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홍)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순교자 기념일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사목신학ㅣ사회사목

[사목자] 신학과사상학회,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 심포지엄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4-30 ㅣ No.521

신학과사상학회,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 심포지엄


사제직 정체성 · 바람직한 사제상 모색

 

 

신학과사상학회가 지난 17일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 신학대학에서 개최한 학술심포지엄에서 발제자와 논평자가 종합토론을 벌이고 있다.

 

 

‘사제의 해’를 보내며 사제의 신원과 삶을 되돌아보고, 사제직의 정체성을 살펴보는 뜻 깊은 자리가 마련됐다.

 

신학과사상학회(회장 김영남 신부)는 지난 17일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 신학대학 진리관 대강의실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주제로 제5차 학술심포지엄을 열고, ‘그리스도교 사제직’에 대한 신학적 이해와 바람직한 사제상을 모색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심포지엄은 손희송 신부(가톨릭대 교의신학 교수)의 ‘트렌토 공의회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따른 사제직 이해’와 조현권 신부(대구가톨릭대 교의신학 교수)의 ‘그리스도의 성사로서의 사제의 신원과 삶’을 주제로 한 발표로 진행됐다. 또 곽승룡 신부(대전가톨릭대 교의신학 교수)와 박준양 신부(가톨릭대 교의신학 교수)가 각 주제의 약정 논평자로 나섰다. 심포지엄에서 나온 내용을 발췌해 소개한다.

 

 

트렌토 공의회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따른 사제직 이해 - 손희송 신부

“성찬례, 사제 직무의 목표이며 정점”

 

트렌토 공의회(1545~1563)는 교회 직무와 관련해 종교 개혁자들이 부정했던 ‘성사적’ 측면을 특별히 강조했다. 즉 희생제사의 거행과 사죄의 권한을 지닌 직무 사제직, 그리고 교회의 위계 구조를 부각시켰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는 사제직을 교회 공동체의 건설과 성장에 봉사하는 직무로 이해하면서 트렌토 공의회 이후 협소해진 사제직 이해를 극복했다. 이는 트렌토 공의회의 사제직 이해를 거부하거나 수정하는 것이 아닌 보충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트렌토 공의회에서는 종교 개혁자들과의 논쟁 상황으로 말미암아 신자들의 보편 사제직을 분명하게 언급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새로운 교회의 이해와 함께 세례를 통한 보편 사제직을 분명하게 인정하면서, 성품을 통한 직무 사제직은 이와 밀접한 관련 속에 있다고 가르친다. 즉, 직무 사제직은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권한으로서 신자들이 자신들의 사제직을 충실하고도 완전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직책이다.

 

트렌토 공의회는 미사성제 거행과 관련해 주교와 신부는 동일한 권한을 갖고 있지만, 목자의 임무와 관련해서 주교는 신부들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명시한다. 주교들은 사도들의 자리를 계승하는 이들로서 교회를 인도하도록 성령에 의해 임명됐고, 신부들보다 높은 위치에 있으면서 견진성사와 성품성사를 거행할 권한이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주교가 신부 위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 관계는 트렌토 공의회처럼 ‘높고 낮은’ 위치가 아닌 하나의 ‘축성과 사명의 일치’에 근거한 ‘교계적 친교’로 이해한다. 즉, 주교 축성으로 성품성사의 충만이 이뤄지고, 신부는 주교품에 참여하고 주교의 협조자가 돼 그리스도의 삼중 직무를 수행하면서 교회 공동체의 건설과 성장에 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렌토 공의회는 교회 직무를 설교직과 동일시하는데 반대해서 성사적 측면을 특별하게 강조했지만, 직무 사제직이 다른 임무도 지닌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실제로 「개혁 교령」은 성사 거행과 함께 복음 선포와 사목의 임무도 함께 언급한다. 하지만 공의회 이후의 역사에서는 복음 선포가 사제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인이 되지는 못했다.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성사의 교회, 개신교는 말씀의 교회’라는 말까지 들었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직무 사제직을 하느님 백성의 건설과 성장에 봉사하는 직무로 이해한다. 직무 사제직을 그리스도의 삼중 직무, 곧 가르치고 거룩하게 하고 다스리는 임무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신부들은 주교에게 서품과 파견을 받아 그리스도의 삼중 직무에 참여함으로써 복음을 선포하고 성사를 거행하면서 신자들을 사목하는데, 이 세 임무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사제 직무의 시작은 복음 선포에 있고 그 완성은 성찬례에서 이뤄진다. 따라서 사제는 성찬례를 중심으로 하는 참된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형성하도록 힘써야 한다. 이렇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사제들의 세 가지 임무를 유기적인 관계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트렌토 공의회와 구별된다. 하지만 사제 직무의 중심을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재현하는 성찬례의 봉헌에 두었다는 점에서는 트렌토 공의회와의 연계선상에 있다고 하겠다.

 

두 공의회 모두 상황과 관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성찬례 거행의 권한을 사제직의 핵심으로 이해했다. 트렌토 공의회는 교회 직무의 본질을 설교직으로 보려는 종교 개혁자들에 반대해서 직무 사제직의 성찬례 거행 권한을 강조했다. 반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 생활 전반과 관련해 성찬례와 직무 사제직을 연결 짓는다. 성찬례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요 정점’이며 ‘은총의 샘’으로서 사제 직무의 목표이며 정점이다.

 

그런데 사제 직무의 핵심인 성찬례는 교회 역사에서 교회 쇄신과 성화의 원동력이 되어 왔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교황 권고 「사랑의 성사」에서 “모든 중요한 개혁은 주님께서 성찬례를 통해 당신 백성 가운데 현존하신다는 믿음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과 어느 모로든 연결되어”왔고, 수많은 “성인들이 성체 신심에 힘입어 진전한 삶을 살았다”고 역설했다. 이런 배경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성체 신심이 매우 돈독했던 요한 비안네 성인을 사제들의 내적 쇄신을 위한 모범으로 삼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교회 역사에서 진정한 개혁이 성찬례를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고려할 때 ‘사제의 해’가 목표로 하는 사제들의 내적 쇄신도 당연히 성찬례에 중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사제들이 자신들 직무의 목표이며 완성인 성찬례를 성실하게 거행할 뿐만 아니라 성찬의 신앙을 믿고 생활로 증거하려고 노력할 때, 진정한 내적 쇄신이 실현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성사로서의 사제의 신원과 삶 - 조현권 신부

“주님과 사람 앞에서 진실 · 겸손해야”

 

서품을 통해 스승이신 그리스도를 섬기도록 발탁됨으로써 그리스도의 직무에 참여하는 사제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를 세상에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야 할 사람이다. 사제직의 원천은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삶을 살기 위해서 사제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당연히 그리스도의 사제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를 사제들의 어머니로 공경한다. 그리스도와 마리아, 두 분께서는 인간을 위해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했다는 관점에서 ‘사제’로 불릴 수 있다. 인간을 위한 구원의 중재자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스스로 제사를 드린 참된 사제이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순종해 응답한 인간으로서 또 한 분의 사제처럼 자신을 온전히 봉헌했기 때문이다.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자신의 전 생애를 걸쳐 투신하고 협조한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는 오늘을 사는 사제들에게 분명하고도 확고한 삶의 모범을 보여 준다. 사제는 스스로를 봉헌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고 협력하신 마리아를 본받아 하느님께 순종하며 자기 자신을 봉헌해야 할 사람이다. 필자는 사제들의 정체성과 사제들이 살아가야 하는 삶을 집약적으로 드러내며 가장 잘 요약하고 있는 표현이 ‘그리스도의 성사’라고 생각한다. 사제는 세상 안에서 자신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성사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바오로 해’에 이은 ‘사제의 해’에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성사’로서의 사제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방향을 제시한다. 그리스도의 성사로서의 사제는 자신의 이기심과 아집과 욕망을 좇아 살지 않고,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며 그리스도께서 자신 안에 살아가시도록 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이시지만 사람이 되셨고, 인간 세상의 구체적인 현실 안에 들어 오셔서 생활하시고, 마침내 자신을 십자가 위의 제물로 봉헌하신 참사제이시다.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심이 당신 사제직 수행의 바탕이 되었듯이, 그분의 사제직에 참여하는 사제들의 직무 수행의 우선적인 바탕은 하느님과 사람 앞에서의 ‘겸손하고 진실한 인간성’이어야 한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중재하는 참된 사제이셨던 그분께서는 사제가 참으로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을 가르쳐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자신 안에 사시게 함으로써, 그분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야 할 사제는 그 누구보다도 그분을 닮아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성사로서의 사제는 어디까지나 사람이지 그리스도가 아니다. ‘사람이 되라’는 당위성과 부르심은 서품을 받은 사제에게 여전히 유효한 것이고, 사제는 먼저 참으로 사람으로 살아갈 때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성사’가 될 수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지난 사순시기를 시작하면서 로마교구의 사제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사제가 진실로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중개자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참사제직의 모범을 따르는 것이다.”

 

사제는 인간이 되심으로써 인간 삶의 구체적인 현실로 들어오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신도 구체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 가운데로 들어가 살아야 한다. 즉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사제들은 어머니 마리아의 순종과 희생의 응답을 본받아 기도로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에 대해 순종하며, 목자적인 사랑으로 봉사하는 가운데 자신의 직무에 헌신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사제는 ‘그리스도를 향한 열정’으로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인 삶을 온전히 살아가면서, 흐르는 세월 속에서도 계속 젊음을 발산함으로써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 젊음과 그리스도를 전파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가톨릭신문, 2010년 4월 25일, 곽승한 기자]



1,074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