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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새로운 복자: 장 토마스 - 재산과 목숨보다 신앙을 따른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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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3-16 ㅣ No.1446

[새로운 복자] 장 토마스 - 재산과 목숨보다 신앙을 따른 삶



복자 장 토마스는 1815년 경기도 수원 느지지(현 화성시 양감면 요당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장 토마스의 고향인 느지지는 기해년 (1839년)과 병인년(1866년)에 일어난 두 차례의 박해를 통해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신앙의 요람지입니다. 이런 유서 깊은 곳에서 나고 자란 장 토마스는 103위 성인 가운데 한 분인 장주기 요셉 성인의 6촌 동생으로, 성인과 함께 입교해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들은 열심히 계명을 지키고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또 박해를 피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 산골 이곳저곳으로 여러 차례 이사를 하며 교회 일을 도왔습니다. 그러다가 장주기 요셉은 충청도 배론에, 장 토마스는 진천 배티에 각각 정착하였습니다. 당시 배티에는 장 토마스의 인척으로 추정되는 장 시몬 회장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장 토마스는 계명을 따라 살면서 아들에게 열심히 교리를 가르쳤으며, 본심이 순진하고 선량했기에 친척들과 많은 친구가 그를 ‘착한 사람’이라 일컬었습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시작된 후, 신부와 많은 신자가 체포되었다는 소문을 들은 장 토마스는 오로지 주님의 뜻에만 의지하기로 결심하여 다른 곳으로 피신하지 않고 가족들과 함께 집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포졸들이 들이닥쳐 장 토마스와 가족들은 모두 체포되어 진천 관아로 압송되었습니다. 장 토마스는 관장 앞에서 문초와 형벌을 받게 되었는데, 이때 관장이 “네가 천주교를 배반하면 죽이지도 않고 세간 (살림살이 할 만한 것)도 주어 살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장 토마스는 “세간과 목숨은 버릴지언정 천주교를 배반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주저 없이 답하였습니다. 이후 장 토마스는 청주로 이송되었고 그곳에서도 심문 중 배교할 것을 강요당하였으나, “만 번 죽어도 천주교를 배반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분명히 대답하였습니다.

마침내 영장은 장 토마스에게 참수형을 선고하였고, 포졸들은 그를 군대 지휘소가 있는 장대(將臺, 현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 2가)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사형이 집행되려던 바로 그때, 장 토마스는 자신의 대자가 죽음 앞에서 배교하려는 것을 보고 “주님을 위하여 천주교를 믿고 받들다가, 이런 기회를 버리고 목숨을 건진다면 장차 하느님의 벌을 어찌 면할 수 있겠느냐?”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참수형을 받아 순교의 영광을 얻었으니, 당시 그의 나이 52세였습니다.

자신의 재산과 목숨을 버릴지언정 신앙을 포기할 수 없다고 외친 장 토마스를 기억하며, 현재를 사는 우리 역시 신앙이 내 삶의 중심이 되도록 다짐하는 사순 시기가 되기를 기도해 봅니다.

[2015년 3월 15일 사순 제4주일 수원주보 4면, 최인각 바오로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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