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4-0910.....연중 제23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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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09-09 ㅣ No.1588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 짝수 해

1코린토 7,25-31           루카 6,20-26

2014. 9. 10. 이태원

주제 : 세상을 대하는 자세

사람들 개개인에게 물으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똑같은 대답할 거라고 생각할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나에게 당신은 세상에서 올바른 기준을 따라, 올바르게 살고 있습니까?’ 하는 질문입니다. 이럴 때에 차이나는 것이 있다면, 그러한 질문을 하는 사람과 그 질문에 대답하는 사람의 차이겠지만, 어쨌든 그런 질문에 부정적(否定的)인 대답을 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혹시 여러분 가운데, 제가 하는 질문에, ‘제가 질문은 들었습니다만, 저는 잘못된 기준을 따라, 남들에게 해를 끼치면서 잘못 살고 있다(!)’고 대답할 분이 있을까요?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 대답을 예상하면서 이런 질문을 하는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요?

 

실제로 개개인이 드러내는 삶에 대하여, 선과 악을 판단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을 때는 반드시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세상의 일들을 판단할 기준을 세우기도 어렵고 찾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렵다고 쓴 말에 대하여, ‘불가능하다(!)는 의미로 알아듣지는 마십시오.

 

제가 이곳 이태원성당으로 발령을 받고, 한 주간이 되면서, 어떤 분이 제게 물었습니다. ‘신부님, 이태원성당에 오시니까 행복하십니까?’하고. 제가 무어라고 대답했겠습니까?

 

여러분이 어떤 대답을 상상하셨을지는 모르지만, 저는 당연히 행복하지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이게 바로 삶의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불편함을 담아서 하는 대답으로 좋을 이를 세상에서 만들 가능성은 없습니다. 사람이 착각하기 쉬운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남을 비난하는 것은 내 권리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나의 비난을 들은 사람이 왜 올바른 길을 갈 거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들은 예수님의 말씀은 역설의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행복과 불행은 그 기준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다릅니다. 무엇이 다른지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이렇게 말씀하시느냐는 것입니다.

 

현실의 모습에서 연결되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인간의 일이지만, 현실의 모습이 다하고 나면 다가올 미래의 모습을 말씀하시는 것은 예수님의 일이고, 하느님의 시각이기에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현실에서 행복한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그 행복이 미래에도 연결될 수 있어야, 내가 진정으로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오로사도께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이 세상의 것은 사라지고 있는데, 그것을 모르며 현실이 영원하리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바로 불행의 씨앗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현실을 영원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사람이 세상을 대하는 자세는 다양합니다. 이왕이면, 우리가 하느님의 기준을 배워서, 그 기준대로 세상을 볼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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