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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목] 교회와 아버지: 성경에 나타난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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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4-06 ㅣ No.515

[경향 돋보기 - 교회와 아버지] 성경에 나타난 아버지

 

 

성경은 아버지에 관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이 시대 아버지의 새로운 모델에 대해 예수님은 어떻게 가르치시는가? 이 글에서는 이러한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가르치는 아버지, 씨름하는 아버지

 

구약성경의 창세기는 아버지에 관한 논의의 기초가 되는 하느님의 개념을 우리에게 제시해 준다. 첫 번째 창조이야기(창세 1장)에서 하느님은 혼돈에서 질서를 만드시며 만물을 창조하신다. 우리는 때때로 이러한 창조활동을 아버지의 역할과 연관시키는데, 적극적으로 일하는 것, 질서를 확립하는 것, 양식과 일용품을 제공하는 것, 그리고 사업을 하거나 전문경력을 쌓는 것 등의 모습이다. 두 번째 창조이야기(창세 3장,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야기)에서는 잘못을 가려내고 벌하고 훈육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며, 집회서 30장 1-13절에서는 자식을 훈육하고 교육하는 아버지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또한 야곱이 밤새도록 한 남자와 씨름하는 장면(창세 32,25-30)에서 야곱은 남자가 자신을 축복해 줄 때까지 놓아주지 않았고, 그 남자는 “네가 하느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으니, 너의 이름은 이제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말하며 복을 내려준다. 그때 야곱은 자신이 씨름한 상대가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는 아버지에 대한 좋은 비유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가족과 다른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많은 사람들과 씨름하며 그 과정에서 하느님을 발견한다. 자녀들과 씨름하는 아버지들의 이야기는 현재도 흔히 볼 수 있는 역동적인 아버지들의 모습이다.

 

 

축복하는 아버지

 

그러나 구약성경에는 무엇보다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아버지의 역할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축복해 주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창조의 각 단계마다 창조하신 것을 축복해 주시며(창세 1,4.10.12.18.21.25.27-28), 첫 번째 창조이야기는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창세 1,31)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이렇게 축복하는 모습은 구약성경 여러 곳에서 드러나는 아버지들의 공통된 모습이다. 이사악은 아들 야곱에게 기름진 땅과 풍성한 곡식과 뭇 민족의 지배자가 되리라고 축복해 주었고(창세 27,28-29),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들에게 자손의 번창을 축복해 주며(창세 48,15-16), 또한 야곱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될 열두 명의 아들들에게 각각 알맞은(창세 49,1-27) 축복을 준다.

 

가장 잘 알려진 축복 가운데 하나는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축복의 방식을 알려주는 구절이다. “너희는 이렇게 말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축복하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민수 6,22-26).

 

그리고 예언자가 왕에게 기름을 붓는 것(1사무 10,1; 16,13)도 축복 방식의 하나로 아버지의 축복이 자녀들에게 힘을 주는 것처럼 축복받는 사람에게 힘을 부여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듯이 유독 ‘축복해 주는 아버지’ 의 모습에 관심이 가는 것은 아버지에 대한 나의 경험 때문이다. 남성의 영성에 대해 공부하고 있을 무렵 대체적으로 남성들은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아버지에게 상처받은 경험이 있거나 아버지에게서 거리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 역시 아버지에게 친밀감을 느끼지 못하고 거리감을 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몇 년 동안 아버지와 더 친밀한 관계를 만들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나는 아버지와 친해지려고 일부러 대화할 기회를 자주 만들었다. 70대이셨던 아버지는 놀랍게도 기꺼이 대화에 응하셨고 나와 가까워지기를 바라셨다. 마침내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한 달 전 함께 식사하면서 당신이 나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셨는지를 말로 표현하시며 축복해 주셨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축복의 시간이었다. 진정 아버지의 축복은 자녀에게 굉장히 큰 힘과 기쁨을 준다.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한 아버지

 

성경에서 실제 아버지의 모습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창세기 22장의 아브라함이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고 하는 장면에서다. 당시 문화에서는 집안의 가장이나 왕은 커다란 명분을 위해서라면 아들을 희생시키곤 했다(1열왕 16,34). 아브라함은 새로운 공동체의 기초를 닦는 중이었고, 아들 이사악을 희생제물로 바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그대로 이행하여 가장 가까운 혈육이자 장차 대를 이을 아들을 기꺼이 바치려고 했다. 그러나 하느님은 아들을 죽이려는 아브라함을 멈추게 하고 그의 헌신적인 태도를 치하하신다(창세 22,12). 아브라함은 자신의 믿음을 위해 기꺼이 아들을 바치는 옛날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모델을 보여준다.

 

이제 이사악과 유사하면서도 대비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살펴보자.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은 종종 이사악과 유사하다고 견주어지나 거기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이사악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나 예수님은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던 중 겟세마니에서 스스로 자유롭게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하셨다. 이사악의 경우는 아버지의 결정이었으나 예수님의 경우는 자발적인 참여와 자유로운 선택이었다. 마찬가지로 마리아도 견뎌내야 할 고통이 있음에도 하느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예.” 하고 응답하였다.

 

이와 같이 구원의 역사 안에 드러나는 자녀와 아내의 모습은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뜻대로 움직여지는 대상이 아니라 자유롭게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주체적인 존재이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아버지 모습의 새로운 전망을 본다. 자녀나 아내는 더 이상 대상이 아니라 주체이며 구원의 역사 속에서 제 몫의 역할을 하는 고유한 존재라는 것이다. 여기서 가부장적 아버지의 모습에서 벗어나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아버지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어떻게 축복할까

 

신약성경 속에서 예수님이 보여주는 하느님과의 관계는 거리감이 있는 관계가 아니라 친밀하고 무조건 사랑하시는 ‘아빠(Abba)’이다. 예수님은 요르단 강에서 세례 받을 때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마르 1,11)이라는 축복의 말을 들었다. 이 ‘아빠’이신 하느님의 축복은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자신의 존재 자체를 소중하다고 인정해 주어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다.

 

신약성경에 나타난 축복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축복과 그 내용에 차이가 있다. 구약성경에서 축복은 주로 풍요로운 재물과 가문의 번성과 같은 외적인 내용인 반면에, 신약성경에서의 축복은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에 대한 인정과 사랑받고 있다는 충만감을 주는 내적인 내용이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은 과연 자녀들에게 어떤 축복을 주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예수님은 자신이 받은 축복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축복해 주셨다. 때로는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라고 말로 축복해 주셨고, 어떤 때는 행동으로 축복해 주기도 했다. 어린이들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마태 19, 13-15), 병자의 손에 당신 손을 대며(마태 8,15; 루카 5,13),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며(마태 9,10) 행동으로 축복해 주셨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아버지의 새로운 모델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하느님의 모습은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 15,11-32)에 나오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바로 잘못을 나무라고 벌하시며 용서에 인색한 아버지가 아니라 뉘우치고 돌아온 아들을 무조건 받아들이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자상한 아버지다.

 

또한 예수님 자신은 가족과 혈연관계의 한계를 뛰어넘어 축복을 주는 아버지다.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돌아보시며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 3,31-35) 하고 이르셨고, 이방인(마르 8,22-26), 죄인들(마르 2,13-17), 가난한 사람들(루카 4,18-19)까지 포괄하여 모든 사람과 관계를 맺고 축복해 주셨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요한복음 13-17장에서 새로운 아버지의 모델을 보여주셨다. 새로운 공동체의 아버지로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고(요한 13,1-13) 그들을 친구라고 부르신다(요한 15,15). 사랑을 가장 큰 계명이라고 가르치는 사랑의 아버지다(요한 15,9-17). 구약성경의 하느님의 개념에서 비롯한 거리감이 느껴지고 조정하는 아버지에서 친밀하고 사랑하며 우리와 하나가 되는 아버지로 변화되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주십시오(요한 17,21).”라고 기도한다. 사실상 예수님은 친밀감과 일치감을 이루는 것이 바로 진정한 아버지의 모습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처럼 축복하고 친근한 새로운 아버지의 모습으로 살 수 있을까? 아래에 자녀와의 관계에서 도전과 변화를 체험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를 통해 아버지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기주장이 강해지더니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잘못을 했을 때 핑계를 대거나 자기에게 유리하게 변명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아빠 입장에서 문제를 지적해 주다 보니 아이들은 아빠가 잔소리한다고 짜증내고 반발하며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빠를 무시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빠져 화를 내며 더 큰 소리를 내거나 일방적으로 명령하게 되었다. 그런 상황이 되풀이될수록 아이들과 의사소통이 단절되어 갔다. 고민을 하다가 아이들에게 눈높이를 맞추고 감정적이 아닌 객관적으로 아이들과 대화해야겠다는 생각에 가족회의를 제안하였다.

 

처음에는 왜 가족회의를 하자고 했을까 후회를 많이 했다. 회의를 할수록 나의 권위주의적인 모습이 드러나 나 자신부터 변화할 것이 강요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 년 정도 지나자 가족회의를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였다.

 

순간적인 감정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회의 때 차분하게 객관적으로 문제를 이야기하니 아이들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들도 자신들이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져서인지 아빠에 대해 많이 이해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문제를 지적하기보다는 “넌 잘 할 수 있어. 잘 하고 있어. 앞으로 잘 할 수 있을 거야.”라는 칭찬을 많이 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아이들이 자신감을 가지게 되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모습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런 경험을 어느 후배와 나누게 되었다. 후배는 성실하고 부지런하지만 아이들에게 애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아들이 잘못했을 때 강압적으로 잘못을 고쳐주려고만 했다. 그러나 나의 경험을 듣고 나서 다소 어색하기는 했지만 하루에 한 번씩 아이를 칭찬하고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얼마 뒤 아빠와 같이 목욕탕에 가는 것을 싫어했던 아들이 같이 목욕탕에 가서 정성스럽게 등을 밀어주었다며 기뻐했다. 아빠의 입장에서 아이에게 칭찬이라는 축복을 주었더니 서로 소통되고, 존중받고 사랑받는다는 충만한 기쁨으로 되돌아온다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위의 사례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아버지의 새로운 모델을 어떻게 실천하며 살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육친의 아버지이든, 영적인 아버지(사제 또는 대부)이든, 아니면 단순히 젊은이의 조언자이든, 우리 모두는 오늘날 새로운 아버지의 역할에 참여할 수 있다.

 

* 하유설 요셉 - 메리놀외방전교회 신부. 한국파트너십연구소 소장. 미국에서 남성학을 공부하였으며, 저서로 “남성학과 남성 운동”(공저), “남자 바로보기” 등이 있다.

 

[경향잡지, 2010년 3월호, 하유설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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