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4-0911.....연중 제23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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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09-10 ㅣ No.1589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 짝수 해

1코린토 8,1-7.11-13       루카 6,27-38

2014. 9. 11. 이태원

주제 : 발상의 전환

세상은 내가 보는 모습대로, 보고 싶은대로 보입니다. 간단하지만, 중요한 이 진리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알아듣고, 그 말대로 세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실제로 달라집니다. 지난 416일에 진도앞 바다에서 일어난 사건과 연결된 일들이 우리 동네에 사는 분들에게 얼마나 영향이 있는지는 모릅니다만, 그 일의 영향이 정치권을 흔들고 있습니다.

 

세상에 정치만 있는 것이 아니겠지만, 정치는 한 나라 안에서 움직이는 모든 일들에 영향을 줍니다. 국가의 주권자가 그 영토 및 국민을 통치하는 일이라고 정치라는 글자의 뜻을 사전은 풀이하고 있지만, 이런 권한을 행사하는 주체가 국민이라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대통령혼자나 국회의원만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삶은 달라집니다.

 

우리가 몇 마디 주장한다고 해서, 신앙이나 세상의 모습이 금방 바뀌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민초(民草,=‘백성을 질긴 생명력을 가진 잡초에 비유한 말)들은 자신들이 하는 행동의 효력을 느끼지 못할 때, 자기 삶이나 주장 혹은 지론(持論)을 포기하거나, 힘이 약한 자신을 합리화하는 방법으로 현실의 힘이 더 강하다고 여기는 자에게 맹목적으로 복종합니다. 그렇게 해도 좋은 것이 있고, 끝까지 그 마음을 잃지 않고 지켜야 할 것이 있는데도 구별하지도 않고, 구별하지도 못하면서 복종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삶을 지탱하는 논리가 부족한 거죠! 다른 말로는 일관성 있게 추진할 힘이 딸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조상들을 기억하고, 그들 가운데 일부를 성인이나 복자로 공경하고, 그들이 세상에서 보여준 삶의 본보기를 따라 살겠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이겠습니까? 분명히 목적이 있을 행동이지만, 내가 그렇게 사는 모습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올바른 행동이라고 봐주느냐에 따라 우리들의 삶은 아주 크게 달라집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는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해서 드러내고 있는 생활을 남들이 아니라고 말하고 나를 비난한다고 해서 포기하고 그만두어야 하는 것일까요? 나는 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다른 사람은 세상의 눈으로 신앙을 본다면 그 둘 사이는 부딪힐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런 경우, 둘 사이에 적당한 타협이란 없는 법입니다. 이렇게 세상을 서로 다르게 대하는 두 종류의 사람이 부딪히면 누가 이길까요? 누가 살아남을까요?

 

원수를 사랑하고 남을 심판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아무 것도 판단하지 못할 뇌가 없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얘기는 아닐 것입니다. 사람이 공부를 통해서 지식을 갖추려고 하되, 잘못된 것을 쌓아놓고도 그것을 올바른 지식이라고 우긴다면, 우리들 각자가 사는 세상은 험난한 곳을 일부러 찾아서 나가는 꼴이 될 것입니다. 내가 쌓는 지식이 나를 살리고, 남도 살릴 수 있는 도구가 되게 하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바오로사도는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남을 위한 본보기도 생각하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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