었는데 참 좋은 사람들이야.’ 또는 ‘우리 직장에 평안도 총각이 새로 왔는데 참 성실해.’라고 하면서 ‘이거 통일해도 되겠는 걸, 우리 통일합시다!’라고 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조금 속이 상하더라도 남한 이웃을 여러분 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자기만 잘살아 보겠다고 탈북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한이 풀리려면 통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남한사회가 통일을 진정으로 원하도록 만들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날 하나원으로 돌아가면서 함경도 신포와 함흥 간 도로변에서 본 것만 같은 사람들이 차창 밖 도로에 많이 보였습니다.

 

 

분단 구조를 허무는 틈새를 만든 탈북자들

 

먼저 온 탈북자들이 남한사회에서 정착에 성공하고 이웃과 잘 지내면 다음에 오는 탈북자들이 환영받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조금 더 나아가 이들의 성공적인 사회 정착이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에 훌륭한 도구로 쓰일 수 있습니다.

 

먼저 통일의 도구로 쓰여야 합니다. 이들의 탈북 결과가 개개인의 안락하고 안전한 생활을 확보하는 데 멈추어서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이들의 사회 정착을 돕는 결과가 탈북자 개인의 복지향상에만 머물러서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통일로 향한 우리 사회 전체의 의지와 역량이 향상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탈북자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화해의 도구로 쓰여야 합니다. 탈북자를 통해 민족 내부의 갈등과 미움이 증폭된다면 큰 불행입니다. 통일의 길도 더 멀어지거나 험난해질 것입니다.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다 살아본 이들을 통해 남북한 사회가 서로의 미움을 키우기보다 화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이들이 탈북과정에서 생긴 상처와 남한 정착 과정에서 만나는 어려움은 여전히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어쩌면 그들 개인의 몫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 전체가 이들에게 진 빚이라고 봅니다.

 

탈북자들은 분단의 장벽을 뚫고 탈북하면서 분단 구조를 허무는 틈새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남한에 와서는 사회 정착과정에서 자립을 통해 국민들에게 통일에의 의지를 새롭게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의 꿈은 개인적 소망과 민족사적 소망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자립에 성공하는 것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로 됩니다.

 

올해 겨울에도 함경도 신포와 함흥 간 도로변 민가에 사람이 살고 있을 겁니다.

 

* 고경빈 - 하나원 원장을 역임하였으며, 서울 사이버 대학교 대우 교수, 통일부 정책홍보본부장이다.

 

[경향잡지, 2011년 2월호, 고경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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