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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문헌ㅣ메시지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두 번째 회칙: 희망으로 구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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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27 ㅣ No.343

[문헌 풀어 읽기]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두 번째 회칙 “희망으로 구원을”

 

 

첫 번째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2005. 12. 25)에 이어 그리스도교 희망을 주제로 한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두 번째 회칙 “희망으로 구원을”(2007. 11. 30)이 발표되었다.

 

 

회칙의 배경

 

현대사회의 위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예견하고 지적해왔다. 더 나아가 지구의 종말까지도 예견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현대사회에서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그리스도교 신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저는 가톨릭 신자입니다.”라고 말하지만 막상 위의 질문을 받으면 답이 궁색해진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실 ‘영원한 생명’, ‘희망’, ‘믿음’, ‘구원’ 등은 그리스도교의 가장 기초적인 개념에 속하는 것들이다. 그런데도 막상 누가 이에 대한 바른 설명을 부탁하면 막연해진다. 그러니 서두에서 제기된 질문에 자신 있는 답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최근 발표한 그리스도교 희망에 관한 회칙 “희망으로 구원을”(Spe salvi)을 통해 이런 당황스러운 상황에 빠진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그의 이 두 번째 회칙에서 오랫동안 유럽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중심부에 자리 잡았던 그리스도교가 근세 이후 점차 주변부로 몰리고 있는 현상, 더 정확히 말해서 “본질적으로 그리스도교 희망의 위기인 현대 신앙의 위기”(17항)를 개념 분석과 역사 해석을 통해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그 해결책은 바로 희망 자체이다.

 

독일의 슈피겔 지는 이 회칙이 플라톤에서 시작하여 중세의 신학자들은 물론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비롯하여 칸트와 호르크하이머 그리고 아도르노에 이르기까지 서구 사상사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온 인물들을 인용하고, 더 나아가 현대의 대표적인 좌파 지식인 블로흐의 “희망의 원리”(Prinzip Hoffnung)를 연상시키기도 하여 마치 교황의 1960년대 독일 튀빙겐 대학 교수 시절 강의와 같은 느낌을 준다고 지적하였다. 사실 이 회칙에서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유럽 지성사를 꿰뚫는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철학자”이자 “목자”이신 그리스도(6항)의 모범을 충실히 따르는 자신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회칙의 내용

 

회칙은 크게 서문(1항), 희망 신앙에 대한 신학적 분석(2-31항), 희망과 신앙의 자리 매김(32-48항), 그리고 결론(49-50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론은 다시 각 부분의 내용을 압축해 보여주는 ‘신앙은 희망’(2-3항), ‘신약성경과 초기교회에서 신앙을 바탕으로 한 희망의 개념’(3-8항), ‘영원한 생명이란 무엇인가?’(10-12항), ‘그리스도교 희망은 개인주의적인가?’(13-15항), ‘현대에서 그리스도교 신앙과 희망의 변화’(16-23항), ‘그리스도교 희망의 참모습’(24-31항), ‘희망을 배우고 실천하는 자리들’(32-48항)을 주제로 세분된다. 이 ‘자리들’에는 ‘희망의 학교인 기도’(32-34항), ‘희망을 배우는 자리인 활동과 고통’(35-40항), ‘희망을 배우고 실천하는 자리인 심판’(41-48항)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결론 (49-50항)은 ‘희망의 별이신 마리아’라는 소제목이 암시하듯이 마리아에게 드리는 긴 기도로 마무리되고 있다.

 

사실 전반부의 내용 중에서 특히 히브리서를 중심으로 한 희망과 신앙의 개념에 대한 성경 해석학적 분석에서는 이 회칙이 마치 신학 강의를 위해 치밀하게 준비한 논문 같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곧이어 나오는 근대 유럽에서 시작되어 여전히 진행 중인 그리스도교 위기에 대한 원인 분석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프랜시스 베이컨 이후 특히 자연과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자연을 지배하고, 이를 통해 무한한 진보를 확신하게 된 인류는 분명히 인간의 이성과 자유만으로 구원에 이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황은 베이컨의 과학의 혁명도 프랑스 민중의 프랑스 혁명도 마르크스-레닌의 공산주의 혁명도 인간에게 참다운 희망을 가져다주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스파르타쿠스가 아니십니다. 또한 바라빠나 바르 코크바처럼 정치적 해방을 위한 투쟁에 몸담으신 것도 아니었습니다.”(4항)라는 단언으로 은연중에 남미의 해방신학도 비판하고 있다.

 

그러한 비초월적인 방식으로 도달한 세계는 진정한 희망과 구원의 하늘나라와 대립되는 “인간의 나라”(17항)일 뿐이다. 구원이 인간에게 마련해 주는 영원한 생명은 미래의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주어진 하느님의 사랑으로 이미 오늘 현실적으로 드러난다. 궁극적으로 여기서 말하는“참된 희망은 … 하느님이실 수밖에 없다.”(27항)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본래 초월적인 영원한 생명을 지상적인 것을 통해 추구하던 사람들은, 영원히 산다는 것이 권태로운 일로 개인적 구원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만의 희망사항일 뿐이라며 오해하고 이에 대한 흥미조차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오직 지금 여기 존재하는 ‘나’만의 개인적 삶을 즐기는 것이 남게 되어 현대인의 삶에서 희망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그리스도교의 참다운 희망

 

교황은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으로 그리스도교의 참다운 희망을 배우고 훈련할 수 있는 ‘자리들’을 마련하고 있다. 우선 기도를 통하여 인간은 하느님과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 개인적인 것이 아닌 공동체의 희망을 회복한다. 다음으로 올바른 활동뿐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참아내고 타인의 고통을 함께 나누면서 역시 희망의 본질적 의미를 깨닫는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최후의 심판을 염두에 둠으로써 구원과 더불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불의에 대한 정의로운 심판을 희망하게 된다. 이와 연관하여 교황은 “은총이 정의를 배제하지 않는다.”(44항)는 중요한 단언을 한다. 곧 정의가 지나치게 강조될 경우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은총이 지나치게 강조될 경우 지상의 삶에서 선행을 하는 노력의 의미가 상실되기도 하는 모순을 희망의 개념으로 극복함으로써 교황은 은총과 정의의 변증법적 통일을 이루어내고 있는 것이다.

 

2006년 9일 12일 ‘레겐스부르크 대학 강연’에 이어 이 회칙을 통하여 자신이 가톨릭교회의 ‘목자’일 뿐 아니라 유럽 지성계의 ‘철학자’임을 보여준 교황은 지난해 알프스 산자락의 돌로미티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는 동안 이 회칙 이외에 예수님에 관한 자신의 저서 제2부와 세계화에 관한 사회 회칙도 다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으로 계속 쏟아져 나올 문헌에서 교황이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 이종범 프란치스코 - 독일 튀빙겐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였으며, 주교회의 번역실에서 일하고 있다.

 

[경향잡지, 2008년 1월호, 이종범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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