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2014-1124.....연중 제34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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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11-23 ㅣ No.1643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 짝수 해

묵시록 14,1-3.4-5        루카 21,1-4

2014. 11. 24. 이태원

주제 : 하느님의 기준은 무엇일까?

세상에는 공동체마다 다른 기준들을 적용합니다. 세계미인대회의 기준은 얼굴이 잘 생기고, 머리와 다른 몸매의 비율이 중요한 요소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기준에 8등신이니, 7등신이니 하는 소리가 있고, 멋있는 배우들은 얼굴크기가 조막만한 해야 그 기준에 들 수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야 방송용 카메라로 촬영했을 때, 예쁘고 멋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서구유럽이나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미인의 기준을 적용한다지만,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미인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아십니까?

 

삶을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다는 것은 우리가 어떤 공동체에 속해 있으며, 어떤 공동체에서 정한 기준을 따라 살아야하느냐는 질문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 땅에 사는 사람 수는 5천만 명쯤 된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가톨릭신앙인은 5백만이 좀 더 넘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천주교회에서 가르치는 삶의 기준을 따르기로 했다는 사람이 그만큼은 넘는다는 얘기이지만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렇게 따라 사는지는 모릅니다. 우리 본당신자들만해도 30%가 채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이 성전의 헌금궤에 봉헌하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고 했습니다. 이런 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는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1)예수님은 왜 그 모습을 바라보셨을까? (2)혹시 돈이 필요하시다는 뜻이었을까? (3)왜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대하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그 모습을 봐라봤지? 왜 그러셨을까 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바라보신 기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과부가 바친 동전 두 개를 가장 많은 돈을 넣었다고 했으니 돈의 액수를 따진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면 돈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사람을 미워하는가? 예수님의 삶을 뒤따르는 사람들은 모두 가난해야 한다는 것인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우리의 마음은 어느 방향으로 흐르겠습니까?

 

같은 삶의 기준을 요한묵시록의 말씀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흥종교들마다 단골로 자기들 구미에 맞춰 해석하는 내용이 오늘 독서에 나오는 십사만 사천 명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십사만 사천 명은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에서 14천 명씩을 선발한 결과에 나오는 숫자이니, 신흥종교의 방식은 잘못된 것이 분명합니다만, 우리는 어떻게 알아들을 숫자이겠습니까? 숫자에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잠깐 생각하고 그 답을 할 수 있늘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실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이는 하느님의 뜻에 맞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오늘 과부의 헌금얘기와 십사만 사천 명에 대한 얘기에서 배울 수 있는 하느님의 기준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기준을 잘못 생각하면, 우리는 사람의 생각만 갖고서도 하느님의 뜻에 일치한다고 잘못 주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올바른 지혜를 간청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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