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2014-1128.....연중 제34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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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11-28 ㅣ No.1647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 짝수 해

묵시록 20,1-4.11-21,2        루카 21,29-33

2014. 11. 28. 이태원

주제 : 새로운 삶을 위하여

사람에게 희망을 얘기한다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이렇게 말할 때, 희망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으려면, 어떤 모습이나 설명이어야 하겠습니까? 저도 이렇게 질문하지만, 그 대답이 어떤 것이 가장 좋다는 정답을 따로 아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을 살필 수 있다면, 현실의 그런 어려움들과 불편함이 사라지고 지금 생각하는 어려움들과는 다른 모습을 맞이하려고 할 것입니다.

 

새로운 삶은 참 좋은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 말이 참 옳은 것 같아도, 실제로는 그렇게 옳다고 생각하는 삶을 찾거나 우리가 늘 같은 모습으로 살기는 힘든 일입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희망을 말하고 희망을 얘기하는 세상이란 실제로 그렇게 말하는 희망에서 멀리 떨어져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착한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그곳에서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얘기를 할 필요가 없는 것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에서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당연한 얘기를 들으면, 그런 소리가 전혀 신기할 이유가 없으므로, 우리는 그렇게 들을 수 있는 소리의 가치를 아주 낮은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누가 무어라고 말하겠습니까? 한 사람이 세상을 그렇게 대한다는 것은 그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인데, 다른 사람이 그의 삶을 대신 살 수 있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서 식물이 제 때에 맞는 열매를 맺는 것처럼, 사람도 한 생명의 주기인, 50년이나 60년 혹은 70년을 지내면서 그 삶을 통하여 어떤 결실을 맺을 것인지 미리 생각해 둘 필요는 있습니다. 생각대로 결실이 맺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생각이 먼저 가고, 그 생각에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좀 더 나을 것입니다.

 

세상의 삶은 선과 악의 싸움이고, 진실과 거짓의 다툼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평일주간에 듣는 독서의 마지막 말씀인 묵시록20장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한 해를 마치게 됩니다만,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내 생애에 어떤 결실을 맺을 것인지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묵시록을 통해서, 언젠가 하느님의 모습들 가까이 볼 수 있는 사람과, 하느님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사람이 따라야 할 기준도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에게서 우리 사람들을 멀리하게 했던, 모든 것들은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그게 그들에게 주어진 숙명입니다. 혹시라도 사람의 잘못된 생각이 거기에 함께 하게 된다면, 결국 손해를 입게 되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이라는 것도 깨달을 수 있다면 좋을 일입니다.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느님의 거룩한 도성을 맞아들일 올바른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잠시 우리들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랄 하느님의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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