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2014-1211.....대림 제2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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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12-11 ㅣ No.1655

대림 제2주간 목요일

이사야 41,13-20       마태오 11,11-15

2014. 12. 11. 이태원

주제 : 하느님이 생각하실 인간의 삶에 대한 안타까움

사람만이 갖는 특징의 하나는 다른 대상을 딱하게 여길 줄 아는 것입니다. 냉소적으로 표현하면, 딱하게 여기는 행동으로 무엇이 달라지겠느냐고 물을 수는 있어도, 사람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는 이런 표현은 우리가 세상에 대한 다양한 자세를 갖도록 해줍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연민의 마음을 갖거나 좋은 일을 이루려는 자세를 갖는 것은 삶에서 다양한 결과를 만듭니다. 이렇게 말할 때, 그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결과는 좋은 모습을 향하는 것을 의미하는 소리일 것입니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세상을 대한다면, 좋은 결과를 원한다고 말하거나 나쁜 결과를 피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시의 사람들이 세례자요한을 대하던 모습이나, 당신의 가르침을 듣고서도 하느님에 대한 올바른 마음자세를 갖지 못했던 사람들을 향하여 안타까움이 담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가 오늘 복음에서 들은 표현입니다. 세례자요한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소리를 여러분은 어떻게 이해하시겠습니까? 하느님나라는 인격체가 아닌데, 어떻게 폭행을 당할 수 있냐고 물으며, 다른 입장을 가질까요?

 

세상의 나라가 변화되어 하느님나라로 발전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드러내는 폭력이나 난폭함이 순화되지 않아 세상이 하느님나라로 변화되고 완성되는 시간을 늦추고 있다, 그게 바로 하느님나라가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의미로 알아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폭력을 이기지 못하는 하느님나라의 힘이 약한 것일까요? 사람의 삶을 이길 수 있다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하느님은 사람이 온전히 순화되기를 바라는 분이라고 생각한다면, 사람들의 의지를 거슬러 행동하는 분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람들이 생각하기 쉬운 것처럼, 폭력에 의지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하는 분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답답하고 더딘 모습으로 그 뜻을 이루려고 하는 분이니, 사람이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설득할 수 있겠으며, 사람의 뛰어난 지혜(?)를 하느님에게 알려드릴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현실에 지쳐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게 하려고, 하느님은 이사야예언자를 통하여 당신의 뜻을 밝히십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그 특성을 사람인 우리가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연약한(?) 하느님을 원망하고 뒤로 주저앉기가 딱 좋은 사람으로 지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행동으로 하느님나라가 세상에 실현되기를 청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나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좋은 결실을 가져오게 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기도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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