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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성미술 이야기: 땅 밑으로 내려가신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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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7-04 ㅣ No.35

[성미술 이야기] 땅 밑으로 내려가신 그리스도

 

 

- ‘지옥문을 깨트리신 그리스도’, 두초 디 부온인세냐, 1308~1311년, 101.4x52.9cm, 시에나 두오모 박물관.

 

 

어둡고 캄캄한데서 이끌어내셨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는 죽음을 이기기 위해서 거대한 피라미드를 건축했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사막의 태양 아래 온전하게 남아 있는 피라미드를 보면 『인간은 시간을 두려워하고, 시간은 피라미드를 두려워한다』는 옛 속담이 실감난다. 그러나 피라미드는 정말 파라오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했을까? 피라미드의 말뜻이 「시체의 산」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어딘지 모르게 역설적인 느낌이 든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도 죽음과 맞섰던 영웅들이 여럿 등장한다. 프리기아의 노랫꾼 오르페우스도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독사에게 발꿈치를 물려 죽은 신부 에우리디케를 데려오겠다고 지하 세계를 방문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깜빡 약속을 잊고 뒤돌아 보는 바람에 영영 헤어진 이야기는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오르페오」 덕분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 또 헬라가 낳은 불세출의 영웅 헤라클레스도 명부로 내려가서 머리 셋 달린 번견 케르베로스를 사로잡아 온 적이 있었고, 트로이 전쟁의 일등공신 오디세우스도 이타카로 돌아오는 귀향 길에 죽음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그러나 이들 영웅들은 죽음의 영토에 잠시 들렀다 갔을 뿐, 죽음과 맞싸워 이겼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의 지옥 방문은 전혀 성격이 다르다. 그리스도가 지옥을 찾으신 것은 그곳에 창세기부터 줄곧 유배되어 있던 아담과 하와를 데려오시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또 다윗을 비롯한 열왕들과 수많은 예언자들도 천국에 오르지 못하고 그곳에 붙들려 있던 참이었다. 그리스도가 지옥문을 깨트리고 이들을 구해내신 뒤에 직접 손을 붙들고 대천사 미카엘에게 인도한다는 이야기는 다소 비유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성서 곳곳에 기록되어 있다.

 

가령 마태오 복음서는 『요나가 큰 바다 괴물의 뱃속에서 삼 주야를 지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도 땅 속(in corde terrae-대지의 창자)에서 삼 주야를 보낼 것』(12, 40)이며, 그날 『무덤이 열리면서 잠들었던 많은 성현과 옛 성인들이 다시 살아났다』(27, 52)고 증언한다.

 

또 사도 바오로는 에페소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성서에도 「그가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서 사로잡은 자들을 데리고 가셨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셨다」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올라가셨다는 말은 땅 아래의 세계까지 내려가셨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에페소 4, 8~9)라고 다소 느슨한 논리를 끌어대면서 부활 전 지옥방문을 기정사실로 못박는다.

 

한편, 그리스도가 땅 아래 세계에 내려가신 목적에 대해서는 시편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들이 그 고통 속에서 울부짖자 / 야훼께서 사경에서 건져주셨다. / 사슬을 끊어주시고 / 그 어둡고 캄캄한데서 이끌어내셨다. / 그 사랑, 야훼께 감사하여라. / 인생들에게 베푸신 그 기적들 모두 찬양하여라. / 쇠빗장을 부러뜨리시고 / 놋대문을 부수셨다』(시편 107, 13~16).

 

그런데 성서의 기록 말고도 그리스도가 지옥문을 깨트리실 때 문 안에 갇혀 있다가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이 또 있었다. 카리누스와 레우키우스라는 이름을 가진 형제인데, 이들은 이전에 성전에서 아기 예수를 팔에 안았던 적이 있는 시몬의 두 아들이다. 이 두 사람은 지옥문이 열리고 다시 살아난 뒤에 아리마태아에 가서 밤낮으로 기도에 주력하면서 여생을 보내고 있었는데, 훗날 니고데모가 이들을 찾아가서 그때 벌어진 일을 청해 듣고 기록으로 남겨두어서 지금까지 전해진다. 카리누스와 레우키우스가 쪼글쪼글한 입술로 털어놓은 이야기는 이랬다.

 

『우리는 선조들과 함께 죽음의 깊은 어둠 속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때 햇빛이 흐르듯이 임금님의 영광에 어울릴만한 황금빛 광채가 우리를 비추었습니다. 그러자 인류의 아버지 아담을 비롯해서 수많은 선조와 예언자들이 목소리를 모아서 외쳤습니다. 「이 빛은 우리에게 오기로 약속된 영원한 빛의 시작이요, 그 크신 기운은 끝이 없다」고 말이지요…. 바야흐로 지옥은 불안으로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지옥의 대왕은 사악한 수하들에게 소리쳤습니다. 「철 대문을 닫아라. 쇠빗장을 걸어라. 목숨을 걸고 끝까지 지켜라」 그러나 갑자기 벽력같은 음성이 울리더니, 어느새 영광의 주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그곳에 서 계셨습니다. 영원한 어둠을 훤하게 밝히시면서 말이지요. 주님은 우리를 굴레에서 풀어내시고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선함을 무기 삼아 우리들을 그릇됨과 죄악으로 말미암은 사망과 어둠의 깊은 그림자로부터 이끌어내셨습니다.…주님은 마침내 지옥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주님이 사탄에게 손을 대시자, 죽음은 속절없이 그의 발아래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담을 밝은 빛 무리로 이끄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리 나오십시오, 성인들이여. 그대들은 나의 거울이시니, 나를 닮았던 분들입니다」』

 

그리스도가 지옥문을 깨트리는 장면은 미술에서 무척 흔하게 다루어진 소재였다. 12~13세기 중세 고딕 성당 색유리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화가들은 부활이 사망을 이기는 감동적인 순간을 지칠 줄 모르고 재현하고 있다. 이탈리아 화가 두초가 그린 「지옥문을 깨트리신 그리스도」에서 그리스도는 순교의 십자가 표식이 달린 승리의 깃발을 들고 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무릎꿇은 아담을 이끈다. 아담은 눈이 부신지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까마득한 창세기부터 이곳에 붙잡혀 있었다니까 어둠의 더께가 눈까풀을 무겁게 눌러서 그랬을 것이다. 지옥의 쇠 문짝이 떨어져나가고 영원할 것 같은 어둠에 빛이 스며들자, 사탄은 제풀에 거꾸러져서 버둥댄다. 두초의 붓은 그날의 현장을 마치 직접 목격한 것처럼 생생하게 증언한다.

 

죽음을 이기신 부활의 기적을 이보다 더 통쾌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가톨릭신문, 2003년 8월 24일, 노성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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