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4-0831.....연중 제22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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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08-30 ㅣ No.1580

                                          연중 제22주일 (가해)

예레미야 20,7-9       로마 12,1-2      마태 16,21-27

2014. 8. 31. 등촌3

주제 : 나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하고, 눈에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기도 합니다. 우리가 아는 백문(百聞)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이런 뜻을 담는 표현입니다. 우리가 아는 격언은 그렇게 표현하고 있지만, 정말로 눈에 보이는 것만이 세상에서 최고의 가치를 갖는 것일까요?

 

이러한 질문에 그렇다고 말할 사람도 있고, 아니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하는 이 말에 여러분은 어느 쪽에 더 큰 중요성을 두겠습니까? 등촌3동에 있는 성당이라는 공간에 들어왔을 때만 신앙의 인간으로 살겠다는 다짐이나 판단을 하고, 정문과 후문을 벗어난 곳에서는 신앙의 인간이 아니라 철저하게 세상의 인간으로 살겠다는 사람에게라면, 격언에서 말하는 백문 불여일견이라는 소리는 가장 좋은 말이 될 것입니다.

 

이런 말과 비슷하게 무서운 소리가 있습니다. ‘내가 봤다는 증언이 그 말입니다. 눈으로 보는 것의 중요성은 인정하겠다고 하지만, 사실 눈으로 본다는 것이 진정으로 의미가 있으려면, 그렇게 관찰한 사실이 행동으로 연결되었을 때뿐이라는 것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겠습니까?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구세주요 메시아로 고백했던 베드로의 믿음 선언이후에 연결된 내용입니다. 지난 주일에 들었던 그 내용에 이어서, 베드로사도에게 떨어진 오늘 복음에 나오는 안타까운 소리가 얼마나 시간이 흐른 다음에 나온 소리인지는 모르지만, 베드로사도는 천당과 지옥을 아주 짧은 순간에 왔다 갔다 합니다.

 

지난 주일에 읽은 복음에서,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고, 세상에서나 하늘에서나 맺고 풀 수 있는 놀라운 권한을 갖게 되었던 베드로사도가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에게 사탄과 걸림돌이 됩니다. 예수님의 선언입니다. 베드로사도는 왜 이렇게 됐을까요? 복음말씀을 잘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 과정을 모를 사람은 없겠지만, 이런 일은 우리의 삶에도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 서글픈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앙인으로 충실하게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적당하게 세상과 타협하면서 살아도 좋다고 여길 사람이나, 내게 돌아오는 현실적인 이익이 있을 때나 남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만 신앙을 앞세우고 기억하는 사람은, 수고를 해야 할 시간이 되면 뒤로 숨을 것이며 그가 세상의 인간으로 사는 것은 어려울 일도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만,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알고, 또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이라면 그가 신앙인으로 세상에서 사는 것이 쉽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신앙이 내 삶에서 절대적(絶對的)인 것이 아니고 상대적(相對的)인 것이 되면, 우리는 예레미야예언자가 했던 말을 쉽게 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당신의 꾐에 넘어갔습니다. 신앙인으로 살겠다고 다짐하기만 하면 세상에서 현실적인 도움을 얻으면서 내 맘대로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줄 알았는데, 하느님은 세상의 내 삶을 그렇게 만들어주지 않으시고, 신앙인으로 살겠다는 나는 세상의 놀림감이 되어 조롱만 당하고 있다고 푸념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드러내거나 이렇게 사는 사람에게 과연 신앙은 무엇이고, 하느님을 알고 그분의 뒤를 따른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느님은 늘 나와 함께 계시기에 내가 어떤 일을 해도 두렵지 않고 나는 늘 하느님의 힘으로 산다고 말할 사람이라면, 세상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세상 삶에서 두려움은 두려워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따라 붙는 아주 묘한 괴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론은 이렇습니다만, 우리가 실제로 세상에서 두렵지 않은 자세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훌륭한 다짐을 한 신앙인들조차도 어려움에 부딪히면 지쳐서 그냥 무너지기도 합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하느님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고 그 하느님의 도움을 자신이 필요로 하는 순간에 느끼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하느님을 떠납니다.

 

하느님은 나를 멀리하시고, 하느님은 나와 함께 계시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하느님은 당신의 모습을 어떻게 드러내실까요?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니, 어떤 모습으로라도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시겠지만, 부정적인 자세를 가진 사람은 자기 삶에서 하느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그 어떤 모습으로 하느님이 다가와도 그는 하느님을 부정할 사람이고, 자신이 원하는 모습만 하느님이라고 할 텐데, 하느님은 그러한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세상을 위하여, 당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분이시지, 편리한 생각대로 사는 사람의 기준을 따라 움직이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께 다가설 때, 십자가와 함께이어야 한다는 것이 세상기준으로는 힘겹다고 할 일이겠지만,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한다면 그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과 친하고, 하느님의 사랑 안에 살고, 우리의 삶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알고 실천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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