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2014-1123.....연중 제34주일-그리스도왕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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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11-22 ㅣ No.1642

연중 제34주일-가해 (그리스도왕 대축일)

에제키엘 34,11-12.15-27         1코린토 15,20-26.28        마태오 25,31-46

2014. 11. 23. 이태원

주제 : 나에게 올 끝에 대하여.....

오늘은 세상의 구원자이며 심판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우리가 왕으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신앙고백을 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하는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자신의 모습을 예수님과 관련시켜서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분에 대한 신앙고백을 고백하겠습니까? 내가 신앙고백을 말로 담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내가 고백하는 신앙의 내용은 내 삶의 모든 것을 좌우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말씀인 최후심판에 대한 내용을 여러분은 어떤 느낌으로 들었습니까? 내가 좋은 결실을 맺었든지, 아니면 부족한 결실을 맺었든지, 내가 이전에 흘려보낸 시간의 결과가 미래의 어느 순간의 삶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는 얘기를 들으면, 무조건 기쁘고 즐거운 생각으로만 현실에서 맘껏 살 수는 없을 일입니다. 지금 현재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사람과, 나는 잘못된 길을 가지 않고 있다고 말할 사람도 그 느낌은 같을 것입니다.

 

세상심판의 순간을 맞이하여,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그 가르침을 기록하고 있는 복음사가마태오의 논리(論理)는 아주 간단합니다. 행동을 기준으로 봅니다. ‘내가 이렇게가 아니라 다르게 살려고 했습니다.... 그러하니, 실제로는 내가 지금까지 드러내지 못한 일에 대해서 무섭게 대하지마시고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라고 하는 기도나 청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아직 그 순간을 맞이하지 않은, 2014년의 지금 현실에서 기도나 하느님께 드리는 청원이 의미가 없다는 소리로 알아듣지는 마십시오. 여러분 중에서 잘못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현실에서 옳은 일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청원기도만 해도 자기가 할 일은 다했다고 말하는 잘못된 사람일 것이고, 일부러 어두운 길을 찾거나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행동을 하면서도 하느님이 나를 멀리한다고 우기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삶에 대한 책임은 생각이 아니라 결과로 생기는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생각만으로는 세상에서 악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이고, 내가 만든 삶의 결과는 웬만한 자세와 태도만으로는 이미 만들어진 결정을 바꾼다는 것이 어렵고도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굶주린 사람, 목마른 사람, 나그네인 사람, 헐벗은 사람, 병든 사람과 감옥에 갇힌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인지 모를 사람은 없습니다. 본인이 원했거나(?) 세상을 진실하게 대하지 않아서 그런 상황에 빠진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런 상황에 빠져서도 남의 도움만 기다리면서 자기 자신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우리가 구별해서 대해야 할까요? 그렇게 하고 싶다는 유혹에 빠지기 쉬운 것이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저도 때로는 그런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대할 때, 제 생각을 먼저 드러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때로는 핑계로, 때로는 내가 당연히 가졌다는 권리행사로 그렇게 한 것이 훗날 내게 다가올 하느님의 심판기준이 된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겠습니까?

 

오늘은 연중34주일입니다. 전례달력 가해의 마지막 주간입니다. 다음 주부터 맞이할 새로운 해, 대림절에 앞서서 우리는 세상을 심판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복음에서 보았습니다. 오늘 미사에 오신 여러분 가운데에 예수님의 이러한 심판을 반길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순간을 두렵지 않게 맞이할 수 있도록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신앙인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라고 말할 것입니다. 세상심판의 기준을 제시하는 예수님을 향하여, 저는 세상을 그런 기준에 따라 심판하겠다는 당신을 도대체 인정할 수 없습니다.....’하고 말할 사람은 얼마나 있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께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능사(能事)가 아니라, 우리가 하는 권리주장이 하느님께 올바른 태도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을 물어야 합니다.

 

바빌론유배생활을 하던 히브리민족에게 희망을 주려던 에제키엘예언자의 선언이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겠다는 축복을 거부할 일은 아니고, 내 삶에 어떤 순간이 닥쳐오더라도 굳건한 자세로 대하겠다는 마음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나라를 차지하라는 소리를 들을 사람이 되려면 나는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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