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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문헌ㅣ메시지

교황 요한 23세의 회칙: 지상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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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27 ㅣ No.345

[문헌 풀어 읽기] 교황 요한 23세의 회칙 “지상의 평화”

 

 

교황 요한 23세가 1963년 반포한 회칙 “지상의 평화”는 당시 교회가 추구했던 평화의 청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냉전 갈등이 깊던 시기에 요한 23세는 “모든 시대의 인류가 깊이 갈망하는 지상의 평화”(1항)를 위한 내용을 이 회칙에 담았다. 회칙은 요즘 말로 하면 인권, 국가권력 견제, 정의 구현, 국제기구의 역할, 군축 등 평화의 핵심 주제를 모두 다루었다는 면에서 평화에 대한 종합적 청사진이자 이정표라고 할 수 있다.

 

 

강력한 인권 사상의 채택

 

회칙에서 평화의 질서는 네 가지 수준의 관계로 정의된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 사람과 사회 ? 정부의 관계, 나라와 나라의 관계, 그리고 사람과 나라 ? 세계의 관계이다. 그런데 이 모든 수준의 관계를 정의롭게 개편하는 바탕, 곧 평화적 질서는 모든 사람이 생존과 행복, 자유와 참여 등 기본적 권리를 향유하는 것에서 출발한다(11-27항). 1948년 세계인권선언이 반포된 지 15년 만에 인권을 개인-사회-국제 질서의 근본원리로 선언한 것이다.

 

인권은 그냥 인간이기 때문에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존엄성의 기준으로, ‘국가안보’나 ‘국방’과 같은 현실적 이유로 부정될 수 없는 불가침의 권리이다. 회칙은 강력한 인권사상을 전적으로 채택하고 있다. “인간은 지성과 자유 의지를 갖고 있고, 인간 본성에서 직접적으로 나오는 권리와 의무를 지닌 주체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권리와 의무는 보편적이며, 불가침적이고, 양보할 수 없는 것입니다”(9항).

 

이러한 강력한 인권사상을 채택한 것은 예언자적이었다. 왜냐하면 인권사상은 하나의 신념으로 머물러있지 않고, 이후 한국을 비롯해 세계 수많은 나라에서 사회와 국가를 정의롭게 바꾸고 폭력을 줄이는 현실적 효과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들 마음속에 만들어낸 잔잔한 파도는 거대한 독재 권력을 하나씩 무너뜨렸으며, 세계적으로 1990년대 초반까지 가톨릭교회의 사회정의 구현활동을 이끌어내는데 큰 몫을 했다.

 

 

권력에 대한 성찰과 공동선 추구

 

“지상의 평화”는 1960년대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지만 권력에 대한 가장 깊은 성찰을 담았다는 점에서 늘 새롭다. 회칙은 평화에 가장 큰 장애물을 잘못된 권력, 특히 국가권력의 횡포로 보았다. 회칙은 정치나 공권력의 본질은 인간의 권리와 의무를 증진하는 데 있다고 보면서, “공권력의 목적은 공동선의 실현과 인간의 권리를 증진시킬 의무”를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수 특권층의 이익을 위하거나 약자의 인권을 보호하지 않을 경우 정당성을 잃는다.”(46-79항)고 강조한다.

 

“지상의 평화”는 국제 질서의 대안을 ‘세계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세계가 점점 더 상호 의존적이고 세계화해 가는 추세를 일찍이 예측한 것이다. 이제 공동선은 한 나라의 국경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국제적 차원에서 ‘공적 권위’를 통해서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강압이 아니라 동의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그 동의는 “인간 권리의 인정, 존중, 수호, 증진”이라는 기본 목적이 실현될 때 가능한 것이다. “지상의 평화”는 그만큼 규범과 협상에 기초한 국제연합(UN)의 구실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단 하나의 패권국가가 군사력에 의존해 국제 정치를 주무르는 현실과 대척점에 있다.

 

나아가 회칙은 ‘무기와 무장 해제’로 표현되는 군비통제와 관련된 부분에서 “결코 평화가 ‘무기라는 힘’의 균형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110항)고 선언하면서, 군비경쟁이 무한한 불안의 악순환을 가져온다는 강력한 경고를 보낸다. 이 항에서 회칙은 전쟁이라는 수단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패권국가와 그 동맹국의 엘리트들은 부인하겠지만, 국가 간의 이익 조정은 협상과 존중, 그리고 공동선이라는 규범을 기반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변화된 오늘날의 상황에서 나아가야 할 평화

 

우리 모두는 평화를 염원하지만, 인간이 만든 대부분의 사회는 폭력으로 유지된다. 폭력이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서서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힘으로 일부의 풍요와 행복을 지탱한다고 보는 견해도 등장하였다. 이라크 불법 침략과 정복에서도 볼 수 있듯이 불행히도 세계는 여전히 패권국가의 야만과 다수의 빈곤과 박탈로 유지되고 있다. 이렇게 분열된 세상에서 평화를 말한다는 것은 “지상의 평화”가 말한 것처럼 우리 사회의 폭력을 드러내는 데서 출발한다.

 

“지상의 평화” 반포 이후 폭력과 평화에 대한 성찰은 교회 안팎에서 지속적으로 축적되었다. 예를 들어 이제 평화론자들은 폭력이 공권력뿐만 아니라 가부장제와 성차별, 서구 숭배와 인종차별에도 큰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제 인권운동가와 평화운동가들은 대량살상무기의 지구적 확산을 앞두고 있는 지금, 전쟁과 군대를 완전히 불법화해야 할 때라고 한다. 나아가 병역과 참전을 거부할 권리를 누구나 향유할 기본 인권으로 인정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지상의 평화”를 다시 읽으려면 지난 45년간 축적된 인권과 평화에 대한 이러한 성찰들을 새로 추가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나아갈 평화의 길

 

오래된 회칙이기는 하지만 “지상의 평화”는 우리에게 폭력에 기초한 현재의 질서에 대한 깊은 반성을 새롭게 촉구한다. 평화는 단순히 눈앞에서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며, 안보주의자들이 좋아하는 세력 균형이나 파병 따위도 아니다. 평화는 ‘정의의 열매’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일상과 사회, 그리고 국가와 국제체제를 정의롭게 개조해야 얻어지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회칙은 그리스도인들이 “종교적 신앙과 현세적 활동 사이의 괴리”를 없애고 “신앙의 빛과 사랑의 힘이 그리스도인들의 현실적 행위에서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고 안내하면서(152항), 마땅히 그리스도인들의 사명과 투신을 요청한다(146-162항). 투기와 이윤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세계화의 그림자를 성찰한다면 이러한 사명과 투신은 인권과 공동선의 관점에서 더욱 세계화되어야 할 것이다.

 

“지상의 평화”가 담은 메시지를 성찰한다면, 요즘 한국 사회에서 득세하고 있는 절망스럽기까지 한 졸부의 열망이 이러한 평화에서 얼마나 멀리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부국강병’에 몰입한 우리 한국 사회에는 새로운 평화의 메시지가 필요하다. 아마도 진정한 평화의 여정은 우리의 협소한 ‘이익’에 대한 반성과 세계 곳곳의 약자에 대한 연대감과 아울러, 부와 권력을 독점한 미국의 질서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가 ‘하느님께서 설정하신 질서’에 얼마나 크게 역행하는지 성찰하는 데에서 출발할 것이다.

 

* 이대훈 프란치스코 - 성공회대학 NGO대학원에서 평화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아시아대안교류회(아레나) 사무처장,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으로 있다.

 

[경향잡지, 2008년 3월호, 이대훈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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