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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문화 비평: 욕설이 난무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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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6-22 ㅣ No.579

[문화 비평] 욕설이 난무하는 사회

 

 

한국사회는 점점 더 욕설로 뒤덮여가 는 것처럼 보인다. 사방에 욕설이 난무한다.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은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참 박연차 씨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을 때, “어쩌면 노 씨와 그의 사람들이 지금 당하고 있는 정도는 노 씨 등이 너무 까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조선일보 2009년 3월 30일자)라고 썼다.

 

노무현은 국민의 선택을 받아 정당하게 대통령직에 선출되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김 씨’는 그를 ‘노 씨’라는 경멸적인 호칭으로 부르며, ‘까불었다’고 비아냥댄다. 그는 노무현이 곤욕을 치르고 있는 진정한 원인은 비리 여부가 아니라 ‘까불었기’ 때문이라고 가르쳐주었다.

 

‘까분다’라는 말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사용하는 어휘이다.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자신보다 열등한 자라고 가정하고 있다. ‘너 까불래?’라는 말은 ‘네 행위의 결과, 나에게 혼나볼래?’라는 뜻이다. ‘까분다’라는 말 안에는 내가 권력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관념이 전제되어 있다. 그것은 임박한 징벌을 예고하는 권력자의 언어이다.

 

 

욕설, 비소통의 언어

 

‘욕설’에 관한 글을 김대중 주필의 칼럼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이 칼럼이 한국사회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욕설의 현상은 이처럼 자기 진영에 속해있지 않은 자를 경멸하고 무시하는 행위에서 비롯된다. 대화는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이익만이 단 하나의 진실이다. 그것을 부정하면,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진다.

 

‘욕설’은 매우 특이한 언어이다. 그것은 말이라는 점에서 분명히 의사표현의 수단이다. 그러나 욕설은 소통을 위해 발설되지 않는다. 욕설은 자신의 견해를 강압적인 방식으로 상대방에게 강요하거나, 또는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 대한 좌절을 매우 강력한 정서적 반응으로 표출하는 언어이다. 그것은 강력하게 강화된 자아의 표지이다.

 

욕설 안에서 자아는 부풀려지고 팽창한다. 좌절하여 내뱉는 욕설 안에서마저, 자아는 마이너스 방향일지언정 강력하게 강화되어 있다. 욕설의 특징은 그 비성찰성에 있다. 성찰성은 시간적 사유를 요구한다. 그러나 욕설은 시간을 지워 뭉갠다. 욕설 안에서 모든 것은 절대적 현재일 뿐이다.

 

 

욕설의 사회적 기능

 

물론, 욕설은 긍정적인 점도 가지고 있다. ‘쌍소리’는 ‘상말’에서 온 것으로, 원래는 귀족계급의 언어에 비교되는 ‘평민(상민)의 말’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상말’은 피지배계층이 지배계층을 향해 쏟아내는 풍자와 비판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지배계층은 피지배계층의 모든 것을 지배하려고 하지만, 완전한 통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특정한 공간과 시간을 정해서, 민중적 혼란을 허용해 준다. ‘난장’을 허용해서 카오스가 일시적으로 복원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축제 마당인 난장에서 연희되었던 탈춤이 유난히 욕설로 뒤덮여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전역에서 확인되는 문화현상이다. 축제의 난리법석은 언어의 난리법석과 함께 간다. 카니발의 소란스러움은 상스럽고 천박한 언어의 분출과 짝을 이루고 있다.

 

욕설의 이러한 비판적, 풍자적 기능은 우리나라의 일상 안에서도 발견된다. 유난스럽게 욕으로 뒤덮여 있는 중학생들의 대화도 그 밑바탕에는 그들에게 억압을 강요하는 사회체제에 대한 저항의 몸짓이 분명히 존재한다(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의 욕설은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일상화되기 시작해 중학교 때 절정에 이르며, 고등학생이 되면 완화되는 특징을 보인다고 함).

 

 

국밥집의 욕쟁이 할머니

 

‘욕쟁이 할머니’라는 매우 한국적인 캐릭터 안에도 이런 기능이 살아남아 있다. 우리는 욕을 해대는 할머니들이 대체로 ‘국밥집’ 할머니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밥’은 푹푹 끓인 고깃국물에 밥을 말아놓은(곧, 형식화되지 않은), 가난한 평민들의 카오스적 먹을거리이다. ‘국밥’은 모든 것을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수준으로 환원시킨다.

 

우리는 또한 국밥 파는 사람이 할머니라는 사회의 최약자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녀는 사회의 최약자의 지위에서 어쨌든 그녀보다 나은 사회적 지위를 점하고 있는 손님들을 향해서 냅다 욕지거리를 해대는 것이다.

 

그녀는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삶의 신산함을 달래는 카오스적 공간에서, 비개인적인 어떤 욕설을 불특정 대상을 향해 쏟아내는 것이다. 그녀의 욕설은 따라서 욕설이 아니라, 일종의 제의적 카타르시스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만일 그녀가 국밥이 아니라 한정식 같은 고급화되고 형식화된 음식을 판다든지, 아니면 나이가 젊은 여성이라면, 그녀의 욕설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런 경우라면, 그것은 성질 고약한 어떤 개인의 문제로 바뀔 것이며, 손님들은 욕을 얻어먹으면서 느긋하게 웃지 않을 것이다. 그때의 욕설은 단순히 욕설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욕설은 대개 비정상적 현상이다

 

이러한 비판적 기능이 남아있다고 해도, 현재의 한국사회를 휩쓸고 있는 현상은 매우 비정상적인 것처럼 보인다. 욕설이 난무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그것은 상대를 배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회생활이 생성시키는 스트레스가 한 개인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높아져 있는 사회의 한 특징이다.

 

김상윤은 300명의 대학생을 상대로 욕설을 조사했는데, 그들이 사용하는 욕의 가짓수가 무려 12,752개에 달했다고 한다. 일반 언어 사전에 약 40만 개의 어휘가 등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이 숫자는 분명히 비정상적이다.

 

중학생들이 사용하는 어휘의 90% 정도가 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충격적인 보도도 있었다. 청소년들의 경우, 욕설의 사용은 감정의 폭발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또래집단에 속해있다는 소속감을 느끼기 위한 문화적 행위일 뿐이며, ‘쿨함’을 과시하기 위한 제스처일 뿐이므로(심지어는 자신이 사용하는 욕설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한다.), 크게 심각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러한 사실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사용하는 욕설의 강도가 너무 세고 지나치게 사납고 잔인하다.

 

문제는, 욕설을 사용하고 난 다음에 대부분의 청소년들(특히 여학생들)이 만족감보다는 불쾌감을 더 느낀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욕설이 일반화된 청소년의 언어생활이 그들의 스트레스를 줄여주기는커녕 더욱 높여줄 뿐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한다.

 

 

언어의 건강 회복이 중요하다

 

실제로 존재하는 어두움을 모르는 척하고, 천사적인 척하며 위선적인 고상한 언어를 사용하도록 강요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언어생활의 상당 부분을 욕설이 차지하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다.

 

언어는 존재를 규정한다. 언어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것을 형식화하는 가장 구체적인 매체이다. 그러므로 언어의 건강을 되찾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정말로 깊이 병들어 있는 것은 욕설을 사용하는 하층부의 언어가 아니라,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상층부의 고상한 (체하는) 언어이다.

 

사회의 최상층에 있는 자들이 쓰는 언어가 모조리 거짓일 때, 그 사회의 언어의 건강은 과연 되살아날 희망이 있는 것일까? 모든 정보가 언어의 권력을 장악한 자들의 손에서 조작되어 배포되는 사회, 언론이 진실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파워게임에만 몰두하는 사회, 겉으로 고상한 척하는 힘센 자들의 언어 뒤에 추악한 욕망이 번들거리는 사회에서? 말은 늪처럼 고여 썩고 있다.

 

* 김정란 - 시인, 상지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불어과), 프랑스 그르노블 3대학(문학박사)에서 공부하였으며, 백상출판 문화상, 소월시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경향잡지, 2011년 6월호, 김정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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