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성미술ㅣ교회건축

성미술 이야기: 아기 예수님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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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7-04 ㅣ No.43

[성미술 이야기] 아기 예수님의 탄생

 

 

‘예수 탄생’, 프라 안젤리코. 1441년, 177×148㎝, 산마르코 수도원 박물관, 피렌체.


- ‘예수 탄생’, 베리 공작의 「호화로운 기도서」에 실린 세밀화. 1409년, 40×30㎝, 프랑스 국립도서관, 파리.

 

 

비르기타의 기도 출산 유형에서는 아기예수가 항상 빛나는 알몸으로 등장한다. 그림 좌우 바깥쪽에는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와 순교자 베드로가 보인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서는 평화”

 

『하늘 높은 데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이천년 전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가 태어났을 때 천사들이 나타나서 불렀다는 노래다. 노래 가사도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천사들이 입을 맞추어 불렀다니 얼마나 사랑스럽고 달콤했을까? 이런 노래를 우리가 마음껏 듣고 또 따라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여간 행복하지 않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그린 그림들을 보면 소와 나귀가 꼭 등장한다. 외양간 구유에서 태어나셨다고 해서 화가들이 제멋대로 상상을 한 것일까? 루가 복음서를 보면 아니나 다를까 구유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머물러 있는 동안 마리아가 달이 차서 드디어 첫 아들을 낳았다. 여관에는 방이 없었기 때문에 아기는 포대기에 싸서 말구유에 눕혔다』

 

여기서 말구유라고 옮긴 프레세피움(praesaepi um)은 꼭 말이 아니라 소나 염소도 사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개념으로 흔히 축사에서 볼 수 있는 여물통이다.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힌 것은 아무래도 구릿한 냄새에다 축축한 습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소와 나귀는 예수 탄생을 기록한 마태오와 루가의 기록을 아무리 훑어보아도 없다. 이 가축들은 애당초 예언자 이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못된 행실을 보고 따끔하게 훈계를 하면서 비유로 가지고 온 동물들인데, 화가들이 서기 6세기쯤에 슬그머니 가지고 온 것이다.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만들어준 구유를 아는데, 이스라엘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내 백성은 철없이 구는구나』(이사야 1,2~3).

 

어머니 마리아와 아버지 요셉도 예수 탄생 장면에 처음부터 고정배역은 아니었다. 동방박사가 경배하러 찾아왔을 때 선물을 접수하는 역할로 잠시 얼굴을 비치다가,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신을 잉태한 자」(theotokos), 곧 성모로서의 명칭과 지위가 공식적으로 확정되면서 구유 옆자리를 확실하게 차지한다.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에는 구유가 안 보인다. 한 겨울 낮선 땅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는 차가운 맨땅에 알몸을 눕혔다. 구유와 포대기 대신 황금빛 광채가 어린 몸을 에워싸고 있는 것도 신기하다.

 

한편, 마리아는 아기를 출산하느라 몹시 기진했을 텐데, 웬일인지 반듯하게 몸을 세우고 두 손을 모으고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기도 출산」의 유형이다. 마리아가 여느 여인네들처럼 누운 자세로 아기를 낳은 것이 아니라, 무릎을 꿇고 단정하게 앉아서 기도를 하다가 불쑥 출산을 했다는 것이다. 15세기부터 유럽에 급속하게 퍼지기 시작한 새로운 출산 유형은 원래 어떤 과부가 보았던 신비로운 환시에서 비롯한다. 1391년 바티칸으로부터 성녀로 선포된 스웨덴의 비르기타(Birgitta, 1302~1373년)는 젊어서 보았던 환시의 장면을 나중에 수녀원에 들어가서 다시 떠올린다. 고해신부에게 구술해서 기록으로 남긴 계시(Revelationes)에 그날 밤 베들레헴에서 있었던 일이 잡힐 듯이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베들레헴의 구유가 있는 곳으로 가까이 가자 성처녀가 보였다. 성처녀는 아기를 가졌지만,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습이었다.…몸이 잔뜩 불어서 두툼한 자태를 보니 출산이 가까운 것 같았다. 인자해 보이는 노인 한 분이 성처녀를 지키고 있었는데, 그 곁에 소와 나귀도 보였다.…성처녀는 웃옷과 머리두건을 벗어두고 요람을 준비했다. 그리고 나서 무릎을 꿇은 자세로 깊은 신심에 사로잡혀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등을 구유 쪽으로 돌리고 얼굴은 동쪽 하늘을 향해서 올려다보는 자세였다. 말없는 황홀감에 사로잡혀서 달콤한 신성을 받아 마시는 것처럼 두 팔을 올리고 눈빛은 하늘을 향한 채 한참이 지났을까, 성처녀가 기도를 하고 있는데 성처녀의 뱃속이 갑자기 꿈틀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아기가 밖에 나와 있었다. 아기로부터 태양조차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형언할 수 없이 눈부신 빛과 광휘가 쏟아져 나왔다.…나는 거룩한 아기가 벌거숭이 몸으로 환한 빛을 뿌리면서 땅바닥에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아기의 몸은 때와 불결이 묻지 않은 정결 그 자체였다. 나는 아기 가까이에서 그의 태가 뭉쳐서 밝게 빛나는 것도 보았다. 어디선가 나타난 천사들이 곱디고운 음성으로 사랑스러운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출산 전에 남산만큼 불렀던 성처녀의 배가 다시 홀쭉하게 가라앉는 것이었다』

 

프라 안젤리코는 막 아기가 성모의 품을 빠져 나온 순간을 그렸다. 이제 보듬어서 포대기에 싸고 구유에 눕힐 것이다.

 

한겨울 낯선 고장의 외양간을 빌어서 태어난 아기 예수의 탄생은 애처롭기 짝이 없다. 이사야의 말마따나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우고 피해갈 만큼 고통과 멸시를 당할」 운명이었고, 「야훼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기」 때문이었다. 아기 예수는 가혹한 절망을 기쁜 운명으로 받고 타고났다. 그러나 그의 삶은 남루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앓을 병을 대신 앓아주었고, 우리가 받을 고통을 대신 겪어주신」 분이기 때문이다(이사야 53,3. 6).

 

[가톨릭신문, 2003년 12월 21일, 노성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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