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술ㅣ교회건축

성미술 이야기: 예수 탄생의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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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7-04 ㅣ No.42

[성미술 이야기] 예수 탄생의 예고

 

 

‘예수 탄생의 예고’, 프라 안젤리코, 1430~1432년, 154×194㎝,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그림 왼쪽에는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하는 아담과 하와가 그려져 있다. 하느님이 지어주신 가죽옷을 입고 후회와 고통으로 가슴을 치며 낙원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하와는 미술에서는 마리아와 아기 예수와 짝을 지어서 자주 등장한다. 마리아는 두 번째 하와, 예수는 두 번째 아담으로 일찍이 인류가 저지른 원죄의 굴레를 벗기고 구원의 역사를 펼친다. 기둥머리 위에 올라앉은 까치는 기쁜 소식을 의미하고, 마리아가 걸친 겉옷의 파란 색은 영광과 은총을 뜻한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날개 달린 천사가 마리아를 찾았다. 마리아는 안뜰이 보이는 회랑에 홀로 나왔다. 무릎에 올려 둔 것은 기도서이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기쁜 소식을 전한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예고한 것이다.

 

마리아는 무척 앳되어 보인다. 그러나 천사의 말을 귀담아듣고 순종한다. 두 팔을 가로 접어 가슴에 대고 허리를 굽힌 자세는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기 바랍니다」라는 뜻이다. 가볍게 숙인 어깨와 부드러운 눈빛은 순종과 겸손의 덕목으로 가득하다.

 

야고보 외경을 보면 천사가 처음 마리아에게 말을 건 장소가 우물가였다고 한다. 우물은 생명의 샘 또는 구원의 요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마리아가 물동이를 이고 물을 길어오려고 집을 나섰다. 그러나 보라! 한 음성이 들려왔다. 「은총을 받은 이여, 기뻐하라.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 여인들 가운데 축복 받은 이여」 마리아는 도대체 어디서 들리는 음성일까 고개를 좌우로 돌려보다가 두려움에 떨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마리아는 물동이를 내려놓고 곧 방안으로 들어간다. 놀란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실을 챙겨서 옷감을 짓는데, 어느새 천사가 다시 방안에 들어와 있는 것을 발견한다. 야고보 외경의 기록은 계속 이어진다.

 

『그러나 보라! 주님의 천사가 눈앞에 서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두려워 말라, 마리아. 너는 천지만물을 다스리는 주님의 은총을 받았으니, 말씀으로 잉태하게 되리라』

 

한편, 루가의 복음서에도 천사가 마리아를 찾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번에는 직접 집으로 찾아갔다고 한다.

 

『하느님께서 천사 가브리엘을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동네에 보내시어 다윗 가문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천사는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하고 인사하였다』

 

야고보 외경과 루가 복음서의 기록이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영판 다른 내용도 아니다. 우물가에서는 천사의 목소리만 들렸다가 마리아가 집에 돌아온 뒤에 비로소 천사의 모습이 드러나 보였다고 보면 크게 어긋날 것도 없다.

 

가브리엘은 놀란 마리아를 안심시키면서 말씀을 전한다.

 

『두려워하지 말라, 마리아.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마리아는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이렇게 반문한다.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천사를 처음 만났을 때 마리아는 나이가 얼마나 되었을까? 그 당시 팔레스티나에서는 여염집 처녀들은 평균 열 서넛에 시집을 가는 것이 상례였다고 한다. 마리아는 아직 요셉과 약혼만 하고 있었다니까 그보다 조금 이른 열 두셋 정도였을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나이인데, 난데없이 낯선 존재와 마주치고도 전혀 주눅들지 않는 것을 보면 마리아도 어지간히 당찬 성격이었던 것 같다. 천사의 대답은 간단했다.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감싸주실 것이다』

 

프라 안젤리코가 그린 「예수 탄생의 예고」는 바로 이 장면을 붙들었다. 황금빛 빛살이 마리아의 가슴을 비추고 비둘기 모양의 성령이 품에 깃드는 신성한 순간이다. 성스러운 처녀가 순결한 어머니로 바뀌는 순간이기도 하다.

 

천사가 마리아를 찾은 뒤, 마리아는 배가 점점 불러온다. 나자렛 같은 곳에서는 금세 소문이 파다했을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약혼자 요셉의 반응이다. 성서 기록을 보면 요셉은 무척 반듯한 성품이었던 것 같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법대로 사는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낼 생각도 없었으므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었다』(마태오 1,19)

 

여기서 「법대로」는 율법을 어기지 않고 신실한 삶을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가 눈여겨볼 대목은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했다는 부분이다. 약혼녀가 엉뚱한 씨를 받아서 배가 불렀으면 파혼은 당연한 결정이었다. 또 요셉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될 수 있는 대로 소문을 나쁘게 내는 것이 혹시 나중에 새장가를 가더라도 유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을 굳힌다. 문제를 시끄럽지 않게 해결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 것만 보아도 어린 마리아와 그의 집안을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를 엿볼 수 있다. 상대편 과실은 덮어두고 파혼의 책임을 제가 다 뒤집어쓰겠다니, 요셉은 틀림없이 심지가 깊은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요셉은 그후 천사의 전갈을 받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인다. 반듯하고 착한 데다 너그럽고 무던하기까지 한 일등 남편감이었던 셈이다. 혹시 하느님께서도 마리아보다 요셉의 인간 됨됨이를 눈여겨보시고 아기 예수를 점지해주신 건 아니었을까?

 

[가톨릭신문, 2003년 12월 14일, 노성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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