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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목] 교회와 아버지: 이 시대 이땅에 사는 중년의 아버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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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4-06 ㅣ No.516

[경향 돋보기 - 교회와 아버지] 이 시대 이땅에 사는 중년의 아버지들

 

 

‘아버지’라는 말을 두세 번 천천히 되뇌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이 시대 이땅에 사는 40~50대 중년의 아버지들은 어떤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까?

 

아마도 독자의 나이에 따라 떠오르는 생각이 다르겠으나 이웃으로부터 듣고 본 경험에 비추어보면 대다수의 독자는 ‘부표처럼 떠돌며 가정과 사회로부터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아버지’, ‘울 장소가 없어서 슬픈 아버지’, ‘술 취한 모습이 더 처연해 그 뒷모습에 눈물짓게 하는 아버지’라는 이미지에 낯설지 않을 것 같다.

 

정신분석학자 칼 융은 “중년이란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인생의 절정을 지나 내리막길로 접어드는 ‘인생의 정오(Noon of life)’에 해당한다.”고 갈파했다. 중년을 계절로 비유하면 생명을 키우는 봄과 성장을 재촉하는 여름을 지내고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가을이라 할 수 있다. 겨울을 준비하고자 나무가 낙엽을 떨어뜨리듯 중년은 지나간 삶의 무게를 하나둘씩 내려놓는 시기이다.

 

중년기에 들어서면 여러 가지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들 경험은 생리적, 심리적, 사회적인 요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 시대 이땅에 사는 아버지들이 겪는 변화와 경험을 살펴보자.

 

 

체력은 떨어지고 심리적으로는 불안하고

 

먼저 생리적인 측면에서 중년에 접어들면 급속도로 체력이 약해진다. 그리하여 자신의 늙음을 인식하게 되고 죽음을 생각해 보는 때가 바로 이 시기이다. ‘남성의 가을’은 숨기려야 숨길 수 없다. 세포 내 단백질 합성이 저하되고, 수분이 적어지면서 얼굴과 목 주변에 짙은 주름이 생긴다. 남성호르몬 분비가 불규칙해지면서 탈모도 진행되고 기초 대사량이 저하하고 지방세포가 증가하여 전형적인 ‘배불뚝이 아저씨’가 된다.

 

체력적으로도 40대 중반을 넘어서면 심폐지구력, 유연성, 평형감각 등 기초체력 면에서 30대보다 8~13% 정도 떨어진다. 더구나 40~50대 대사증후군 유병률은 39.2%로 60~70대(35.8%)보다 오히려 높다.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복부비만 등 ‘고약한’ 만성병을 모두 갖고 있는 사람이 중년남성 10명 중 4명이나 된다는 점이 예사롭지 않다.

 

이외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혈관과 세포, 뇌의 노화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면역기능이 떨어져 각종 잔병치레를 하게 된다. 그래서 중년은 건강에 자신이 없어지고 마음도 약해져 날마다 자기관리에 신경 써야 하는 숙제를 안고 산다. 하지만 이땅에 사는 중년의 아버지들은 건강관리에 쏟을 만한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어 알면서도 소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살아간다.

 

심리적으로는 나이가 들어가면 우울한 기분을 막는 뇌의 갑상선 호르몬 대사가 줄어드는 대신 세로토닌 같은 뇌의 신경전달물질 분비가 증가하면서 우울 증상이 쉽게 온다. 신경과민, 무기력증, 강박증 등도 중년남성을 괴롭히는 대표적인 심리적인 문제들이다.

 

이것뿐일까. 젊었을 때 가졌던 삶의 목표와 꿈이 점점 사라지는 것도 중년들이 쉽게 좌절감을 느끼게 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실패한 중년은 나름대로 ‘이제 다시 재기하기에는 늦었다.’는 생각 때문에, 성공한 중년은 ‘그래도 뭔가 더 성취할 수 있었는데….’ 하며 뭔가 부족한 것 같다는 아쉬움과 후회, 허전함으로 우울함과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게다가 우리 문화에서 자란 남성들 대부분은 감성표현이 억압되었던 성장배경으로 감정의 표출이 자연스럽지 못해 불안감, 분노, 두려움의 감정조절에 어려움을 느껴 가족관계를 비롯한 사회적 관계에서 스스로 소외를 자초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자녀들의 출가나 직장에서의 은퇴 등 주변 환경의 변화로 심리적으로 큰 공허함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런 우울감과 공허감은 ‘과연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허무를 불러일으켜 궁극적으로 삶의 의미 상실과 가치관의 혼돈을 가져오는 위기를 만들기도 한다. 이때 붙들어줄 만한 가치와 신념을 발견하지 못하면 방황의 나날을 보내기 쉽다.

 

 

가치혼란 속에 변화를 요구받는 중년

 

40~50대 중년 위기를 사회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우리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40∼50대 아버지들은 이른바 ‘낀 세대’로 통한다. 전 세대가 경제 드라이브로 대변되는 경제발전의 주역이었던 반면, 이들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계속되는 경기침체와 IMF 사태를 겪었고 해외 금융위기의 촉발로 만성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세대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인구 고령화, 무한경쟁 시대 도래, 노후 안전망 미비 등과 같은 급속한 사회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절박한 고민에 빠져 살고 있는 것이다.

 

그뿐인가. 자녀의 사교육비 부담과 빈부격차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은 갈수록 심화되고 가정에서는 새로운 아버지, 남편의 역할에 대한 주문에도 응답해야 하는 처지다. 이 시대를 사는 아버지들은 내적으로 사람관계와 집단(조직)에 매우 크게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통념에서 오는 혼란으로도 큰 시련과 고통을 겪는다. 곧 인간관계와 조직(집단)에 통용되어 왔던 가치인 ‘가부장주의’가 ‘양성평등주의’로 ‘집단주의’가 ‘개인주의’로 변하면서 가정과 사회에 적지 않은 혼란을 가져온 게 사실이다.

 

게다가 중년의 아버지들은 직장에서 ‘끊임없는 경쟁’ 분위기의 확산으로 상사에게는 능력이 있다는 걸 끊임없이 보여줘야 하고 후배들에게는 치이지 않으려고 기를 써야 한다. 그뿐인가! 과거 조직운영 중심이던 관리자의 기능도 약화되면서 과장, 부장급도 끊임없이 경쟁을 견뎌야 하기에 이른 새벽부터 자기계발과 전문성 제고를 위해 이것저것 배우러 다니지만 젊은 후배들과의 경쟁은 버겁기 마련이다. ‘사오정’(45세면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직장생활을 하면 도둑)로 표현되는 세태는 한창 일할 40~50대 직장인을 심리적으로 주눅 들게 만들기 십상이다.

 

직장생활에서만 변화가 있는 게 아니다. 가정에서도 새로운 아버지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이전 세대의 아버지들이 가정 경제를 이끄는 것만으로도 아버지의 권위를 인정받았던 반면, 현재의 아버지들은 이전 시대의 권위 대신 자상한 아버지이자 친밀한 남편으로서 민주적 권위를 요구받고 있다. 이렇듯 가정과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이면서도 어깨 위에 얹힌 삶의 무게로 언제나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요즈음 중년의 아버지들 모습이다. 아버지들은 앞서 산 인생의 모델이 없기에 더 위기감을 갖고 위태위태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세대들이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급속하게 변하는가 엿볼 수 있는 몇 가지 통계를 보자. 중년 위기가 사회적 요인으로 크게 증대함을 알 수 있다.

 

 

중년기의 위기상황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08년 6월 건강 자료(Health Data)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10년째 자살률이 1위이다. 우리나라가 ‘자살 1위국’이란 오명을 안게 된 건 무엇 때문일까.

 

우리는 자살하면 흔히 10~20대의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 갱년기 우울증에 따른 여성의 자살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자살 통계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자살 1위국’의 또 다른 원인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젊은층의 자살률도 낮은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를 ‘자살 1위국’으로 만드는 데 40~60대의 자살률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에 따르면 2008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우리나라 40~60대 중년남성은 모두 4,546명. 이는 전체 자살자 1만 2,858명의 35%를 차지하는 수치다. ‘40~60대’ 남성 자살자가 전체 자살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최근 몇 년간 줄곧 30%대 후반 이상이었다. 2004년과 2006년에는 40%대에 이르기도 했다.

 

이와 같은 ‘40~60대’ 남성들의 ‘자살 러시’는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른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로 한동안 증가될 것이라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본격적인 고령화 시대로 들어서면서 고용불안은 증대되고, 가정의 해체마저 급속화되면서 ‘외롭고, 소외받고, 고립되는’ 중년남성의 수는 더욱 많아질 것이기 때문에 자살률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40~60대’ 남성들은 왜 자살을 선택하는 것일까? 많은 중년남성들은 경제적 문제와 가정불화, 노후 · 건강에 대한 걱정, 불안정한 직장생활에 대한 염려 등으로 자살 충동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다른 통계, 2009년 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 부부의 이혼율이 OECD 가입국 가운데 1위로 나타났다. 이혼 사유로 1991년 민법이 개정되어 여성의 이혼 뒤 재산분할권이 신설되는 등 여성의 경제적 지위 향상, IMF 사태와 해외 금융위기 여파로 생긴 고용불안, 그리고 경제적 궁핍 심화, 당사자 간의 합의로만 이혼이 가능한 협의이혼 등 제도적 용이성이 꼽히나 무엇보다도 ‘배우자의 가정폭력’, ‘배우자의 외도’가 주원인이다. 우리나라 부부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통계임을 알 수 있다. 이혼 사례 가운데 ‘황혼이혼’이라 불리는 20년 이상 결혼생활을 한 40~50대 이혼율이 가장 높다는 점은 중년기 또 다른 위기 가운데 하나이다.

 

이 밖에 중년의 아버지들과 밀접한 통계 자료로는 40대 과로사 사망률, 양주소비량 또한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버지들의 교회 참여율을 높여라

 

이제 눈을 우리 교회 안으로 돌려보자. 교회 내에서 중년의 아버지들은 어떤 모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가? 교회 내외의 여러 연구기관에서는 가톨릭교회가 급속히 여성 중심화, 도시화 현상을 띠고 있으며, 중산층 중심의 교회로 변화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 통계”(2008년)에 따르면 신자 성별 부문에서는 남성이 41.6%, 여성이 58.4%로 조사되었다. 우리나라 인구의 남녀 성비가 50.2%와 49.8%임을 감안하면 여성 신자의 비율이 매우 높은 편이다.

 

연령별 신자는 40대가 전체의 19.4%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뒤이어 30대(16.6%)와 50대(16.1%) 신자가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40~50대 신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확한 자료는 알 수 없으나 남성 신자의 주일미사 출석율은 상대적으로 여성 신자에 비해 떨어지고 각종 교회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주 대상층도 여성이라는 점에서 중년남성을 위한 사목적 배려가 절실한 편이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지역사회를 되살리려면 아버지들의 교회 참여율을 높이는 것은 그 영향력에 있어 매우 크다 하겠다. 한 아버지가 교회의 품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가족관계의 회복을 통해 성가정으로 거듭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성품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 학교에서 인생 2막을

 

앞서 살펴본 중년의 위기는 꼭 한국 사회만의 문제도 아니며, 다른 나라들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또 신앙인이라고 해서 그 ‘위기’가 비켜가는 것도 아니다. 중년의 위기는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상실감, 죽음에 대한 불안감, 우울증, 정체성 혼란 등과 같은 감정을 동반한다. 중년을 건강하게 보내려면 이 시기를 잘 이해해야 한다. 지나온 인생에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을 저울질해 보고,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신중하게 중간결산표를 작성해야만 삶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위기는 사실 ‘새로운 기회’이다. 많은 변화가 수반되지만 이런 변화는 자신의 감춰진 잠재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건강한 중년을 맞이하려면 상실감을 극복해야 하며, 그 방법으로 새로운 삶의 소명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애써 중년의 위기를 무시하기보다는 현실을 직시하며 자신의 삶에 누적된 불필요한 요소들을 내려놓고 그동안의 경험과 전문지식을 최대한 활용할 것을 권한다.

 

“핫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이란 책의 저자 윌리엄 새들러는 인생의 성공은 마흔 이후 인생의 항로 수정에 달려있다고 강조하면서, 중년은 인생의 목표가 아닌 방향을 설정할 때라고 강조한다. 인생의 방향을 설정할 때 긍정심리학의 대부인 마틴 셀리그먼의 조언을 들어볼 만하다. 그는 인생에 세 가지 종류의 행복한 삶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즐거운 삶, 몰입할 수 있는 삶, 의미 있는 삶이 있는데 마지막 ‘의미 있는 삶’이 가장 행복하고도 윤택한 삶에 가깝다고 한다. 중년이 되어 인생의 방향을 ‘의미 있는 삶’을 찾아 나서는 용기가 필요한 때이다.

 

먼저 자신의 최대 강점과 경험을 깨달아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이를 가족, 공동체,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멋지고 행복한 삶을 위해 한 번 시도해봄 직하다. 이를 위해 이 시대 이땅에 사는 모든 아버지들에게 각 교구별로 이루어지는 아버지 학교에 적극 참여할 것을 권한다. 왜냐하면 아버지 학교는 인생 2막을 준비해야 하는 아버지들에게 가정과 사회로부터 다시 설 자리를 찾을 수 있게 돕고, 인생의 마지막 희망이자 진정한 삶의 이유인 하느님 그리고 가족과의 화해를 돕기 때문이다.

 

* 김항중 요한 - 대전교구 가정사목부 ‘아부지(我父知)학교’ 봉사자. 대전대학교 중등특수교육과 교수.

 

[경향잡지, 2010년 3월호, 김항중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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