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4-0817.....연중제20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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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08-16 ㅣ No.1573

연중 제 20 주일 (가해 )

이사야 56,1.6-7       로마 11,13-15.29-32       마태 15,21-28

2014. 8. 17. 등촌3.

주제 :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

사람이 세상의 삶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참 많습니다. 이런 소리를 하면, 가장 쉽게 떠오르는 대상은 이라고 여기기 쉽습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사람을 움직이고 행동하게 하는 데에 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진 대상을 만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힘이 센 것을 손꼽으라고 한다면 돈을 생각할 수는 있어도, 이 돈이 중요하게 된 것은 그렇게 대하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중요하게 여길 법한 돈이 물질이며 생명체가 아니라는 판단을 하게 되면, 사람은 또 다른 것을 생각하게도 됩니다.

 

하느님은 사람의 삶에서 무엇을 바라실까요? 우리가 쉽게 할 수 있는 질문이지만, 구체적으로 하느님을 만나는 것은 개인적인 성향이나 체험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분명하게 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사정은 그렇지만, 오늘 우리는 복음에서 그 내용의 한 귀퉁이를 볼 수 있습니다.

 

자기 삶에 획기적인 일이 일어나기를 바랐던 가나안여인에게, 그 여인이 무어라고하든지 세상에 오신 하느님이었던, 예수님은 그녀의 외침에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고, 일부러 외면하셨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시선을 느끼던 사람 가나안 여인은은, 자신의 위치는 무엇일까 하고 심각하게 고민하도록 만든 시선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대우에 흥분하지 않고, 자신이 바라던 것을 얻어낸 가나안여인의 삶을 보면, 하느님 앞에서 우리가 갖거나 드러내야할 기본정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세상에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졌다는 위치에 따라서 당연히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것으로 인정되는 일도 있고, 권리는 저만치 멀리에 있지만 의무가 먼저 강조되는 일도 있습니다. 이왕이면 의무보다는 권리를 더 먼저 좋아하는 것이 사람이 드러내는 모습이기는 하겠지만, 우리가 맘에 드는 행동을 언제까지 할 수 있느냐는 것도 아주 커다란 질문의 하나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바라시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있는 질문에 정확한 대답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이나 독서가 기록되던 때는, 이러한 질문이 필요한 세상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가 오늘 읽고 만날 수 있도록 정해진 말씀을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꾸준히 배우고 익혀서 그 뜻을 실천하려고 하는 이가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주님의 이름에 대하여, 안식일에 대하여, 계약에 대하여 내가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지에 따라 나를 판단하는 분에게 내 삶은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더위는 한풀 꺾였다는 소리를 하기는 쉬운 때입니다만, 그래도 아직은 더운 때, 반드시 계절을 핑계로 삼아야 할 일은 아니겠지만, 이런 때에 신앙인으로서 올바른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은, 사람이 드러내는 행동처럼, ‘조령모개(朝令暮改,=아침에 명령을 내렸다가 저녁에 다시 고친다는 뜻으로, 법령을 자꾸 고쳐서 갈피를 잡기가 어려움을 이르는 말.)’는 아니겠지만,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들 각자가 느끼고 일관성이 있고 끈기가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세상에서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아주 많이 달라질 일입니다.

 

30년 전, 요한바오로2세성인 교황님께서 오시어, 우리 신앙의 선조들 가운데 공경할 수 있는 본보기를 보이신 사람들로서 1984년에 103위 성인을 선포하신 이래, 프란체스코교황님께서는 어제/오늘 (816, 광화문의 특별장소)에서 124명의 신앙선조들을 복자로 새롭게 선포해주셨습니다. 그분들이 살았던 때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와는 다르다고 말하겠지만, 그분들이 보여준 삶의 모습에서 우리가 본받을 수 있는 것을 찾아내어 친숙하게 지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세상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와 태도는 달라지겠지만, 하느님께서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앞세우실 조건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현실의 우리에게 바라는 사항을 깨달아, 신앙인으로서도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청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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