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4-0824.....연중제21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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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08-23 ㅣ No.1576

연중 제 21 주일 (가해)

이사야 22,19-23      로마 11,33-36      마태오 16,13-20

2014. 8. 24. 등촌3

주제 : 하느님의 선택....(?)

사람이라면 누구나 세상에서 자신이 하는 일이 다른 사람도 놀랄만한 뛰어난 결과를 만들어내기를 바랄 것입니다. 물론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뛰어난 결과가 나타나게 하려면, 그렇게 목표로 삼는 일을 실행하기 전에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있습니다. 일을 통해서 만들어 낼 결과와 그에 앞선 준비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연구한 내용을 본 일은 없습니다만, 세상일을 살피다보면 그렇게 관련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도 있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하는 행동이 좋은 결과를 맺게 하고 싶다는 것은 욕심일까요? 아니면 욕심이라고 표현할 수는 있어도, 우리의 삶에 드러내도 괜찮을만하고 권장할 만한 것일까요? 우리들 각자가 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남들이 막을 방법은 없다고 할 테니까, 이왕이면 같은 생각이라고 하더라도 그 지향(志向)이 정말로 올바른 방향을 향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지향은 어떤 방향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겠습니까?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을 통해서 무엇을 듣고 배웠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사람들인지, 확인하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지방, 헤르몬산 아래쪽에 있는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서, 뜬금없이 이런 질문을 왜 하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의 입을 통해서 그들이 알고 따라야 할 정말로 기본적인 내용을 확인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말하느냐고 묻는 질문으로 말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정확한 대답을 재빨리 말한 베드로사도의 입장을 헤아리면, 우리는 베드로를 무척이나 복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은 베드로가 다른 제자들보다 재빨리 말해서 복을 얻었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나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올바른 대답을 준비하는 사람으로 지금 살고 있는지 살피는 것이 먼저입니다.

 

올바르고 예수님의 맘에 드는 대답을 했다고 해서, 베드로사도는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았고, 땅위와 하늘에서 동시에 통용될 수도 있는 모든 것을 맺고 또 푸는 놀라운 권한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맘에 들었던 제자, 베드로에게 이렇게 선언하셨지만, 실제로 그가 드러낸 세상의 삶에서 무엇이 달라졌는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일이 아니라고, 하느님나라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선택은 지금 당장, 내 삶에 그 모습이 실현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효과를 세상의 것처럼 빨리빨리 체험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신앙은 실망하기 딱 좋은 것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느리고, 천천히 드러나는 하느님의 선택이 우리를 위해서인 경우도 있겠지만, ‘빨리빨리에 익숙해진 세상의 사람들 가운데, 하느님의 반응이 늦은 것을 행복이라고 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하느님나라와 하느님의 사정에 대한 것을 인간의 행동으로 설명하거나 몸으로 드러내려고 할 때는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잘못해서 섣불리 드러내거나 쓸데없는 고집을 피운다면,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보다는 해가 될 수 있는 모습을 우리는 첫째 독서에 나오는 세브나 시종장의 모습을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임금 곁에 선, 시종장이라는 직책을 우리나라의 요즘 직책으로 바꾸어 말하면, ‘대통령 비서실장입니다. 그가 어떤 권한을 가졌는지 그리고 그가 행사할 수 있는 힘이 어떠한지 모를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늘창공을 날아다니는 새를 향하여, ‘너는 날지 말고 떨어져!’하고 말한다면, 그대로 실현시킬 수 있는 권한과 능력을 가진 사람이 바로 시종장이고 그가 가진 힘이었는데, 그러한 사람이 그 권한을 잘못되게 사용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시종장 세브나는 하느님께 충실한 임금이었던 히즈키야 옆에서, 하느님의 뜻을 따라 실천할 생각은 없고 오로지 개인의 영광을 찾고 화려한 무덤을 꾸미며 준비하고 권력을 무기로 호사를 누릴 방법만 찾은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일에 충실한 사람이 세상의 일을 잘 알거나 잘 한다고 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그 사람이 하느님나라의 일까지도 잘 알거나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일을 잘하는 사람이니 하느님나라의 일도 잘할 수 있다는 문리(文理,=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아는 힘)를 주장하고 싶어도, 그것은 세상의 시각을 가진 사람의 얘기입니다. 그 두 세상은 서로 차원이 다른 것이고, 서로 계산법이 다르게 적용될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신앙인으로 살고 있는 우리가, 하느님나라에서 좋은 몫을 기대하는 것은 누구나 갖는 바람이고, 그 몫을 얻고 나면 바오로사도처럼 우리 입으로 하느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 입으로 노래하는 것들이 진정으로 하느님을 찬양하고, 그래서 그 찬양이 다시 우리에게 축복으로 돌아오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이 바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결과를 맺게 해야 할 것이라면, 우리가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 특별히 갖추고 드러내야 할 자세나 태도가 무엇인지도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우리가 세상에서 드러낼 모습은 어떠한지 잠시 침묵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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