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홍)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순교자 기념일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교회문헌ㅣ메시지

2005년 서울대교구장 부활 메시지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5-03-23 ㅣ No.158

2005년 부활 메시지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로마 5,5)

 

 

알렐루야! 알렐루야!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온 세상에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봄 소식과 함께 예수 부활 대축일을 맞이했습니다. 온 세상 곳곳에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는 '알렐루야'의 찬미가 메아리치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그리고 우리나라와 세상 모든 이, 특별히 고통과 어려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는 죄 많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죄인들의 손에 넘어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전에 말씀하신 대로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마태 28,6 참조). 부활은 인간과 세상 그리고 진실과 정의와 사랑의 영원한 승리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은 인간이 성령 안에서 다시 태어나 하느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죽었다가 부활한 첫 사람이 되셨습니다"(1고린 15,20)라는 초대교회의 부활 신앙은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믿음입니다. 만약 주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 신앙인의 믿음과 희망도 모두 헛된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처참하게 죽으셨을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물론 하느님은 다른 방법으로도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이야말로 하느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잘 드러내는 계시의 사건입니다. 하느님은 죽기까지 우리 인간을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인간의 수많은 죄를 보속하고 구원하기 위해서 하느님 아들의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인간 스스로의 능력으로 죄와 죽음을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극진한 하느님 사랑에 힘입어 우리는 죄와 죽음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다시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부활로써 사랑과 생명이 미움과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죄와 죽음의 세력을 물리친 부활의 기쁨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수난과 고통,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도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노력과 희생의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부활의 영광과 새 생명의 기쁨을 위해서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의 아픔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추운 겨울을 견디어야 새 생명의 봄을 맞이하듯이, 우리도 시련과 고통의 밤을 지나야 희망과 생명의 아침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셔서 평화를 기원하셨습니다(요한 20,19 참조).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나 대립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는 사랑과 정의가 지금 이 자리에서 충만하게 실현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평화는 선으로 악을 물리칠 때에만 얻을 수 있는 힘들고 기나긴 싸움의 성과라고 가르치십니다.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혹한 비극과 전쟁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이루는 유일한 길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악에 굴복하지 않으면서도 선으로 악을 이겨내는 것입니다(로마 12,17 참조).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사회는 과연 어떠합니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그리스도께서 원하신 평화와는 동떨어져 보입니다. 세상 곳곳에서 전쟁과 테러, 두려움과 고통에로 내몰고 있는 폭력과 보복 행위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물질 만능주의와 생명 경시풍조는 심각한 우려를 갖게 합니다. 특히 인간의 욕심으로 가정이 파괴되는 현상은 가족의 믿음과 인간의 존엄성마저 위협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세상에는 여전히 악이 존재하고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에페 6,12 참조). 그러나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의 경제가 불황의 긴 터널을 지나서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고 하니 희망적입니다. 국민 모두가 고통을 분담하는 자세로 살아간다면 세상은 긍정적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무엇보다 부활의 신앙입니다. 우리의 현실이 아무리 어둡고 힘겨워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새로운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로마 5,5). 부활의 희망을 간직한 신앙인은 성령의 힘으로 변화되어 말과 행동으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과 평화를 전하는 하느님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어떠한 시련 속에서도 정의와 진리 그리고 사랑이 결국에는 승리한다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값진 교훈입니다. 

 

우리가 함께 더불어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 무엇보다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관대함과 다른 이의 잘못을 용서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루가 23,34)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겸손한 신뢰의 마음으로, 악을 이기고 선을 이루게 하실 수 있는 분은 오로지 하느님뿐이시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악을 저지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부활의 믿음을 가지고 끊임없이 악의 세력을 거슬러 싸움으로써 세상에 희망을 드러내야 합니다. 선이 악을 극복하고 사랑이 승리하게 되는 곳에 그리스도의 평화가 흘러넘치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분명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부활 신앙은 무조건적인 낙관주의가 아닙니다. 세상이 어둡고 타락하는 것에 대해 신앙인은 특별한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신앙의 열매는 치열한 싸움과 부단한 노력의 결과임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십자가와 희생의 길은 어리석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성실하게 걸어가는 것이 바로 죽음을 이긴 부활의 길이요 인간과 세상을 구원할 생명의 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앞장서서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충실하게 가야 합니다. 이 십자가의 삶이야말로 신앙인의 의무이자 세상 속에서 수행해야 할 거룩한 과업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씨앗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꽃이 피고 많은 열매를 맺게 되듯이 우리도 이 세상에 사랑과 평화의 밀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그리고 온 겨레와 세상에 가득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정진석 대주교



450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