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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목] 가정 공동체: 생명과 사랑, 정의의 요람으로서 가정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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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1-08 ㅣ No.493

문헌 풀어 읽기 - “가정 공동체”


생명과 사랑, 정의의 요람으로서 가정 공동체

 

 

오늘날 한국 가족은 사회 전반의 구조적 변화에 따라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특히 출산율의 급격한 감소와 고령화 사회로의 빠른 진입, 이혼율의 급증으로 생기는 가족 해체, 젊은층의 결혼 기피로 생기는 탈가족화 현상, 그리고 가치관의 변화와 가족 구성원 간의 갈등으로 생기는 각종 사건 사고의 증가 등으로 종래 개인과 사회의 안정적 기반으로 여겨지던 가족에 대한 위기의식이 심화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12월 가정성화주간을 맞아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권고 “가정 공동체” 안에 담긴 의미를 거울삼아 현재 우리 가정의 모습을 비춰보고 앞으로의 지향을 정립하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라 여겨진다.

 

 

현대 가정 안에서 사랑과 일치를 이루려면

 

부제가 “현대 세계의 그리스도인 가정의 역할에 관하여”인 이 교황권고는 1980년 로마에서 열린 세계주교대의원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1981년에 발표되었다. 주요 내용은 크게 현대 가정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 혼인과 가정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 그리스도인 가정의 역할, 가정에 대한 사목적 배려의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급격한 사회의 변화 속에서 현대 가정이 놓인 어려움을 직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간 공동체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가정의 본질과 지향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권고를 제시함으로써 지금 여기의 우리 가정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현대 가정 안에서 사랑과 일치를 이루려면 여성의 권리와 역할,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남성의 위치가 재정립되어야 하고, 또한 자녀의 권리 인정과 기본적인 가치 교육,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노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필요함을 분명하게 밝힌 점, 그리고 사회의 기본단위로서 개별 가정이 사회발전에 참여하고 기여함으로써 그리스도인 가정이 사회의 공동체적 유대를 확산시키는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 것은 깊이 음미되어야 한다.

 

 

사회 경제적 변화에 따른 부부 역할 기대의 변화

 

가정이 생명과 사랑의 근원으로서 기능하려면 구성원 간에 공감적 이해와 신뢰가 형성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먼저 부부간 그리고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사회 경제적 변화와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가정 내의 인간관계에 대한 기대도 크게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먼저 부부 관계에서는 경제 환경이 변화되어 여성의 사회진출과 취업이 증가하면서 남녀의 역할 분담에 대한 기대가 변화되었다. 남성은 가족 부양이라는 경제적 역할을, 여성은 가사와 육아를 담당하는 획일적인 성별분업보다는 능력과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역할을 분담하거나 역할을 공유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여기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부부간에 심각한 역할 갈등이 일어나게 되고, 이것이 부부 관계 자체를 손상시키기도 한다.

 

또한 부부간에 평등한 동반자적 관계와 정서적 만족이 강조되면서 상호존중, 배타적인 성적 친밀감과 낭만적 사랑에 대한 기대도 증가하였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와 같은 부부간의 사랑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결혼생활이 진행됨에 따라 처음의 열정적인 사랑은 자연스럽게 감소하고 대신 서로에 대한 믿음과 친밀감이 쌓이면서 오랜 시간을 같이 한 부부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이 있는 사랑이 형성된다.

 

그러나 초기의 열정적 사랑을 대신하는 부부만의 깊은 유대가 형성되지 못하면 상대방의 존재에 대한 처음의 무조건적인 이해와 수용은 감소하고 점차 서로를 ‘기능’으로만 평가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상대방이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충족시켜 줄 때에만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 서로의 존재의미를 인정하지 못하는 ‘정서적 이혼’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

 

 

부모와 자녀의 올바른 관계

 

우리 가정의 부모 자녀 관계도 변화되었는데, 자녀 수가 감소하면서 자녀를 방임하는 일부 부모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 양육과 교육에 더욱 몰두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과 열의가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할 때 많은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부모는 상호존중과 배려 그리고 책임이라는 기본적인 인간 관계의 틀과 사회규범을 자녀에게 전달하고, 또한 자녀가 자신의 개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발달시킬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자녀에게 일방적으로 부모가 원하는 것을 강요할 때 부모 자녀 간의 관계는 악화되거나 단절된다. 특히 기본적인 규범의 전달은 하지 않으면서 자녀를 위해서라는 명분 아래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자녀를 통해 성취하려 하거나, 자녀의 능력과 희망을 무시하고 사회적 성취를 위해 무조건 경쟁에서 이길 것을 강요할 때, 또는 가족 갈등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자녀 양육과 교육에 몰두할 때, 자녀는 독립성과 책임감을 갖는 자율적 존재로 성장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자녀와 부모 모두 심리적 압박과 상처를 받게 된다.

 

또 이러한 부모 자녀 관계는 장기적으로도 불건전한 애증복합적인 유착관계에서 서로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여 장래 노인 부모와 성인 자녀 간의 독립적이고 협력적인 우호적 관계를 방해하게 된다.

 

 

새로운 의미의 가족 중심주의

 

사회의 구조적 변화에 따라 개인이 의지할 수 있었던 기존의 혈연공동체와 지역공동체가 해체된 상황에서 삶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증가하고 인간 관계가 파편화될수록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친밀한 관계에 대한 욕구는 더욱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삶의 의미를 구현할 수 있는 기본적인 생활공동체로서의 가족에 대한 기대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증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새로운 의미의 가족 중심적인 삶이 확대되고 있고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어느 정도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짧은 시간에 급격한 사회 경제적 변화가 일어난 한국사회에서 가족은 개인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생존 기반이었고 사회적으로는 경제발전을 위한 인적 자원과 초기 자본의 조달기지로서 기능하였기 때문에 가족 중심주의는 일정 부분 순기능을 담당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족 중심주의가 다른 가족과의 유대나 좀 더 큰 공동체적 가치를 지향하지 못하면, 곧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는 타인이나 다른 가족을 희생시킬 수도 있다는 가족 이기주의로 변질되어 각종 반사회적인 행위를 정당화하게 되면 개인과 가족, 사회 모두에 큰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가족 이기주의는 가족 내에서 개개인의 이기적인 인성을 확대 재생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해당 가족의 통합성을 해치고 당사자의 사회적 부적응을 초래함은 물론, 이웃과의 갈등과 사회분열을 야기하여 결국 개인과 개별 가족 그리고 공동체 전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가정생활과 관련하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려면 내부적으로는 가족 구성원의 상호 존중과 발달이라는 새로운 가족 윤리와 가족 문화를 창출하는 한편, 외부적으로는 다른 가족들과의 연대를 통하여 더욱 성숙한 공동체 의식을 확대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점에서 “가정 공동체”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근본 가치에 대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분명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 강완숙 실비아 - 한국가족상담교육단체협의회 사무국장, 관악구 건강가정지원센터 상담팀장을 지냈다. 현재 서울대, 경희대 등에서 강의하며, 한국 가톨릭 여성연구원 연구위원이다.

 

[경향잡지, 2009년 12월호, 강완숙 실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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